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한 해를 보낸다는 것

2017.12.22 12:09

KTN_WEB 조회 수:148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한 해를 보낸다는 것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8-19)

 

12월에 결 고운 비가 밤이 새도록 낮이 저물도록 내렸다. 가끔 번개도 치며 퍼 붓기도 했지만 ‘거스트윈드’ 없이 제법 조신하게 내렸다. 한자리에 뿌리박고 사는 나무에서 태어난 잎들이 할 일을 마쳤다고 못가 본 옆집을 바람 따라 기웃거리고, 어떤 패거리들은 모퉁이를 돌아나가 큰 길에서 차들에게 쫒기기도 하더니 빗길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비에 푸욱 젖는다. 이제 나뭇잎이 한 생애를 마치고 거름으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성탄절이 지나면 2018년의 새해가 마지막 코너를 돌아서 나올 참인데 ‘한해를 보낸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하면서 다짐했는데 나이테를 키운 나뭇잎 보다 못한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세상이 갈수록 어둡고 험해서 뉴스를 안 듣고 안 본다는 분들이 많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데 기도하기 위해서라도 뉴스에 민감해야 된다고 조심스레 말하는 M이 ‘2017 BMW 댈러스 마라톤을 빛낸 최고의 장면’이라는 11일의 동영상을 폰으로 보여 주었다. 막상막하로 12위를 달리다가 결승선을 얼마 안 남겨둔 지점에서 1위 주자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넘어졌다. 2위 주자는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 일으켜 세우고 부축했다. 1위 주자는 몇 번이고 넘어지면서 괴로워했고 2위 주자는 그 때마다 일으켜 세우며 “당신은 할 수 있다. 거의 다 왔다. 일어나라.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앞에 있다” 등 격려의 말을 속삭였다. 결승선 테이프 앞에서는 손을 댈 수 있도록 몸을 잡아주기까지 했다. 1위 주자가 테이프를 끊는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고교생인 아리아나 루터먼(17)은 준우승을 했고 인터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밖에 없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또 ‘고펀드미’(GoFundMe)의 사연을 들려준다. 필라델피아 외지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던 27세의 여성이 자동차의 LPG 연료까지 떨어져 도로에 멈추어버렸다. 늦은 시간이라 다른 차도 보이지 않아 당혹스런 순간, 인근에 있던 노숙자 보빗이 LPG 충전소까지 가자고 함께 밀어보았지만 불가능을 깨닫는다. 보빗은 그녀에게 차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기다리라하고 떠난 얼마 후 휴대용 LPG 충전기를 사다주었고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던 그녀는 돈을 갚을 수가 없었다. 안전을 걱정해 차안에 있도록 당부하고, 전 재산을 털어 집까지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노숙인을 찾은 그녀는 충전기 값 20달러 외에도 따뜻한 재킷을 챙겨주는 등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선뜻 도움을 줬던 것처럼 나도 그의 재기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고펀드미’에 올려 12일간 2천명 넘는 분들의 온정으로 11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한다.

 

나도 최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할아버지에게 패딩 점퍼를 벗어 덮어주고 응급조치를 한 한국의 중학생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등굣길에 할아버지가 길 중간에 누워계신 것을 보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계속 누워계시면 동상에 걸릴까 봐 어깨랑 가슴 쪽을 쳐보니까 숨을 쉬셨다"고 했다. 상체를 일으켜 자신의 품에 기대도록 하고 다른 학생은 입고 있던 자신의 패딩 점퍼를 벗어 노인의 몸 위에 덮어드리고 또 한 학생은 힘이 들었지만 노인을 등에 업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이에 의해 그 세 소년의 선행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헬 조선을 외치는 청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속에 뛰어들어 휠체어 탄 할머니를 구한 청년들. 불길 속에서 4명을 구하고 산소마스크까지 내준 후 자신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진 소방관. 데뷔 후 10년 넘게 40억 원이 넘는 돈을 남몰래 기부한 젊은 가수. 긴박한 지진순간에 주저앉은 청소부 아주머니를 챙긴 학생들. 또 버스 정류장의자에 놓인 '네모난 봄' 노란방석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직접 만든 방석을 새벽 3시쯤 정류장에 두어서 추운 새벽이나 늦은 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앉을 수 있도록 2014년 겨울부터 4년 째 해왔다고 했다.

 

세계도처에서의 크고 작은 전쟁과 국가 간의 힘겨루기, 인종과 종교, 개인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대형 참사들. 북한의 핵개발과 최근엔 예루살렘문제로 국가와 정당까지 얽히고설키어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상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굵직한 뉴스의 언저리에서 작지만 밝고 따듯한 소식들! 지구상의 구석마다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이들의 숨겨졌던 사연들. 알려 질 때마다 고맙고 살맛이 나는데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은 얼마나 더 값지고 아름다울까! 그들로 인해 감사로 한 해를 보내게 하심이 더욱 감사하다.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