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만남의 방, 작은 둥지

 

새해 새 아침! 차가워서 더 맑고 투명한 쪽빛 하늘에 몸을 담그면 귀여운 스머프가 될 것 같다. 지난 며칠간 하늘이 회색빛으로 찌푸리고 영하로 떨어졌다. 진눈개비까지 흩뿌리며 점퍼의 모자까지 벗기려들던 매서운 바람이 신년 불꽃놀이에 놀라서 달아났나보다. 나비는 햇빛 따듯한 꽃방의 내 의자에서 잠들어 행복한 꿈을 꾸는지 가끔 골골거린다. 녀석이 잠을 즐기게 두고 컴을 들고 부엌식탁에 앉으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이웨이에는 가끔 에이틴윌러만 지나간다. 동넷길은 새해맞이 파티로 덩달아 늦잠이 들었는지 지나는 차가 없고 개밥 그릇을 기웃거리는 작은 새 한 마리. 이런 날은 원두커피보다 ‘아줌마커피’가 제격이다. 12Tall 스타벅스 머그에 한 봉을 넣으니 달콤하게 부드럽고 연한 맛이 입술에 닿는 우윳빛 머그의 질감과 앙상블을 이룬다. 힘들어서 순간 도망가고 싶던 12월이 가버리니 벌써 추억이 됐다.

 

 “성탄장식까지 예쁘게, 벌써 정리해 놓았네요. 이 쇼핑센터의 식당을 가끔 와서 알아요. 폰의 GPS도 있지만 자세한 약도와 비즈니스카드 그리고 살롱전경까지 텍스트로 보내 주었으니 누구나 쉽게 찾지요. 살롱입구에서 26번방을 표시한 예쁜 사인도 눈에 바로 띄었어요. 고마워요. 근데 분위기는 어때요?” 여든 되신 분이 옮긴 곳 찾느라 고생하실까봐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프레스톤 센터는 인우드 같았는데 여긴 케롤톤 지역 같아요.” 

 

‘달라스의 노른자라는 프레스톤’의 헤어기술자라고 콧대가 높아서일까? 해가 바뀌도록 ‘하이, 바이’가 없다보니 정원이 아름다운 초대형 저택에 높은 담치고 사는 인우드지역 같았는데 옮기는 첫날부터 인사받기 바빴다. 어디나 사람 사는 세상은 같다보니 그 말을 알아듣고 이내 덧붙인다. “일하는 사람들이 따듯한가 봐요! 방이 참 많네요.” 

 바쁜 연말에 프레스톤 센터의 살롱 오너가 비즈니스를 접는다니 20여명 모두 방을 비워야했다. 성탄장식까지 해 놓았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야할지. 물론 좋은 곳을 예비해주실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옮길 곳을 찾으러 다녀야 하는 스트레스는 별개였다. 잘 익은 크리스천이 덜된 증거이리라. 복잡한 마음에 속상했고 손님들께 미안했는데 그곳과 7분 거리인데도 많은 분들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주차장이 넓어서 편하고 단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안타서 좋고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어 깨끗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으니 고마웠다. 벤으로 3번이나 나르고 정리하던 몸과 마음의 고생이 아포카토 커피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다. 

 

처음에는 20명 넘는 네일텍들과 근 8년간 컨츄렉으로 일했는데 주인이 바뀌니 대우가 달라졌다. 그 후 대형 살롱에 방을 얻어 독립한지 15년 되었고 오너들이 비즈니스를 접는 바람에 다섯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모든 계약과정과 새로운 비지니스카드는 물론 손님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확인해야한다, 자본주의에서 ‘을’이라는 씁쓸함도 들었지만 이번에 힘들게 옮기고 보니 손님들이 새삼 고마웠다. 그 긴 세월 거리를 마다않고 따라와 주다니…….

 만남의 방! 사랑하는 일터이자 학교이며 기도를 나누는 작은 둥지. 손님들의 손발톱을 다듬으면서 미국말과 문화와 인간관계를 배우며 수고비보다 후하게 주시니 그건 장학금이다. 의사, 변호사, 교사, 정원사, 공무원, 회계사, 보험설계사, 부동산중개사 등 직업에 따라 다양한 미국을 배운다. 각자 취미에 따라 또 다른 면을 배우면서 그분들께 한국의 역사, 지리, 음식과 전통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위안부문제와 6.25 남북분단, 이북과 대한민국, ‘평창’이라는 발음이 어려운 동계올림픽. 또 부부와 가족과 손자들, 비즈니스, 건강, 교회생활까지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한다. 언제 ‘리타이어’할 거냐고, 은퇴하지 말라는 분들에게 “몇 년 전에 다리를 다쳐서 ‘리타이어(타이어 바꿈)’ 대신 쇠막대 3개를 박는 ‘리모델링’을 했으니 당분간은 ‘타이어 바꿀 일’ 없겠지요. 그러나 그 분 만이 아시겠지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나의 새해는 10월 중순부터 시작이 된다. 손님들의 계획에 맞추어 새해의 planner에 요일과 시간을 미리 예약해야 된다. 전화 받고 예약 잡고 컨펌 텍스트를 해야 하니 스케줄 북은 필수다. 그런데 친구가 2018년 12month/ daily planner를 사 주었다. 부드러운 가죽표지에 금박으로 "For I know the plans...Jeremiah 29:11" 라고 쓰여 있다. 매 달과 매주에 성경말씀이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보게 되니 장래 계획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주님이 올 한해도 허락하시면 이 작은 방에서 만나게 될 누구든지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세워주며 서로 배우고 기도하며. 또 그렇게 보내리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11)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