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제4화 / 밀림 야화(野話)

 

 


  4 


철민이 복장을 갖추고 캠프 운동장에 나가자 2개의 트럭에 빼곡히 올라탄 현지인들이 와아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친구는 큰 소리로 ‘삐삐난도 바기나(성교)하러 가냐?’고 대놓고 물었다. 철민이 싱겁게 손을 흔들자 그들은 더욱 신난 듯 떠들어 댔다. 

‘수니 천국 마을’은 현장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마을은 수십 채의 통나무집들이 두세 채씩 군락을 지어 마치 휴양지의 방가로처럼 숲속에 숨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뭔가 잔뜩 썬 경고판이 서있었고 제법한 안내소와 십자 마크가 달린 진료소도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이름은 옛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데사 수니 빠라디소(Desa Sunyi Paradiso)는 주 정부에서 모든 걸 운영하는 그야말로 공창(公娼)이었다. 
박기사의 말에 의하면, 이곳 산판이나 광산에 들어오는 온갖 인종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각종 성병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자, 과거 수하르토 정부 때 대대적인 공창 제도를 제도화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역은 다른 것에 비해 생각보다는 의외로 ‘하수구‘ 시설만큼은 깨끗해 보였다. 

박 기사 말마따나 그들이 도착하자 온 마을이 조용하기는커녕 갑자기 시끌벅적 해졌다. 더군다나 어제 다녀온 제2캠프의 인력들까지 함께 합쳐지니 데사 수니 빠라디소(Desa Sunyi Paradiso)는 순식간에 잔치 마당으로 변했다.  

그들이 마을의 광장에 트럭을 세우고 사람들을 내리자, 페떼 네모(PT Nemo)의 티셔츠를 입은 수십 명의 현장 종업원들이 마을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중 나온 여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왁자지껄 하는 모습이 무슨 축제에라도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광장에는 온통 네모 그룹의 로고셔츠가 깃발처럼 광장을 누비며 떼거리로 편을 짜서 마치 운동회라도 벌이는 것 같았다. 
철민을 발견한 제2캠프 책임자인 임과장이 얼른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철민이 손을 내밀었다. 
“아, 임과장. 잘 잤어요?”
“아, 예... 어제 미처 말씀을 못드렸어요. 권대리 사건도 있고 해서 이사님 언잖아 하실까봐... 괜찮으세요?”   
 임 과장은 함께 온 박 기사에게도 눈인사를 건네며 철민의 눈치를 보았다. 박기사가 임 과장에게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그쪽은 몇이나 왔어요? 한 트럭은 되겄네.... 이사님. 재미있죠? 그래서 한 달에 하루는 ‘네모 그룹바기나데이‘라고 해요. 촌놈들끼리...ㅋㅋ”
“재미는 무신… 근데, 임과장?” 
“네…”
“어제 늦게 빌라 신과장이랑 통신했더니…이번에 잡목 5천큐빅 선적 결정됐다던데... 근데…라운드 상태로는 배에 못싣는다면서?
 “그래요. 어젯밤 이사님 가시고 저도 연락 받았습니다. 그래서 담주에 산림청에서 라시드 과장이 직접 온다네요. 도장 받으러…”
“나도 보고는 받았는데...라시드 그 친구... 뭐하러 직접 온대요?”
철민은 머리를 흔들며 되물었다. 라시드 과장은 지방 산림청 실세이고 소위 ’끝발’ 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글세...그렇다네요”

철민은 입맛을 쩍 다셨다. 생각해보면, 이 판은 움직이면 돈이었다. 지난 해 부터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산판 나무의 해외 수출 시는 원목 그대로는 못한다고 못을 박아 할 수 없이 제재소를 만들게 했었다. 
부가가치로 보면 제재소 설립이 옳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든 설비 투자를 강요해 한 푼이라도 더 뜯어먹으려는 인니(印泥) 정부의 꼼수가 아닐 수 없었다. 원목보다 제재목이 더 비싸게 팔려본들 설비 제작비와 부대경비를 따져보면 일만 많아졌지, 그들로서는 솔직히 ‘돈’되는 일이 아니었다.  
“또…눈감아주고 용돈 달라하겠지… 지난번엔 얼마 줬어요?” 
“확실히는 모르겠고… 한 50전 줬다고 들었어요. 큐빅당…”
 철민은 머리 속으로 수판을 굴려보았다. 5천 큐빅 선적한다 치고 작년 기준으로 봐도 2천5백불…10전만 올려도 3천불이다. 그쪽 고급 공무원 근 1년치 봉급이었다.
“도적넘들…”
철민이 쓰게 웃으며 임과장과 박기사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임과장, 담주에 다시 나도 2캠프로 갈겁니다. 가서 나랑 같이 만나 라시드랑 쇼부봅시다....그나저나, 박기사는 기왕 온 거 촌장이나 한번 만나게 주선해 보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촌장은 없고 관리인은 있을지 모르겠어요...알아보죠” 


5


바(Mr) 나인골란은 이곳 ‘데사 수니 빠라디소 (Desa Sunyi Paradiso)’의 사무소장이었다. 명색이 정부 관리였지만, 박기사의 얘기에 의하면 ‘포주 대장’이었다. 듣기로는 그가 인도네시아 각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여자들의 멱살을 쥐고 있다고 했다. 일테면 지역의 괜찮은 관리나 사업가들과의 썸씽에 간여하기도 하고 쏠잖게 화대(花貸)도 상납 받기도 하는...그쪽 계통으로는 도가 텄다고 했다. 어쨌거나 그는 적당히 잘 생겼고 얼굴도 기름져 보였지만, 그냥 시중의 놈팡인 것 같지만은 않았고 다소 먹물이 들어 있었다. 

철민은 그와 악수를 나누며, 회사 직원들이 말썽이나 안 일으키는지 잘 좀 챙겨달라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넨 뒤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찔러보았다.
“듣기론... 수니 마을에 수니야란 한국 여자가 살았다는데...아는가?”
그는 영리했다. 철민의 말뜻을 금방 일아 들었다.
 “나도 듣기만 했지만...글쎄, 그 여자가 꼬리안인지는 알 수가 없고... 확실히 동양인이었다고는 알고 있다”
“어째서....”
“십여년 전 이 마을이 새로 개발되면서 부락민들이 보상금 받아 외지로 나갈 때, 그 동네 지킴이 후손들도 스마트라 어딘가로 이주 갔다고 들었는데... 그때 본 사람들 얘기가 그네들이 꼬리안들과 많이 닮은 동양 사람이었다고 전하더라.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중국계 화교일지도 모르겠지만...”
“혹 사진 같은 거 없냐?”
“글쎄... 여기는 없고 혹...주 정부 청사의 자료 창고나 뒤지면 있을까...헌데, 그런게 남아 있겠냐? 여기 행정은 별로다”

그는 수니야 할머니에 대해서는 의외로 확신을 하면서도 그 자료에 대한 것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보다 그는 이에 덧붙여 과거 우리의 일본 식민시절의 얘기를 떠올리며, 당시 위안부 문제도 나름대로 소상히 알고 있었다. 현지인 위안부도 수없이 희생되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와 네델란드의 350년 식민 시대를 거론하면서 2차 대전시의 한국과 중국과 자기네 나라와의 동병상린의 아픈 역사를 더듬어 보기도 했다. 
철민은 더 이상 어찌 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쓴 입맛만 다시며 마음이 저릿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