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

 

“해피 뉴우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많이 춥네요. 감기가 무서워요. 따듯하게 감싸고 조심하세요.”
이 계절에만 나눌 수 있는 복된 말. 누구든 사랑과 배려의 정을 주고받는다. 또 새해에는 무엇을 다짐하고 결심했는지 묻기도 하며 덕담을 나눈다. 그 새해가 벌써 3주가 지났다. 

 

명륜동 대학시절 길 건너에 지하다방이 있었다. 지금도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존 덴버의 “투데이”를 듣다보면 마음은 여섯 명이 뭉쳐 다니던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그 지하 다방은 아주 넓었다. 유리 탁자에 반듯하게 앉는 의자가 있는 곳은 대체로 학생들이 있어서 ‘투데이’라 했고 좀 더 안 쪽의 지친 몸을 감싸주는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쉬도록 한 곳을 ‘예스터데이’로 불렀다. 주로 의사와 교수님들이 계셨지만 우리는 ‘예스터데이’에서 한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투데이’에서 조잘거리기며 오늘만을 사는 투데이의 가사처럼 친구의 사랑을 응원하기도 했다. “어제의 영광에는 만족할 수 없어요 겨울이 약속하는 봄의 꿈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어요 오늘만이 나의 순간, 바로 지금이 나의 삶일 뿐이지요” 

어제가 있기에 오늘을 선물로 받은, 우리 앞에 놓인 ‘삶이라는 새해 새 일기장’, 얼마나 오래 살 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써 넣으며 살지는 각자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새로운 결심과 계획을 세운다. 본보기로, 길잡이로 알려주던 다양한 기사들. 

 

인도의 101세 할머니 스프린터, 86세 남아공의 마라토너, 미국 최고령 85세의 보디빌더, 90세 대학 신입생이 된 러시아의 할아버지. 한국도 못지않다. 환갑 넘은 의사의 스무 가지 취미생활, 수 십 트럭분의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는 할아버지 박사님들, 노인들뿐이 아니다. 억대 연봉대신 트럭모는 ‘정신나간’ 정신과 의사, 장기려박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의사 된 후 왕따 당하는 양심 치과의사, 최전방 부대에서 전역하는 병사에게 10년 째 나무도장과 이름이 새겨진 반지를 직접 깎아 선물해주는 분, SAT 만점 받고 하버드대 유학생으로 해병대에 지원한 청년, “타임지가 선정한 10대”로 순댓국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17세의 모델청소년 , “홀로 이겨내기에도 벅찬 세상이었을 텐데, 낙태하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보육원 출신의 19세 카바디 국가대표 선수 등 어제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소개한 기사들이 많았다. 

 

‘한국의 슈바이처’,’이 땅의 작은 예수’ ‘바보 의사’라고 불렸던 장기려박사의 삶을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중앙일보 뉴스가 새해 벽두에 있었다. “48년 전 부모 도와준 의사에게 은혜 갚은 아들”인 P씨는 부산 고신대학교 복음 병원에 매년 18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48년 전 부친의 병원비를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라고 했다. 장기려박사가 간암 진단 받은 아버지의 병원비를 사비로 내주었고, 만삭의 몸으로 남편을 간호하다 임신중독증을 앓게 된 어머니도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니가 무사히 낳은 아기가 자신이라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 장기려박사님께 큰 빚이 있으니 언젠가는 꼭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빚을 이제야 갚게 됐다”고 밝혔다.

유언대로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고 비문에 적혀 있는 장기려박사. 1.4후퇴 때 환자를 돌보는 와중에 부모와 부인, 5남매를 평양에 남겨두고 둘째 아들만 데리고 피난길에 올라 이산가족이 된 분. 늘 기도로 만난다며 평생 재혼하지 않았고, 혼자만 특혜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권유도 거절했다. 부산 영도구에 천막을 치고 병자를 치료하며 동료들이 억울하게 모함할 때도 병원을 떠나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고 병원비 낼 돈이 없으면 몰래 문을 열어 줄 테니 도망가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지난 95년부터는 당뇨병과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매일 청십자병원에서 영세민 10여 명씩 진료해 주다가 95년 성탄절 새벽에 생을 마감하였다. 전쟁 후 절대빈곤시절에 ‘천막 무료진료’부터 의료복지 정책인 ‘청십자 의료조합’까지 그의 사랑이 이뤄낸 기적이었다. 요한복음의 말씀이 생각났다.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을 믿으며 말씀대로 주님을 섬기다가 가신 장기려박사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병원 빚을 해마다 같은 액수로 갚겠다는 분의 소중한 마음을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다른 이에게 받은 도움을 얼마나 갚고 살았을까. ‘주님을 섬기다가 간사람’ 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살 수는 없을까. 속으로 허밍 해 본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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