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우리 동네 시인 

2017.05.24 11:24

KTN 조회 수:131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우리 동네 시인 

 

하루하루를 미싱바늘로 찍어넘기는 우리동네 시인이 있다. 그녀를 만나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천상 시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갸늘픈 몸매와 맑은 눈빛, 삶에서 묻어나오는 진솔한 입담이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가 천상 시인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체질에 배어있는 겸손의 미학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큰 상(2016 윤동주 서시문학상 해외부문)을 받고도 그녀는 여전히 겸손한 수선을 계속하며 시를 쓰고 있다.

 

시인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내가 시를 찾아가는 유형과 시가 내 곁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유형, 그녀는 단연코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거느리기도 하지만 언어로부터 거느림을 더 많이 당하고, 시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시를 찾아가서 괴롭히는 일이 더 많다는 노력형 시인이기에 그렇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수선일을 하면서도 새벽까지 꼬박 시를 쓰기에, 그녀의  시들은 삶의 애환과 펄떡 펄떡 뛰는 생선과 같은 살아있는 인생의 현장이 그대로 묻어있다. 


누구나 내 인생을, 내 삶을 한 번쯤 수선하고 싶을때가 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 나이가 들면서 습관처럼 붙어버린 후회들은 쉽게 잘 떨어지지가 않는데에 문제가 있다. 시인의 말처럼 튼튼한 곳을 뜯을 때는 면도날이 제격인데, 늘 녹이 슨 가위나 칼로 뜯어내니 맨날 보푸라기 이는 헌옷을 걸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닳아서 자꾸 터를 넓혀가는 상처를 달래느라’ 시간을 허비해 보지만, 한번 지나간 것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 법이어서 수선하기가 더 애매하고 힘이 든 것은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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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선생은 어느날 제자가 어떻게 해야 시를 잘 쓸수 있느냐고 묻자, 잘 살면 잘쓰게 되어있다고 대답했다. 글은 기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사유를 언어로 표현 하는 것이기에 거짓된 삶에서는 좋은 글이 나올수 없다는 진리를 말씀 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득도해서 모범스럽게 잘 살면 좋겠지만, 글과 삶이 일치 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지난한 일이어서 나처럼 늘 자괴감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삶속의 작은 에피소드를 꿀벌이 꿀을 만들듯 엑기스만 뽑아 시어로 탄생시키는 그녀를 보면 천상 시인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 뿐만 아니라 연극배우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그녀는 아마도 이민 1세대가 만들어낸 초기 예술인 일지도 모르겠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예술은 사치라고만 여기던 이민사회가 이제 1세기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이민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정체성을 문학이나 영화음악, 연극, 무용 과 같은 공연으로 표출하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예술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본국에서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사막에서도 꽃을 피우듯, 황무지 같은 이민사회에서도 예술의 꽃을 토양에 맞게 피우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같은 이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우리들은 보다 높은 개연성과 공감대를 느낄수 있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한국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보다 미국작가나 이곳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글을 더 보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초하로 접어든 5월,  길을 가다 수선집 유리너머로 안경을 끼고 수선을 하는 그녀를 보게 되면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내주리라...... 단추를 달기위해 상자를 뒤적이고 있는 그녀를 보게되면 잠시 멈추고 들어가서 도와주리라.....낡고 오래된 일상을 수선하는 힘, 많은 수선집 그녀들이 우리들의 눈물을 수선해주기를 고대해본다. 우리 동네 시인은 오늘도 푸쉬킨의 시를 읽으며 수선을 하고 시를 쓰고 있을것이다. 

 

젠장 좀 넓게 누빈 게 
어떻다고

총총 누벼놓은 낡은 청바지를 
억지로 뜯고 있다

튼튼한 곳을 뜯을때는 
잘 드는 면도날이 제격인데

닳아서 자꾸 터를 넓혀가는 
상처를 달래느라

쪽 가위로 한땀씩 끊은 실낱을 
뽑아내고 있다

 

- 김미희, <수선집 그녀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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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