[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잠. 잠. 그리고 또 잠.

2018.09.14 14:02

ohmily 조회 수: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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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시인의 작은 窓

 

잠. 잠. 그리고 또 잠.

 

이주 전. 조금 시원해진 아침인데도 80도가 넘는다.  매미들이 짧은 일생 접을 때가 멀지 않은 것을 아는 지 아침부터 발악하듯 울어댄다. 아름다운 하모니는 어디 두고 그런 소리로 짝을 찾겠나 싶어 측은하다. 출근길에 힐크레스트를 지나며 보니 긴소매에 안전복을 걸치고 모자에 두터운 장갑, 선글라스로 무장한 사람들이 여름 낙엽 치우느라고 바쁘다. 가을비 오기 전에 말라죽은 잎들을 털어내고 가지를 쳐내며 고운 단풍철을 준비하는지 도로변이 말끔하다.

 한 여름 지나며 달라스의 초목은 여름잠을 잔다. 겨울추위에 잠을 자듯 화씨 백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잠자듯, 죽은 듯 지낸다. 입추가 지나며 어쩌다 몇 번 뿌린 비에 무궁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무릇도 꽃대를 쑤욱 쑥 올리고 채소와 나무들도 조용한 부산함으로 생기가 돈다. 누렇게 타던 잔디도 푸릇해 지고 여름잠 자던 풀들도 새잎에 부지런히 꽃 대궁 올리며  씨앗 남길 준비로 바쁘다. 한발 길이 남짓한 꼬마 돌개바람이 여름 낙엽과 배롱나무의 붉고 하얀 꽃잎들을 섞어서 함께 돌며 춤추다가 흩어놓고 떠난다.     
킬린의 기도원에 갔었다. 텍사스의 쏟아지는 땡볕에 바짝 말라 떨어져 수북이 쌓인 여름 낙엽들. 하나같이 엷은 갈색으로 창백하게 바래버렸다. 한낮에는 몸서리치듯 부서지기에 가능한 안 밟으려고 피했는데도 숙소 입구 야트막한 곳에 모여 있는 그들은 들고 나며 어쩔수가 없었다. 살그머니 디뎌도 아자자작! 부서지는 애처로운 비명. ‘이른 봄추위를 견뎌낸 너희는 다른 잎들의 선구자였는데 미안해. 부서져서 흙과 한잠 자고 나면 좋은 거름이 될 거야.’ 
 
 일터를 비우려면 늘 그렇듯 시애틀 가기 전에 예약을 당기고 밀고 논스톱으로 일해야 했다. 
월요일 오전 시애틀에서 출발해 달라스는 오후 6시쯤 도착하니 좀 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비행기 연착으로 집에 오니 밤 12시였다. 화요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하고 수요일, 문화산책 글을 보내야 했고 늦게까지 세탁기 빨래를 돌렸다. 목, 금, 토요일, 숨이 턱에 닿도록 일하고 매주 토요일에 있는 4시 기도회에 갔다. 그 후 “호박에 줄 근다고 호박이 수박될까”마는 그래도 씻고 대충 바르고 지인인 황경숙의 가수인생 44년, 디너쇼가 있는 옵니 호텔로 직행. “옛 추억과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피날레로 한 주간 스케줄을 멋지게 완주했다. 
주일 오전 예배 마치고 와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창밖이 부옇다. ‘뭐야 벌써 노동절 아침이잖아. 토네이도 지나간듯한 방과 책상을 치운다고 했는데 벌써 월요일이네. 주일 오후 아무 일도 못하고 잠만 잔거야? 모처럼 여유시간을 잠으로 날려버려서 서운했다. 꿀잠 잔 덕에 몸이 개운한 것은 고마운데 느낌이 이상했다. 나비가 밥 달라는 냐옹 소리도 못 듣고 자다니 ... 폰을 들어 시간을 본다. ‘세상에! 오전이 아니고 오후잖아! 아직도 주일저녁이네’ 혼자 행복해서 활짝 웃으며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시험 기간은 늘 일찍 끝났다. 다음날 네 과목 중 두 과목이 암기과목인지라 한잠자고 나서 벼락치기 밤샘하려고 “엄마 2시간 후에 깨워주세요!” 따듯한 아랫목에 깔린 요위에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집안이 왜 이리 조용한 거야? 번쩍 눈을 뜨고 보니 창밖이 희끄름하다. 잠자던 숲속의 공주처럼 멋진 왕자님이 기다리기는커녕 아뿔싸 벌써 아침이야!   “엄마는 깨워주지도 않고. 난 이제 어떻게 해. 시험 망쳤네.” 엄마원망을 해대며 머리를 굴렸다. ‘최대한 빨리 가서 애들 한데 엑기스를 들어야지.’ 정신없이 교복입고 가방 들고 나오는데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잘 갔다오셔! 시험 잘보고,” 멘붕에 빠졌다. 화는커녕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부끄러워 돌아서지도 못했다. “어여 들어가자! 저녁 먹고 하렴. 하도 달게 자서 못 깨운 게야.” 따라 나와 토닥여주시던 천사표 외할머니. 그 외할머니, 어머니, 남동생 모두 이 세상을 떠나 영면(永眠)에 드셨다. 주님다시 오시는 날 반갑게 만나리라.  

 노동절 지난 아침 첫 손님이 노동절에 좀 쉬었느냐고 묻는다. 꿀잠이야길 했더니 웃으며 영어 속담 ‘Sleep is better than medicine- 잠이 약보다 낫다.’를 가르쳐준다. ‘잠이 보약’이라는 우리 속담도 들려주었다. 새 번역 성경에는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고 했다. 몸살 없이 지난 것이 꿀잠 덕분이리라. 한 주간을 찬송으로 감사로 보냈다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