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50)

 

귀한 뿌리로 살기를 바라며

 

 

C가 존 덴버의 ‘리빙온어 젯플레인’을 들으며 부모님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90대의 아버지를 모시고 청년기에 떠난 아버지의 고향을 다녀왔다고 했다. 비행기와 차로 여행하면서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요약하면 아버지는 어릴 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 댁에서 컸다. 맏손자를 종들과 같이 키우시더니 유언으로 그 지역 대다수의 땅과 공장부지등을 아버지 몫으로 남겨 주셨단다. 그런데 삼촌들과 변호사들의 농간으로 재산을 다 빼앗기고 맨손으로 고향을 떠나면서 친척집에서 하녀처럼 일하던 사랑하는 처녀에게 돈 벌어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도시에서 기술을 배우고 돈을 모아 약속을 지켜 결혼해서 얻은 무남독녀가 자기라고 했다. 고령의 아버지는 리칠랜드칼리지를 다니며 사진 복원기술을 배우더니 변색되고 퇴색된 옛날사진들을 책으로 만들어 C의 딸에게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면서 궁금한 가족사를 모두 알 수 있었던 C가 부러웠다.  초중고를 입시에 매여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따라 대구로, 결혼 후에는 애들 키우며 목회를 돕는다고, 시간에 쫓겨 살다가 미국까지 오니 친정의 부모님과 친척들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한분씩 다 돌아가시고 말았다. 
존 덴버의 ‘나를 고향으로, 시골길로 보내주오(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울서 나고 자란 내가 ‘어릴 적 향수병’이 도지면 듣는 곡이다. 특히 후렴부분을 허밍하곤 한다. “시골 길, 날 고향으로 데려가 줘요/내가 속하는 그 곳으로”
그런데 이번에 한국가보니 시골길이 없다. 신작로도 없었다. 마을길이 콘크리트길로 또 시골집의 마당까지 경운기나 용달차, 자가용이 드나들기 쉽도록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다. 치솟는 빌딩들에 국내외의 사건 사고들. 미국이나 한국이나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우리네 삶들.
 미국인들에게도 ‘가족사 쓰기’를 권하면 자기들도 이민자이며 한국처럼 족보가 없으니 수긍하는 분들이 꽤 많다. 또 요즘은 <뿌리 찾아주는 회사>가 TV광고에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중학생에게 학교숙제로 자서전을 써오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
우리 한인 사회에 족보가지고 이민 온 가정이 얼마나 될까? 남편이 장손인데 아버지가 육이오 때 전사하시니 문중 일을 시숙부님이 도맡아 하셨다. 한질은 될 듯한 족보도 숙부님댁에 보관되어 있어서 따로 부탁드렸다. 종중회의에서 시제를 거쳐야 한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고 결국은 받을 수가 없었다. 사촌들에게 복사를 부탁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역사는 영웅이 만들지 않는다…'보통 사람', '작은 사람들'.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조각처럼 모아서 책에 담는 '노벨상 작가' 알렉시예비치”가 있고 또 고은시인의  ‘만인보(萬人譜)’에는 등장인물이 5,6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본인의 가족사를 쓰는데 소설가나 시인이 되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구태여 자서전이 아니라도 나의 경험과 삶의 지식을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기억하는 범위에서 나만의 기록으로 ‘인생여정표’나 ‘신앙족보’등을 권하고 쉽다. 많은 분들의 지난 삶을 듣다보면 그대로 영화요 소설이다. 
 어떻게 쓸까? 시작이 반이라지만 겨우 시작해도 엉킨 실타래처럼 진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포커스리더쉽”에서 배운 것을 응용한 방법이다. 묵은 달력 뒷면에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으로 크게 나눈다, 기쁘고 슬픈일 등을 작은 포스트잇의 색대로 구별해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시대별로 붙인 후 정리하면 된다. 또 자녀들에게는 손 편지로 손자들에게는 옛날 이야기하듯 육성으로 녹음을 해 놓으면 어떨까. 사진마다 짧은 메모를 써서 정리하는 것도 좋으리라.
알프레드 디 수자(Alfred D'Souza)의 글에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다(Happiness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고 했다. 특히 후손들이 뿌리내리고 잘 살아가야할 이 나라에서 먼 훗날에는 이민 일세대가 시작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출생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긍정적이며 부정적인 모든 경험들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재발견하고 참 행복을 전하는 귀한 뿌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김정숙 사모<시인, 달라스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