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요즘 엄친아

2018.05.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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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요즘 
엄친아! 

아직 서른도 안 된 작은 아이는, 최근에 우리가 세 번의 이사 끝에 마련한 집 보다 더 값나가는 집을 구입하였다. 오스틴 다운타운이니 방 두 개짜리 타운하우스가 그렇게 비싼 것은 당연한데, 이십대 후반에 이민을 와서 아파트와 렌트 하우스를 전전하다 삼십대 중반에서야 겨우 집을 장만한 우리에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이니 우리처럼 늦은 나이에 이민을 와서 버벅 거리는 영어로 생계를 위해 앞 뒤보지 않고 살아온 거와는 출발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간혹 아이의 퇴근 무렵이나 주말에 전화를 해보면 아이의 목소리는 늘 처져있고 피곤해 보인다. 엄마의 직감으로 왜 목소리가 그렇게 힘이 없냐고 하면 아이는 그저 피곤해서 그런다고 말한다.

허긴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월급을 그저 주는 대기업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아이가 하는 일은 소프트 엔지니어라는 잡으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일감을 집에 까지 가져와서 하는 일도 잦다. 요즘 젊은 아이들의 선망이라는 회사에선 하루 세끼, 일류 세프를 데려다 놓고 쿡을 해서 먹이고, 근무시간에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자유로운 시스템인데, 알고 보면 그 것도 직원들을 더 붙잡아 놓고 일을 부려먹으려는 고단수 수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몇 년 사이에 배가 좀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집엘 가보면 식기구는 거의 없고 냉장고안 에는 물과 맥주뿐이다. 그 흔한 도마와 칼도 없어서 지난번 방문 땐 된장국을 끓일 때 남편이 평소 지니고 다니는 비상용 스위스 칼로 호박과 두부를 잘랐다. 아이의 타운하우스 부근에 레이디버드 레이크 도 있고 근사한 조깅코스도 많건만 어려서부터 운동을 싫어했던 아이는 퇴근을 하면 그저 컴퓨터나 티브이를 들여다보다 잠드는 즈 아빠세대처럼 사는 것이다.

이민 1세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대학 갈 무렵엔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비리그나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 아니면 의대나 법대를 나와 전문직을 갖기 원한다. 그래서 주변에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낸 부모는 모든 이웃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건 여전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곳에서 살 만큼 산 이민 1세들의 엄친아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식들이 돈 많이 벌고 죽어라 일만 하면서 행복하지 않는 것 보다는, 돈을 조금 못 벌어도 제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다. 눈만 뜨면 동네 입구에 조기(弔旗)가 걸리는 세상, 걸핏하면 젊은 아이들이 사고로 죽거나 자살을 했다는 불행한 뉴스들을 심심잖게 듣게 된다. 유명한 심장전문의 아들이 너무 일만 하고 살아서 며느리에게 이혼 당했다는 이야기나, 하버드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여지 것 백수라는 엄친아 소문은 이젠 뉴스도 아니다. 어쩜 우리는 엄친아들의 실제 삶은 모른 채 유명 상표처럼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죽어라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과연 요즘 세상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고 믿지 않으며, 흥부나 콩쥐가 끝까지 잘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왜냐면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에 착한 주인공이 끝까지 착하란 법도 없고, 악역을 맡은 상대 역시 끝까지 나쁘기만 하란 법도 없다. 어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우리네 삶 주변을 도사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동화처럼 쭉 이어지는 그림 같은 삶은 없는 것이다. 한 때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엄친아들이나 시대의 아이콘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즐길 줄 아는, 여유있는 삶의 태도와 좋은 인성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도 여가를 즐기며 이웃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세상사 콩 심은데 콩 나는 법인데, 워크 홀릭인 부모가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아무리 다그쳐 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나 역시 이번 마더스 데이엔 “아들아! 엄마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살아다오” 라고 말 할 생각이다. 그러나 모른다. 엄친아를 둔 엄마들이 근사한 명품백이나 신발, 차를 몰고 와서 자랑을 하면 당장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엄친아 타령이 다시 나올지, 그러나 세상에 무엇이든지 잘하고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엄친아는 없다. 그저 그런 이상형의 자식을 바라는 부모들이 있을 뿐이다.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