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크리스마스 풍경

2017.12.15 10:45

KTN_WEB 조회 수:107

크리스마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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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처음 세든 아파트는 개인이 소유한 아주 작은 규모의 아파트였다. 한국으로 치면 규모가 한 동 뿐인 2층짜리 목조 건물 이었는데, 계단을 오를때마다 오래된 판자에서 끽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입주자들은 주로 부근에 위치한 신학교 학생들이었는데, 마당 한 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와 낡은 벤치가 있어 가을이면 아주 목가적인 풍경이 연출되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 아파트 이름은 린델 아파트였는데, 특이했던 것은 산타할머니를 닮은 주인 할머니 살림집에 일 년내내 크리스마스 장식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렌트비를 메일로 보내지 않고 일부러 직접 갖다 드렸는데, 그건 갈 때마다 산타클로스 워크샵 같은 실내를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혹 여름에 할머니 아파트 내부에 있는 트리를 보면 더워 보이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남미에서는 7월에 크리스마스를 즐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요즘에야 관광지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크리스마스 전문점이 흔해 졌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광경을 처음 본지라 난 문화충격 같은 것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또한 주위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는 미국인 특유의 개성과 취향도 엿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아주 바쁘거나 게으른 이웃 중에는 지붕에 설치해놓은 라이트를 일 년 내내 놔두었다 시즌 때만 켜는 집들도 간혹 있는데, 볼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 사실 우리 같은 한인들은 동네 분위기를 맞추느라 마지못해 라이트를 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집도 그런 집들 중 하나이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온 동네 불빛이 환한데, 우리 집만 깜깜해서 마치 크리스마스를 환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드리는 미사’(Christ+mass) 라는 뜻의 크리스마스는 실상 우리가 가장 기다리고 있는 축일 인데 말이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추수감사절에 먹은 칠면조가 소화되기 전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한다. 마치 우리가 추석이나 설을 쇠기 위해 벌초를 하거나 제수 음식을 장만 하는 것처럼 명절 개념 인 것이다. 이때만은 미국도 헤어져 있던 가족이나 친척집 방문을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 되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항공편 이용하기도 힘들고, 웬만한 주 몇 군데를 거치기 때문에 기름 값에 가장 민감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집을 떠나 몇 년 만에 돌아온 자녀나, 한 때 사이가 안 좋았던 친척이 어느 날 갑자기 산타처럼 나타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는 소원했던 인간관계를 재구축하는 축제 인 것이다. 고대로부터 인류 진화의 역사엔 축제가 꼭 필요했다. 그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친목을 다져, 단결과 일치를 이루어야 적과 싸울수도 있고, 힘든 생업을 이어 갈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축제는 꼭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지 12월에 들어서면 일단 마음이 분주해진다. 그간 고마웠던 지인들에게 할 선물 준비와 연휴에 올 아이들 생각에 괜히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다. 아리조나에서 오는 큰아이는 텍사스보다 더운 동네에 살더니, 여름에 갈 곳이 없어 유튜브를 보고 한식 만드는 것을 배웠다며, 집에 오면 그간 닦은 요리실력을 발휘 하겠노라고 한다. 작은아이는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삼겹살 과 된장찌개라고 했다. 아마도 아이가 자랄 때 제일 많이 먹었던 음식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명절에 모이면 터어키나 햄보다 한식 먹기를 더 좋아하니 한국인 유전자는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가장 훈훈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풍경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모습이다. 쇼윈도우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무리 화려해도, 불야성을 이룬 동네가 아무리 넘쳐나도 그건 그냥 장식 일뿐 마음이 오가는 것은 아니다. 꼭 선물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카드 한 장이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이웃 간의 정을 전할수도 있다.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가장 산타를 기다리는 시대, 분쟁과 갈등의 위험 속에서, 구유 속 아기예수를 지키는 길은 사랑과 온정을 나누는 일이다. 동방의 세 박사는 오늘도 세계의 화약고를 향해 먼 길을 떠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누군가의 별이 되어 준다면, 그도 내게 와서 별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머물 것이다.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