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2018.04.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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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이민을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부근에 있는 성당이다. 성당은 한국도 그렇지만 한 교구에 몇 군데, 교포성당 같은 경우는 한 도시에 한 본당 정도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보통 한 번 속한 본당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본당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죽을 때 까지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공동체에 발을 내 디뎌 알게 된 교우들과는 몇 십 년을 함께 동거동락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이웃사촌 개념을 넘어, 주님 안에서 한 지붕 한 가족처럼 오랜 세월 사소한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누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 그런데 지난주에 20여년을 함께 신앙생활을 한 자매님 한 분이, 짐작보다 갑자기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고향이 녹차밭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 분이었다. 친정어머니 고향이 순천인 관계로 어머니도 친정식구 대하듯 하셨고, 우리자매도 친언니처럼 따르던 분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고우실뿐더러 성품도 착하시고 인정이 많아서 온 공동체 분들이 좋아하셨다. 또한 그분은 20년 전부터 암환자이기도 했다. 이민 오기 전부터 한국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고 오셨는데, 재발이 반복되어 끊임없이 항암치료를 받고 살았다. 그러나 초 긍정적인 성격과 굳은 신앙심으로 꿋꿋하게 치료를 받으며 암 덩어리를 몸에 지닌 채 살아오셨다. 오죽하면 이곳 암 닥터들조차 치료를 받으러 가면 아직 생존해 있었냐며 고스트가 온 줄 알았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했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그 자매님은 삶으로 보여주었다. 절대 절명의 병고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은총이라 여기며 즐겁게 사시려고 노력을 했으며, 그 몸으로도 주변에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 또한 기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우리 모두에게 몸소 보여주신 분이기도 했다. 

그분을 보며 느낀 것은 삶의 신비, 신앙의 신비는 무슨 거창한 체험이 아니라 그냥 일상을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나날을 소중히 여기며 매순간을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나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그분의 의도를 눈치 채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 자매님은 늘 이렇게 얘기 하셨다. 난 늘 덤으로 살고 있다고, 늘 감사하다고,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가끔 난 판박이 같은 일상이 지루해서 푸념을 할 때가 많았는데 그 분을 뵈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쑥 들어갔다.

몇 년 전엔 본당에 사물놀이팀을 만들어 자매님 부부 주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모두 중년이 넘은 분들이었지만 연습을 할 때만은 나이를 잊고, 환자라는 것을 잊고 신명나게 북을 치고 장구를 쳤다. 여름날 수박을 먹으면서 자매님 남편 되시는 형제님의 판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흥보가 중 놀보가 화초장을 짊어지고 가는 대목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고향마을 시원한 정자에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잠시나마 이민살이의 시름을 잊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며칠사이에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미사참례를 했던 그 자매님이 삶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뷰잉(viewing)을 하는 날 평화가 깃든 자매님 얼굴을 보며, 죽을 때 표정이 고인의 평소 삶을 대변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선한 얼굴이, 평생을 달고 살아온 병고(病苦)가 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신이 좋아했던 진분홍빛 꽃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근에 일본작가 사노요코 의 암투병기 <죽는 게 뭐라고> 가 사후에 발간되어 한국에서 인기이다. 70대에 암 선고를 받은 작가는 죽기 전까지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살아있다’ 며, 죽음이 얼마나 우리의 삶과 가까운 곳에 있는지를 상기 시킨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삶을 증언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침묵의 수도로 유명한 트리피스수도원에서 허용하는 단 한가지말도 “형제여, 우리 죽음을 기억합시다.” 이다. 만일 우리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죽음을 기억한다면, 사랑이나 용서에 대해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아집이나 욕심에 사로잡혀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매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길 것이다. 서로를 용서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좀 더 사랑하며, 좀 더 나누며, 좀 더 훌륭하게 말이다. 작가는 가장 소중한 것은 돈으로 살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동안 그저 남은 동안 제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의 다른 책 <사는 게 뭐라고>도 지금 인기몰이 중이다.  *

 

“나는 내일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며
비가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사노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 중에서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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