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미주의 문인(文人)들

2018.08.24 09:20

ohmily 조회 수: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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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미주의 문인(文人)들

 

미주 문학캠프는 해마다 엘에이에 근거를 둔 미주한인문인협회 주최로 열린다. 해마다 소설이나 수필, 시, 평론쪽에서 두 명의 강사가 초청되어 강연을 하고, 어떤 해는 덤으로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한다. 올해는 시인이자 한남대 문창과 교수인 김완하 시인과 경희대에서 시론을 강의하는 홍용희 교수가 초빙 되었다. 사막 한 가운데의 도시, 팜 스프링스에서 열린 올해의 문학 캠프엔 미 전역에서 약 백 명 가량의 문인들이 모였다. 주로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고, 시카고, 아틀란타, 달라스, 하와이에서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난 마지막 까지  참가를 주저하다 갔는데, 참 잘 했단 생각이 내내 들었다. 왜냐면 이곳에서는 모국어로, 같은 처지에서 글을 쓰는 동료들을 실컷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통한 만남이 현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물을 대조하는 기쁨도 만만치 않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문인들은 글을 통해 서로 교류를 한다. 글이 곧 그 사람이기에 이곳에서 거창한 명함 따위는 필요가 없다. 시 한편, 소설 한편이 견우가 직녀가 만나듯 긴 다리를 이어 준다. 또한 사막에서 꽃을 피우듯, 고단한 이민생활에서 건져 올린 글들은 한국문인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생생한 리얼리티와 국외자의 삶을 대변한다. 결국 이민의 삶은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며 영원히 기억 될 수 없기에, 이민자의 외로운 글쓰기는 그 나름 커다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이번 기회에 리들리(Reedly) 란 곳에서 그 현장을 체험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가운데 펼쳐진 포도밭과 오렌지, 복숭아, 알몬드 농장을 지나자 농장지대의 중심도시 프레즈노가 나타났다. 이 도시를 거점으로 킹스 캐넌과 세코야 국립공원, 요세미티 가는 길이 나누어진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2박을 이 도시에서 묵었는데, 이 도시 가까운 곳에 한인이민 역사의 중요한 디딤돌이 된 소도시, 리들 리가 있었다. 아직도 화재의 남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요세미티를 구경하고 오는 마지막 날, 가이드는 아울렛 방문외엔 다른 스케쥴이 없는 일정이 미안했던지  우리를 리들리로 안내했다. 아주 작은 동네이지만,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들이 본국으로 건너와 생존의 터를 잡고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이다. 인구 몇 만도 안 되는 도시에 한글로 쓰인 작은 독립문이 있고, 이곳을 거쳐 간 초기 이민사 인물들의 비석이 양면에 영문, 한글판으로 세워져 있다. 안창호 선생은 이곳에서 해외 시민 정치단체인 대한인 국민회를 창립, 세크라멘토 등 부근에 사는 한인들을 통해 거금의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해서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털 없는 복숭아, 넥타린을 개발해 거부가 된 한인도 있고 쌀농사로 크게 성공한 분도 있다. 아무튼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확고한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조국의 해방과 번영을 위해 아낌없이 통 큰 후원을 했다는 점이다.

 

주변에는 묘지가 있었는데, 최근에 발견한 한인 묘지가 180여구가 넘어 이곳에 꽤 많은 한인들이 정착해 살았음을 유추 할 수 있다. 마침 그곳을 방문한 날이 8.15여서 우리는 광복절 노래와 묵념을 하며 이름 없이 살다간 많은 초기 이민자들을 떠올렸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들의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지금 그들의 후손은 미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이 작은 도시에 한인 이라고는 몇 명 되지 않는다니, 어쩌면 이민의 본질은 정체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끊임없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가이드는 다른 단체관광객 팀들은 이곳을 데리고 오면 시큰둥했는데, 역시 문학을 하는 분들이라 다르다며 우리를 추켜세웠다. 나 역시 장시간을 달리는 지루한 버스안에서 미주 문인들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윈스턴 처칠의 유머와 사라브라이트만의 노래, 퇴계 이황의 유언(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과 장사익의 시조 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중간 중간 못다 한 시강의와 합평도 있었고, 동심으로 돌아간 듯 나이를 잊은 채 보기만 하면 웃고 떠들었다. 몇 천 년을 산다는 요세미티의 세콰이어 나무들이 보면, 찰나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매초가 시가 되고 소설이 될 것이다.

 

시카고에서 오신 문인 한 분은 80세에 경희 사이버대 문창과 대학원을 졸업 하셨는데, 너무 열정적이시고 생기가 넘치셔서 부실한 체력으로 여행일정 조차 소화를 잘 못하는 나 같은 후배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그분의 시 역시 젊은 시인의 그것 못지않게 기발한 상상력과 은유가 돋보인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위안은, 그렇게 살 때만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이 좀 맑아지면 즉시 키스하기를 원한다.
그의 열정이 과격해서 조심해야 한 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녀는 그 앞에서는 절제 할 줄을 모른다. 자칫 잘 못 덤비다간 그에게 혀를 물어뜯길 수도 있기 때문에 침착해야 하는데도 습관적으로 입술을 내밀고 다가간다. 먹물과 닮아있는 검은 빛깔의 넘실거림에 그녀는 이미 매료당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주숙녀 시인의 산문시 <디지털 시대의 사랑> 중에서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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