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당신의 이민 (移民)

2018.01.2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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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당신의 이민 (移民) 

 

얼마 전 언니의 이민 초창기 친구들이 타주에서 놀러왔다. 한 명은 캘리포니아에서 다른 친구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왔는데, 언니의 친구들은 삼십 몇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마치 며칠 전에 만나고 헤어진 친구들처럼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서로가 어려웠던 시절, 역경을 함께 나누고 살았으니 형제애보다 더 진한 우정이 생겼을 것이다. 이제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언니의 친구들을 보니 문득 이민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정서가 느껴졌다.

이민은 본래 살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거나 오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민자 역시 이민을 온 사람이나 간 사람을 뜻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민을 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초창기 하와이 이민처럼 정치적 경제적 이유가 복합적인 경우도 있고, 시대에 따라 자녀교육을 위해 혹은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탄압을 피해서 온 이민도 있다. 최근에는 더 다양해져서 직업이나 기술이민이 흔하고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나라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기 위한 이민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이든 이민을 가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나은 환경, 더 나은 조건에서, 좀 더 인간답게 살기위해서 정든 곳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나 역시 80년대 말 이민을 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할 만한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처럼,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아파트 한 채도 장만 못하고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최루탄 가스나 마시며 살 것 같았다. 한마디로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이 만연한 나라에서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처지가 불만족스러웠고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얼추 삼십 여년 정도 살아보니 언젠가부터 한국을 나가면, 내가 왜 이민을 왔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되돌아왔다. 그 이유는 형태는 다르지만 내가 떠나왔던 이유들을, 이곳에서 다시 겪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과 마주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장벽과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 뭘 해도 이방인적인 삶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지금도 끊임없이 드는 것이다. 그건 내가 떠나 올 때 한 선택에 대한 믿음과 정당성을 확인 받고 싶은 심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엘 나가보면 우리는 다시 이방인 이다. 그간의 세월이 우리를 이제는 언어장벽이 아니라 정서 장벽에 부딪치게 한다. 체면과 포장의 문화가 낯설고, 갑,을로 나뉘는 전 근대적인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불편하고, 무엇보다 미국보다 더 개인주의적이 되어가는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또한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본국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심지어 소수이긴 하지만 이중국적을 원하는 재외동포들을 마치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남의나라에 살다, 본국의 혜택만 받으려는 얌체족으로 폄하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지난 세기 동안 재외동포들이 보여준 한민족의 역량과 본국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들의 생각은 동포들을 더욱 외롭게 만들 뿐이다. 

이런 경향을 반향 하듯, 최근 문단엔 이민자들을 주제한 소설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멕시코 선인장 농장으로 이민을 간 조선인들을 소재로 한 김영하의<검은 꽃>,작년에 달라스를 다녀간 지역문인 임영록 작가의 누이 임재희의 하와이 이민을 다룬 작품<당신의 파라다이스>, 한인 이민 2세의 시선으로 1세들의 삶을 그린 미국이 인정한 작가 이창래 의 <네티브 스피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민자의 정체성을 소설과 시, 수필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많은 이민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렇다. 특히 본국 작가들의 작품도 그렇지만, 직접 이민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나의 이야기 이고 당신의 이야기이며,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공감이 가며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시카고에서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신정순의 작품<드림 랜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American dream is not just dream, It is a way of life” 
작품 속 드림타워 옥상 전광판에서 반짝이는 이 글을 보며 작중 화자는 혼자 되뇌인다. 과연 그럴까? 아메리칸 드림은 드림을 넘어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는가? 
씁쓸한 웃음을 짓는 화자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색깔의 아메리칸 드림을 위하여 이민자들은 달려가고 있다. 때로는 나는 드림랜드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 한 것은 아닐까? 혹은 드림랜드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미래는 현재의 소망 속에 있다. “ 당신의 이민(移民)”은 오늘도 성공 하고 있는가?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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