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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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이른 아침 쥬서기에 갈 서양배를 따러 가다 배나무 아래에서 배를 맛있게 먹고 있는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난 식사가 끝날 때 까지 잠시 기다려 주기로 했는데, 그래도 녀석은 미안한 지 저 만치 달아난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는 토끼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아주 무더운 한 낮 가끔은 아이비 가 폭포처럼 내려 앉아있는 화분 속 그늘에서 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텃밭 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처음엔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아나더니, 오래되니 이제 저도 객식구 햇수가 제법 되어 그런지 별로 피하는 눈치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 나처럼 노안이 온 강아지 토토는 코앞에 토끼를 보고도 다른 방향으로 마구 달리는데,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텍사스는 날이 일찍 더워 그런지 과일나무의 과일들이 빨리 익는 편이다. 포도를 비롯한 사과나 배가 가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익어 버린다.

 

이사 와서 남편은 제일 먼저 안방과 가까운 뒷마당 한 켠에 정자를 만들었다. 바닥엔 나무를 깔고 지붕은 골조만 입힌 것인데, 주변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모서리마다 심은 포도는 지붕을 타고 올라가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주고 7월 초순 쯤 되면 작은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란 시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우리집 포도는 청포도가 아니고 적포도 인데 알맹이가 얼마나 작은지 머루만 하다. 처음엔 거름이 부족해서 인지 알고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어 원래 종이 그런 걸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포도가 포도주나 포도 효소를 담기엔 안성마춤이다. 몇 년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을 때 그 부근에 있는 와이너리를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곳의 포도가 딱 우리 집 사이즈였다. 그들은 그 포도를 추운겨울에도 그냥 놔두어 얼렸다 녹이는 것을 반복해서 포도주를 만드는데 아이스 와인이라고 한다. 소위 식후에 마시는 디저트 와인인데 그 맛이 흡사 우리집에서 만든 달큼한 포도주와 비슷했다. 오직 포도와 설탕만으로 발효시켜, 처음엔 효소로 쓰다 시간이 흐르면 포도주가 된다. 그 뒤로 우리 집 포도는 별 소용없음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또한 가지에 매달린 포도는 하늘 위 식객, 새들에게도 좋은 쉼터가 되고 별식거리를 제공한다.

 

뒷마당엔 과일나무가 제법 종류별로 많다. 그러나 토양이 척박해서인지 아무리 물을 열심히 주고 거름을 주어도 과육 사이즈가 크지는 않다. 마치 소인국에서 온 과일처럼 모든 과일 사이즈가 어린애처럼 작다. 도넛 복숭아는 딱 도넛 홀 만 하고 사과는 체리 보다 조금 더 크다. 한국배는 두 입 베어 물면 딱 이고 무화과는 말린 무화과 사이즈이다. 그래도 채소밭에 물을 주다 한 두 개씩 따먹는 맛은 특별하다. 이것 저것 몇 개 따먹으면 배가 부를 때도 있다.

 

나희덕시인의 <야생사과>처럼 ‘붉은 절벽에서 스며 나온 듯한 그들과’ 같은 해를 바라보고 천둥치는 여름날을 함께 보낸 지 몇 년이 지났다. 시고 떫은 그 사과는 아직 미완성인 나의 문학과도 닮았고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끝내 크지도 달지도 않는 사과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요즘은 불쑥 불쑥 든다. 그러나 벌과 나비와 개미들은 이런 맛에 아랑곳 하지 않으니, 어떤 영혼들은 야생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야생은 크지 않다. 그들은 보호에 익숙치않고 그저 앉아서 받아먹는 모습이 없다. 먹이를 찾아 헤매 다니다 보니, 살찐 야생은 없다. 얼마 전 뜨거운 대낮에 텅 빈 들판을 걸어가는 코요테 한 마리를 본적이 있다. 낮에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무래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거친 회색털과 깡마른 몸으로 녀석은 자꾸 마을 쪽을 뒤돌아보았다. 들판의 풀은 바삭 바삭 타들어 가고 어딜 봐도 녀석이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들판을 자꾸 걸어가고 있었다. 살다보면 코요테처럼 혼자서 황무지 같은 들판을 나침반도 없이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는 때를 만나기도 한다. 

 

노르웨이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 시인 울라브 하우게의 시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해 오실 때
경비견을 데려오지 마세요
굳은 주먹도 가져오지 마세요
그리고 나의 호밀들을 밟지 말아 주세요
다만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어쩐지 당신의 민낯을 보여 달라는 시인의 말이, 어둔 밤이 아니라 환한 대낮에 자신의 뜰을 보여달라는 시인의 말이, 겉치레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의 정원을 방문할 땐 빈손으로 가야하는 법이다.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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