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추억의 Route 66

2018.10.19 09:14

ohmily 조회 수: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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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추억의 Route 66

 

아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루트 66 선상에 있는 엘란 초(EL Rancho)라는 호텔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갤럽이라는 작은 동네에 있는 이 호텔은 서부영화를 찍던 헐리웃 영화배우들이 머물던 유서 깊은 호텔이다. 지금이야 럭셔리한 호텔에 밀려, 작은 모텔 정도로 여겨지지만 당시엔 쟁쟁한 배우들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어서 호텔 내부는 아직도 꽤 화려하다. 슈샤인 보이가 신발을 닦아주던 슈 스탠드도 그대로 있고, 각종 비싼 장신구를 팔던 오테가 라는 기프트 샵과 제법 큰 식당과 술을 마실수 있는 바가 있다. 실내는 전통적인 서부스타일로 꾸며 놨는데, 당시 이곳에서 촬영했던 영화 포스터와 배우들의 사진이 온 이층 벽을 도배하고 있다. 방 이름도 험프리 보가트나 제인폰다 이런 식으로 모두 영화배우들 이름이다. 이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이런 호텔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이런 풍경을 서부영화 세트장으로 그대로 활용한 당시 영화감독들의 기지도 감탄스럽다. 그곳에서 난 존웨인버거, 남편은 로널드 레이건 버거를 먹었다. 존웨인 버거엔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있었고 남편버거엔 엑스트라 베이컨과 양파, 후식으로 캔디가 들어있었다. 대통령까지 지낸 로널드 레이건 은 디저트로 캔디 먹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

 

포트워쓰에서 출발한 이번 여행길은 공교롭게도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주인공인 톰조드 가족이 오클라호마를 출발해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과 거의 일치 했다. 이 길은 20세기 개척자들이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서부를 향해 달려가던 루트 66이다. 존 스타인벡이 ‘마더의 도로’ 라는 별명을 붙인 이 길 주변엔 지금도 당시의 추억이 묻은 상점이나 카페, 모텔, 주유소 등이 간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타운을 지날 때 마다, 난 소설 속 주인공들이 머물던 장소를 유추해 보려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가난한 톰조드의 동생들이 눈깔사탕을 사달라고 조르던 주유소와 고물트럭을 개조해서 바리바리 짐을 싣고 서부를 향해 떠나는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산타로사나 갤럽, 홀브룩 같은 작은 타운들 말이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 무렵, 미국의 농업은 이미 산업자본주의 길을 걸으며 남의 땅을 부쳐 먹던 많은 소작인들을 맨몸으로 길을 나서게 만들었다. 1939년 존스타인 벡이 <분노의 포도>를 출간했을 때 캘리포니아에선 이주민들을 그렇게 야박하게 대한 적이 없다며,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20세기 초 미국의 화려함 뒤에 혜택 받지 못한 가난한 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루트 66를 따라가며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존 스타인벡은 소설에서 루트 66를 이렇게 묘사했다.


“66번 도로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흙먼지와 점점 좁아지는 땅,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트랙터와 땅에 대한 소유권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게 된 현실, 북쪽으로 서서히 밀고 올라오는 사막, 텍사스에서부터 휘몰아치는 바람, 땅을 비옥하게 해주기는커녕 조금 남아있던 비옥한 땅마저 훔쳐가 버리는 홍수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66번 도로는 이 작은 지류들의 어머니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어쩌면 이 길은 지금도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산업화를 겪으며, 트랙터처럼 일이 끝나면 차가워지는 기계 같은 일상의 삶을 탈출하고 싶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땅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길 말이다. 그래서 미 정부는 2003년도에 이 추억의 루트 66를 히스토릭 길로 지정하고, 당시의 루트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선 호주 청년 세 명이 모터사이클로 <분노의 포도> 루트를 체험하고자 노숙을 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미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처럼 편하게 살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젊은 청년들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존경스럽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아니 미국의 이 황금빛  나는 풍요 뒤에 숨어있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분노의 포도> 정신을 절실히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산타로사 부근에서 구글링을 하다 당시에 유명한 카페였던 ‘클럽 카페’라는 곳을 찾아갔다. 실망스럽게도 그 카페는 당시의 사인만 녹이 슨 채 서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마릴로에서 287 하이웨이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이런 고스트 타운 같은 도시들의 연속이다. 이제 루트 66는 추억의 길일뿐, 사람들은 더 빠른 길로만 이동한다. 하지만 가끔 모터 뮤지엄에 전시된 마릴린 몬로나 제임스 딘이 타고 다녔던 노란색 캐딜락이나 녹슨 트럭 같은 길도 가보고 싶은 법이다. 세상이 삭막할수록 루트 66처럼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길이 필요하다. 허스키한 낫 킹콜의 노래, 루트 66를 들으며 오는 길은 내내 비가 내렸다. 
시카고에서 엘에이 까지 가는 2천마일의 인생길 중에 나는 지금 어디 쯤 가고 있을까? 아마도 뉴멕시코 와 아리조나 접경, 갤럽이나 플래그 스태프쯤이 아닐까......노란 자작나무 잎이 팔랑거리는 가을오후는 번잡한 하이웨이 보다 루트 66가 더 잘 어울린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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