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격주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남부 여행 1 (알칸사에서 내슈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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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사 시골마을 호프(HOPE) 초입에는 ‘ 대통령 빌 클린턴의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란 팻말이 붙어있다. 텍사스에서 알칸사로 가는 고만 고만한 시골마을들은 딱히 내세울 것 도 없이 어딜 가나 우뚝 솟은 타운이름이 적혀있는 물탱크와 주유소 몇 개 허름한 그로서리 한 곳,  데어리 퀸 아이스크림 가게 사인을 보면 끝이다. 밋밋한 텍사스 들판에서 오래 살다보니 이제 지루한 풍경에는 낯이 익을 대로 익어서, 웬만한 지루함에는 하품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썩 볼거리가 없는 것 은 사실이다. 그래서 빈 들판의 농작물이 무엇인가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바싹 마른 옥수수를 보며 저렇게 타들어 가는 것을 왜 그냥 방치 하는 것이냐고, 열심히 비프저키를 뜯으며 운전 중인 남편을 방해하기도 한다. 가끔 나타나는 야생 해바라기 군락지를 보면 이건 텍사스 유채화 들판이라 하기도 하고, 한국의 대도시 몇 개를 건설하고도 남을 만큼의 땅을 왜 이렇게 놀리고 있는가를 처음 미국을 방문한 사람처럼 우문하기도 한다. 

 

그러다 소나무가 좀 보이기 시작하고, 텍사스에서 볼 수 없는 산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알칸사 초입에 들어선 것이라고 짐작한다. 알칸사 하면 예전에 알던 병아리 감별사 부부가 생각나는데, 아직도 그곳에 사는지 궁금하지만 아마도 영주권을 받은 뒤론 태평양이 보이는 캘리나 서울 같은 뉴욕 쪽 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대도시 체질에 익숙한 한인들이 영주권이 나온 경우  시골마을에 오래 사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이 낳은 위대한 대통령이나 정치가, 연예인이나 작가들은 시골 출신이 무지 많은데 이번 여행길에선 새삼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럴 만 한 것이 호프 라는 코딱지만한 타운이 빌 클린턴이 아니라면 누가 주목이나 했겠으며 한 때나마 미국 의 기라성 같은 50개 주를 제치고 연일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나 있겠냐는 말이다. 조금 더 가면 유명한 온천 휴양지 핫 스프링스가 나오는데 빌 클린턴은 그곳에서 고등학교 까지 다녔다. 어려서부터 우월한 공부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온 동네가 자랑하는 인재 였는데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탓에 계부 밑에서 자라면서 썩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동네에서 그로서리를 운영했던 외조부모님 댁에서 외삼촌을 도우며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티브이도 없던 시절, 유일한 취미는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이었는데, 이는 훗날 토론의 달인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는 법도 그로서리 운영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또한 튀김이 많은 서던 스타일 음식을 좋아해서 몇 년 전에 심장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온 지리적 환경은 그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대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섹소폰 연주도 수준급인 클린턴이 놀기 좋아하고 여자를 밝히는 것도 핫 스프링스의 유흥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암튼 우리는 핫 스프링스 까지 간 김에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온천 한 곳에 들러서 온천욕을 즐기고 왔다. 우리 동네 찜질방에 비하면 시설 이라곤 다른 온도의 탕 세 군데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1900년대 초 만 해도 온 미국에서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온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는 치료적인 목적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당시 제일 규모가 큰 베스 하우스를 비지터 센터로 활용하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리틀록에 들려 최첨단 스타일로 잘 지어진 빌 클린턴 뮤지엄엘 가서, 다시한번 빌 클린턴 아저씨의 빛나는 업적을 둘러보았는데 감동스런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장애인이나 은퇴한 분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래층은 어린이를 위한 자연사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여늬 대통령 뮤지엄과는 달라 보였다. 점심을 먹은 뒤 알칸사 강에서 유람선을 탈까 하다가, 내슈빌 까지 가는 거리가 만만찮아 바로 멤피스로 향했다. 리틀락에서 두 시간 거리인 멤피스엔 엘비스 프레슬 리가 살던 집 ‘그레이스 랜드’ 가 있다. 우리는 뙤약볕에 줄을 서서 43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한 뒤 그레이스 랜드로 가기위한 셔틀버스를 탔다. 우리가 낸 입장료는 가장 싼 입장료 인데, 엘비스의 개인 소장품 콜렉션( 자동차, 레코드 등 )은 관람을 추가 할 때 마다 가격은 달라진다. 그래도 엘비스를 좋아하는 광팬들은 거금(150불 정도)을 마다 않고 이틀씩이나 볼 수 있는 티켓을 끊었는데, 남편은 그레이스 랜드를 보고 나선 죽은 엘비스 에게 거금을 빼앗겼다고 엄살을 부렸다. 한마디로 볼 것 도 없는데 그렇게 비싼 입장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집 자체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저택 이랄 것 까지도 없는데, 그래도 10에이커가 넘는 부지에 지어진 집이라 부대시설이 만만찮았다. 마굿간과 라켓볼 코트 까지 갖추고 있었고, 정원, 풀장, 놀이터 ,엘비스 가족의 묘지까지 두루 두루 갖추어진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집인 것이다. 미시시피주 투펄로 출신의 가난한 트럭운전수가 로큰 롤의 황제가 되어서 그의 나이 스물 두 살 때 구입한 집인데, 어쨌든 지금도 그레이스 하게 계속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착한 집 인 것이다. 미국을 여행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은 미국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영웅을 만들어가는 나라, 영웅을 기다리는 나라인 미국은, 사후에 박물관을 짓는 걸 가지고도 탈이 많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웅들이 탄생하기에 좋은 나라임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날 오후 우리는 멤피스를 뒤로 하고 컨츄리 음악의 본고장 내슈빌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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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