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선라이즈 도넛

2018.09.21 10:46

ohmily 조회 수:51

도넛.jpg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짧은 소설>

 

선라이즈(Sunrise)  도넛

 

도넛 홀을 판에 정리하고 있던 이집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 할수록 부아가 터지고 화가 났다. 오 년 전에 오픈한 도넛 샵이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할 만 해졌는데, 어떤 화상이 불과 오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새로 도넛 샵을 차린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가게 리모델링을 하는지 한국목수가 멕시칸을 데리고 들어와 작업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 목수는 이집사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와서 커피와 소세지롤을 사가면서 “어, 여기도 도넛 샵이 있었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집사는 물어보고 싶은 말이 굴뚝 같이 많았지만 참았다. 목수야 돈 받고 해주는 일인데 남의 사정 알 턱도 없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푸념을 늘어놓아 봤자 자신만 더 초라해 질 것 같아서였다. 사단은 이 집사의 딸 제니 고것 이었다.

 

몇 달 전 이집사의 집에서 목장모임을 하게 되었다. 목장 식구래야 몇 명 되지도 않았는데, 기도가 끝나고 밥먹는 자리에서 김 집사가 요즘 장사가 좀 어떠냐고 이 집사에게 물었다. 


“그냥 그렇지 뭐, 밥 먹고 살 정도.....”


그러자 누군가, “어휴 뭔 소리야 요즘 이 집 장사 잘 된다고 근방에 다 소문이 났던데” 했다. 


그때 키친에서 엄마를 도와준다며 사과를 깍고 있던 제니가 불쑥 튀어나와 한마디 거들었다.


“네 아줌마, 우리 엄마 가게, 장사 엄청 잘돼요, 지난달엔 삼 만불 어치나 팔았어요.” 


제니가 어설픈 한국말로 야무지게 팩트를 공개해 버린 것이다. 누군가 뭐야, 그게 밥먹고 살정도야 우리 집은 한 달 내 매상이 겨우 만 오천도 안 되는데 하며 왁자지껄 해졌다. 제니는 그 말에 한마디를 더 보태 이른 아침에 가게가 하도 바빠서 자신도 파트 타임 잡을 그만두고 엄마 도넛가게를 돕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여튼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너무 솔직한 게 문제였다. 

 

사실 작년부터 가게 뒤편으로 새 주택가가 들어서며 중고등학교가 생긴 뒤로 가게 매상이 쑥쑥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 그 매상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새로 베이커를 고용했고, 헬퍼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집사는 소문이 나면 바로 코앞에 가게를 차리는 족속들이 있기 마련이라 아무에게도 자신의 가게 위치나  매상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게 매상을 말 한 경우는 지난달 심방을 온 김목사에게 뿐이었다. 목사는 주님께 드린 것만큼 복을 받은 것이라며, 더욱 많은 축복을 이 신도에게 베풀어주십사 하고 청원기도까지 해주고 갔다. 이집사는 조만간 십일조부터 올려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새벽 두시 어두운 길 건너편에 나이트 크럽처럼 번쩍 번쩍 하는 사인이 눈길을 끌었다. “COMING SOON TEXAS DONUTS” 이라는 글자가 유리문 안에서 계속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이집사는 새삼 자신의 가게 간판을 떠올렸다. 언젠가부터 가게 상호인 SUNRISE 도넛에서 R자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고, 간판도 오래되어 색깔도 바래서 몇 달전부터 제니가 새로 바꾸자고 한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간판 요란 하다고 장사 잘되는 것은 아니건만 건너편 새 도넛가게  간판을 보니 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것들은 뭐든지 겉만 저렇게 요란하지, 도넛도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것들이....


이집사는 아직 얼굴조차도 못 본 새 도넛 가게주인을 향한 적개심을 뒤로 하고, 슬그머니 그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이 켜진 안은 커피머신을 비롯한 장비가 거의 최신식일뿐더러, 실내는 스타벅스처럼 아주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주방쪽도 손님이 도넛을 만든 것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오픈이 되어있었는데, 무엇보다 도넛 가격이 이집사네 가격보다 많게는 오십 센트 작게는 십 센트 정도 낮았다. 이것들이...... 이때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 집사는 얼른 차에 올라타며 왠지 흰색 토요타차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마침내 새 도넛가게가 오픈한 날이 되었다. 전날부터 가게 앞쪽에 풍선을 무더기로 달아놓고 지역신문지 안에는 오픈 전단지까지 뿌린 모양이었다. 


“오픈 텍사스 도넛, 원 글레이즈 도넛, 스몰커피 프리..... 웰컴투 텍사스 도넛! ”


제니가 전단지를 펄럭이며 가지고 들어왔다. “엄마, 이것 봐! 오늘 텍사스 도넛 오픈!”  이집사는 아까부터 어지러웠다. 도넛가게를 하며 생긴 고혈압 때문인지 당뇨병 때문인지 자꾸 어지럽고 뒤통수가 당겼다. 그때 며칠 전 새벽에 보았던 흰색 캠리가 건너편 도넛가게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이 집사는 그 차가 같은 교회 최장로의 차라는 것이 생각났다. 최장로는 최근에 은퇴를 하고 교회 일에 더 열심이어서 목사가 심방을 다닐 때 마다 따라 다녔다. 조금 뒤 이집사의 눈에 익은 교인들의 차가 속속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오늘따라 붉게 솟은 태양이 이집사의 속처럼 유리창을 벌겋게 물들인 것이 오늘 하루, 아니 올 여름은 무척 더울 모양이다. 이 집사는 불현 듯 선라이즈(sunrise) 도넛이 선셋(sunset) 도넛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으로, 한인주소록에 있는 ‘간판정비’ 전화번호를 찾는 손가락이 속절없이 바빠졌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B06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