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칼럼] 시공(時空)속의 닮은 꼴, 그 전설을 읽다

 

<제18화> 방외인(方外人) 김시습과 디오게네스

 

조선 전기의 한문학은 건국 초기 권력과 토지를 차지한 개국공신들인 훈구파, 지방 유지들의 사림문학파, 집현전 중심의 관인문학파들의 전유물이었다. 한문학은 신분사회의 지배층이 자리를 굳히고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문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왕조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던 비주류 인사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이들은 훈구와 관료와 사림을 다 함께 비판하고 나선 이른바 방외인(方外人)이었고 이들은 방외인 문을만들었다.


 방외인은 말단 사대부 또는 그 이하의 출신이어서 조정 진출이 어려운데다가, 자기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결국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높은 층이었다. 당시 이단이었던 불교나 도학에 심취했던 조식, 서경덕 등이 여기 속하며 무엇보다 방외인 문학의 선구자는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었다.


 김시습은 무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생후 8개월에 글뜻을 알았다 하며, 3세에 스스로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질을 타고 났다고 한다. 5세 때 이미 <중용>, <대학>에 통하여 신동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어린시절 세종대왕이 그의 천재성을 듣고 5세의 김시습을 불러다가 글을 짓게 하자 서슴없이 글을 지었다. 그 내용에 감동한 세종대왕이 시습의 재능을 칭찬하며 선물로 비단 한필을 내렸다. 어린 시습이 들고 가기에 무거웠던지라 그는 비단을 풀어 허리에 묶어 끌면서 가져갔다는 일화가 있다.


 소년기에 그는 당시의 석학인 이계전, 김반,윤상 등을 찾아가 수학하였고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던 중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들었다. 그는 3일 동안 문을 닫고 번민하다가 통곡을 하고는 책을 불살랐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후에 크게 쓸테니 학업에 열중하라” 당부했던 말을 잊지않고 있던 시습에게는 생의 목적이 없어졌을 것이다. 이제 누구에게 충성을 한단말인가. 사실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찬탈이 없었다 하더라도 자기 재능을 인정받기 어려운 처지였고, 비판적인 성격이 또한 문제였다.


 김시습은 방랑자가 되어 떠돌았으나 시를 짓는데서 무엇보다 큰 보람을 찾았다. 그는 ‘마음과 일이 어긋날 때에 시를 빼놓는다면 즐거울것이 없다’라고했다. 이것이 그의 문학정신이었다. 그는 관서·관동·삼남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했는데,〈매월당시사유록 每月堂詩四遊錄>에 그때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靑春扶社稷 (청춘부사직) 
젊어서는 사직을
白首臥江湖 (백수와강호)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 한명회(韓明澮)

靑春亡社稷 (청춘망사직)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 김시습(金時習)


세조에 충성한 한명회(韓明澮)의 시를 보고 운을 바꾸어 조롱하기도 했다. 31세에 경주 금오산에서 지내다가 47세에 안씨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으나 자식 없이 죽었다. 상처한 후 홀로 지내다가 홍산의 무량사에서 매월당 김시습은 59세로 사망했다. 그의 유언대로 절 옆에 묻었다가 3년 후에 파 보니 얼굴이 산 사람과 같았다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은 그가 큰 한을 품었다고 하여 비석을 세워주며 혼을 달랬다고 한다. 뒤에 중종은 이조판서로 추존하고 시호를 내렸으며, 선조는 이이로 하여금 김시습 전기를 쓰게 하였고, 숙종 때는 해동의 백이(佰夷)라 칭송하며 남효온과 함께 영월 육신사에 배향되었다. <신귀설>, <생사설>, <태극설> 등 글과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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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Diogenes, BC 412-323) 
 

 디오게네스


 디오게네스(BC 412-323)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흑해 남쪽 도시 시노페에서 환전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어려서 그의 부친이 위조지패를 만들었다가 들통이나 체포되고 그는 추방되었다. 추방당한 디오게네스는 아테네로가서 당시 현자였던 안티스테네스에게 가르침을 받지만 얼마안되어 그는 스승을 능가하게 되었다.
 그는 철학자이면서 ‘개(犬)'였다. 그는 왜 ‘개’였나. 그는 개 학파에 속하고 개처럼 시장통에서 얻어먹으며 천연스럽게 살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 디오게네스 만큼 자신의 신념대로 산 자유인은 지구상에 몇 없을 듯하다. 우리 시대의 홈리스의 원조, 청빈의 원조, 거지의 원조, 무소유의 원조는 디오게네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또 디오게네스는 술통을 가져다 거처로 삼았다. 하루는 어느 심술궂은 젊은이가 디오게네스의 술통을 부숴버렸다. 그러자, 시민들이 그에게 다른 술통을 하나 보내주었다. 시민들은 그 못된 젊은이를 채찍으로 벌을 주었다. 오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었던 디오게네스를 사람들은 진실로 사랑하였던 것이다.
 어느 연회석상이었다. 사람들이 마치 개에게 하듯 디오게네스에게 고기 뼈다귀를 던져주었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자리를 뜨기 전에 개처럼 한 발을 들고 그들에게 오줌을 갈겨주었다. 또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무엇 하는 거요?”그가 말했다.“인간을 찾고 있는 거라오.”
 언젠가 디오게네스는 한 질문을 받았다.“당신은 어디 시민이오?” 그가 짧게 답했다.“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코스모폴리탄이라는 말은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는 어느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던 중 일단의 해적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레타 섬의 노예시장으로 끌려가 부자인 크세니아데스에게 팔렸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나는 노예이긴 하지만 그대는 나를 따라야만 하오. 의사나 키잡이가 노예라 해도 그대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할 테니까.”

 

 디오게네스가 노예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리스를 정벌하고 코린토스에 머믈러 있던 알렉산더 대왕이 정치가나 학자들의 알현을 받았다. 그는 디오게네스도 알현 해 줄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철학자는 듣지않았다. 대왕은 이 완고한 철학자에게 흥미를 느껴 그를 찾아갔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양지에 느긋하게 드러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미를 느끼고 그는 약간 머리를 쳐들고 흘깃 옆눈으로 쳐다보고는 다시 그대로 누워 버렸다. 대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대왕 알렉산더다!”그러자 철학자도 조용히 말했다. / “나는 개 디오게네스다.” 대왕이 물었다. /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대는 선한 자인가?” / “그렇다.” / “그렇다면 선한 자를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겠는가?”/ “소망이 있다면 내게 말 해 보라.” / 이때, 철학자는 한 손을 쳐들어 대왕을 떠밀듯이 하며 “햇볕을 가리지말라”고 했다. 그러자 시종 무관들이 그의 오만함에 화가 나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대왕은 그들을 말리면서 한마디 했다.“내가 만일 알렉산더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는 걸 원했을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90세가 되어 스스로 숨을 멈추어 죽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문 옆에 묻었다. 그 무덤 위에 돌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대리석으로 된 개를 장식했다. 위폐범 낙인을 찍어 추방했던 그의 고향 시노페에서도 기념비를 세워서 그를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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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재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