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혼불>과 여름

2018.07.13 09:31

ohmily 조회 수: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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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혼불>과 여름

 

달라스 문 닫는 서점에서 최명희의 혼불 6,7권을 발견했다. 지인과 함께 매운 회냉면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유월은 하염없이 푹푹 찌고, 어디 시원한 소식 하나 없는 오후, 서점이 있던 자리는 이제 옷 가게가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달라스에 있는 두 군데의 서점 중 한 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점점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는 추세이다. 날마다, 매초마다 수많은 읽을거리가 소셜 미디어에 흘러넘치고, 필요한 책은 e-book을 구입해서 읽는데, 굳이 과거의 유물 같은 종이책을 사서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달라스에 장 보러 가면 짬짬이 서점에 들르는 일이 즐거운 일 중 하나였는데, 마치 종로서점이 사라진 것처럼 서운하다.

 

무더운 여름, 독서만한 피서법이 없다. 그것도 그냥 쑥쑥 읽히는 대하소설을 쌓아놓고 선풍기 아래에서 읽다보면, 밖이 사막으로 변해 가도 열 폭탄이 쏟아져도 상관없다. 예전에도 토지 전권을 추운 겨울날 저녁마다 읽은 적이 있다. 겨울 해는 일찍 져서 오후 5시면 깜깜한데, 저녁 먹고 나면 딱히 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럴 때 차 한 잔 곁에 두고 책에 몰입하다 보면 긴 겨울밤이 짧아진다. 또한 밖은 쓸쓸하고 춥지만, 마음은 고향에 돌아 간 듯 푸근하고 따뜻해졌다. 그런데 이번엔 가운데 두 토막 같은 6,7권만 있으니, 첫 권부터 빌려볼까 하다 그냥 읽기로 한다. 그러나 저러나 어쩌다 두 권만 남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대하소설을 중간부터 읽는다고 하자, 이 책 전권을 소장하고 계시는 킬린 문우께서 웃으신다. 그런데 읽다보니 오래전 <신동아>에 연재되었던 ‘혼불’을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스토리를 이해 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 전라도 지방, 특히 남원쪽 방언과 풍습, 세시풍속 등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진 이 소설은 구한말, 일제강점기때 민속사나 다름없다. 지금은 사라진 관혼상제나 양반가나, 노비, 양민 등 모든 계층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남원은 옛 친구의 고향이기도 하다. 소설에 나오는 양반가 규수 같았던 그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미스 춘향에 뽑히기도 했던 친구의 흑단 같은 긴 머리와 고운 눈매가 아련히 떠오른다.

 

 <혼불>은 작가 최명희가 거의 1980년부터 1996년 까지 거의 17여년에 걸쳐 쓴 작품이다. 1부가 동아일보 창간 60돌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되었는데, 줄거리도 줄거리이지만, 전통문화를 치밀하게 복원하고 우리 말을 풍요롭게 되살린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전라도 방언인 ‘혼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 나가는데,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혼불이 몸에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난소암에 걸려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는 52세로 생을 마감해서, 대하소설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작가의 사망이후 책은 절판이 되었고 지금은 한길사 본은 구하기 힘들고 매안 출판사에서 나온 <혼불>이 판매중이다. 민속학이나 국어학, 역사학, 판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책은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경리의 <토지>, 벽초 홍명희의<임꺽정>,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과 함께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한 획을 그은 최명희 <혼불>을 텍사스 여름에 읽는 맛은 각별하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다를 바 없다. 민어가시 보다 더 두껍고 완고한 양반(기득권층)의 가치를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평등하게 사람대접을 받고자 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서도 유효하다. 불법체류자 부모와 생이별한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고, 약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갖가지 차별에 노출된 이주민들과 노동자들이 그렇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계층의 알고리즘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 보다는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이 쉽게 변하지 않아 그런 것 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나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사물의 본질에 숨어있는 넋의 비밀들이 늘 그리웠다고 말한다. 흔한 봉숭아조차도 씨가 자라서 줄기와 잎이 나와 꽃을 피우는 것에는 작은 우주의 비밀이 숨어있다. 세상에 귀하지 않는 생명이 없다. 엊그제 나는 아이비넝쿨 곁에서 잘 자라던 분꽃 몇 그루를 더 좋은 곳에서 살게 해 주겠다며, 화분으로 옮겨 죽게 만들었다. 분꽃의 혼불이 나를 원망하며, 스르르 사라진 칠월의 저녁이 유난히도 무덥다. 


꽃심을 지닌 땅에 혼불들이 나비처럼 펄럭 펄럭 날아다닌다.  아무래도  <혼불> 전권을  다시 빌려다  읽어야겠다. *

 

분꽃의 혼불이 나를 원망하며, 
스르르 사라진 칠월의 저녁이 
유난히도 무덥다.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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