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새해의 안부를 묻다

 

미국의 체호프라 불리우며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이끈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룬 것들이 많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칸막이 열차에 탄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응시 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그는 정직한 태도로 삶이 가지고 있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들을 드러내고, 주인공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서도 그들의 내면 너머를 읽는다. 아주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그의 문체를 영국의 문예지 <그랜타>는 더러운 리얼리즘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루되 실제보다 더 가혹하게 씌어졌다는 점에서 그런 것인데, 그건 내적 독백 보다는 그저 상황과 표면만 묘사하는 방식으로도 처절한 삶이 지니고 있는 모순과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족, 술, 소설은 굉장히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요소들이다. 그는 오리건주의 클래츠 케이니에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른 나이인 열아홉 살에 첫 결혼을 했다. 나이 스물엔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였는데, 끊임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소설을 썼다. 그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다음 달 집세와 아이들 키울 걱정을 하며 살았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여러 차례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소설에 그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는 그를 두고”의심의 여지없이 레이먼드 카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들은 불행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란 작품을 보면 내일이 생일인 아이가 전날 교통사고로 죽는다. 의사는 곧 깨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아이는 끝내 눈을 뜨지 못하고, 아이엄마는 생일케익을 찾아가지 않는다며 영문도 모르고 전화를 하는 빵집 주인에게 이유모를 분노를 느낀다. 이 불행한 부부는 서로는 물론 의사나 빵집 주인등 불가해한 타인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잘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기에 지친 부부에게 빵집 주인은 부드러운 롤빵을 내밀며 자신의 외로움과 중년이 되어 찾아온 의심과 한계를 말한다. 이 이야기가 부부에게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그 뭔가가 된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대성당, Cathedral> 역시 어느날 아내의 펜팔친구였던 맹인이 주인공 부부를 방문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아내는 맹인이 마치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한다. 맹인 역시 주인공이 인사를 할때 어쩐지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한다. 잠시 후 티브이에서 대성당이 나오자 맹인은 그 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말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화면을 보면서도 뭐라고 설명을 하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은 채 연필을 쥔 자신의 손위에 맹인의 손을 얹고 그림을 그려 보인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진실로 본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한다. 대성당은 이미 상상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 이전의 어떤 것이다. 

 

이렇듯 소시민들의 깨달음은 만남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예측 불가한 인생을 통하여 삶이 지니고 있는 통속성과 불가해소성을 엿보게 된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을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때 작은아이는 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간다고 며칠을 더 머물다 갔다. 친구들은 중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집을 드나들던 아이들이기에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스티븐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우리 집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들락거리던 아이였다. 아이리시 계통인 스티븐의 부모도 사람들이 참 좋아, 저녁때가 되면 서로 격의 없이 아이들 밥을 먹여서 보내곤 하는 사이였다. 스티븐 엄마는 스파게티를 참 맛 있게 잘 만들었고, 스티븐은 우리 집에 오면 삼겹살에 쌈장을 얹어 싸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대학에 갈 무렵 갑자기 스티븐 네가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난 단순히 아이들이 대학을 가니 집을 줄이려고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혼을 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 부부는 우리부부와 달리 그 흔한 성격차이도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날 작은아이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스티븐의 엄마와 재혼한 사람을 봤는데, 코리언 이라고 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어른의 아들이었다. 난 갑자기 세상 참 좁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인생은 정말 경주가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스테리 퍼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 출발 선에 서 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좋은 일도 있을 것이며 예상치 못한 일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으면 내일은 또 올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니까.... 어차피 인생은 포장 뜯기 전의 쵸코렛 박스와 같은 거니까....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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