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제4화 / 밀림 야화(野話) 

 

 

 “참...모두가 안타까운 역사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그때 우리 꼬레안 할매들은 차암...우째 살았을꼬...그 혼백들은 고향이나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철민이 침통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이자 그 역시 함께 수긍의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의외로 길어지자 옆에서 박기사가 지루한 듯 하품을 하다가 철민을 쿡 찔렀다.
 “이사님요...얘더러 참한 아이 하나 골라오라고 할까요?”
 “뭐? 이사람이...됐네! 자네 생각 있음...몸풀고 오든가...”
 “하이고, 지도 오늘은 참을랍니다. 지난 주 한 이틀 계속 오형제 신세지다 보니...생각 없네유”
 “예라...이!”
 철민은 박기사에게 주먹감자를 내밀며 허허 웃고 말았다. 

 

 

 6

 

 

 

 그날 오후, 그들이 ‘수니야 천국 촌’에서 돌아오자 캠프에 있던 백대리가 철민의 방으로 바삐 찾아 들었다.
 "이사님요, 연애편지 왔는데요?"
 철민이 숙소로 들어와 위 저고리를 벗자 백대리가 바로 쫓아 들어와 편지봉투 한 개를 불쑥 내밀었다. 뭐? 철민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백대리는 히쭉 웃으며 한번 뜯어보이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철민은 고개를 갸웃하며 봉투를 뜯어 알맹이를 보다가 황당해졌다. 현지어로 뭘 잔뜩 늘어놓았는데 도무지 뭔 소린지 알 길이 없었는데다가 끝에는 뭔가를 표시하는 듯한 문장이 찍혀있고 싸인도 날씬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게…뭐야?"
 "가끔 이런게 옵니다요. 오야가다가 바뀌면… 인사하는거라요."
 "이사람…내용이 뭐야? 자네가 읽어봐. 자네 현지어를 알잖나?
 백대리가 다시 한 번 히쭉 웃으며 그깐것 안 봐도 빤한 내용이라는 듯 편지지를 받아 대충 훑어보고는 꼭 남의 얘기하듯 입을 열었다.
 "무기 공급을 해달라는구요!"
 "뭐라구?"
 "여기 이리안자야주 독립군 중 하나가 즈들 독립할 때까지 우리더러 무기서껀 도움을 달라는 겁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이런 황당할 데가 있나? 철민은 말문이 막혀 눈만 꿈벅꿈벅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생각을 모아보니 처음 자카르타에서 전임 책임자를 만났을 때 그런 얘길 잠깐 들었던 것이 떠올랐지만, 그때는 무슨 개소리냐고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었다. 그보다는 이 친구들이 본사에 현지 사정의 애로를 부풀리느라고 조그만 사안을 초치고 양념 친 것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기야 없잖아 그런 점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얘기를 자초지정 들어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박기사와 현장 직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곳에는 약4개 정도의 독립운동 단체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빈약하지만 군대체계를 갖추고 자기들끼리 대통령도 있고 장관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주로 밀림 한복판에 아지트를 정하고 정부군을 상대로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지만, 그 위력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군 입장에서 보면 별 볼일 없는 숲속 건달 집단이겠지만, 밀림을 상대로 벌목을 하고 길을 닦아 비즈니스를 하는 철민네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보통 신경 쓰일 일이 아니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밀림 내에서 생활을 하며 모든 고가의 장비를 현장에 투입하고 있기에 이 집단들에게 잘못 보이면 장비에 불을 지를 수도 있었고, 그보다 밀림을 드나드는 직원들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몇번이나 있었나요?"
 철민이 옷을 차려입고 나와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뚜벅 물었다. 그는 나름대로 심각해져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의외로 마치 모기에라도 잠깐 쏘인 것처럼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편지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보던 관리 담당의 백대리가 갑자기 히히힛 웃음을 날리며 편지지를 접었다. 
 "왜요?"
 철민이 답답한 눈치를 내보였다.
 "이사님, 너무 걱정 마세요. 이 새끼들요, 심심하면 이런다구요! 지난번에는 매월 1억루피아씩 자금을 대달라더니 요번엔 우리 나무 실으러 오는 배편에 M-16 천자루와 탄약 및 수류탄 500발을 도와 달라네요. 그러면 즈들이 발행한 군표를 주고 나중 독립하면 그 몇 배로 갚겠다는군요. 그러고 이사님 부임을 축하한다고 그랬어요."

 기가 찰 일이었다. 처음 생각엔 이곳 직원들 중 누군가가 신참인 철민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서 만들어 낸 장난질이 아닌가도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철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새로 온것…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보면…여기에 누군가 첩자가 있나요?"
 "있죠!"
 박기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럼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기 현지인 인부 중엔 산적들과 끈 달고 있는 놈이 꽤 있어요. 갸네들이 이따위 편지도 몰래 갖다놓고 또…답장을 써넣으면 어느새 가져가곤 그러지요."
 듣자니 점입가경이었다. 철민은 밥숟갈을 놓으며 점점 더 머리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럼… 어떡하면 되지?” 
 철민은 한참 만에 입을 떼며 순간적으로 마음을 오픈하고 싶어졌다. 상식으로 이해되진 않는 황당한 상황에 처해 직원들을 의심한다거나 또는 이른바 밀림의 전입 고참들인 구렁이 기사들이 새로 온 책임자를 골탕 먹이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그는 우선 접어두기로 했다. 만약에 그들이 그런 생각들을 가졌다면 그것은 언젠가 시간이 가면 밝혀질 것이고 또 진실로 그게 사실이라면 더불어 일을 함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어떻게 대처했나? 이런 짓이 한두번이 아니라면… 뭔가 대응책이 있었을 것 아닌가?”
 철민의 표정과 말투가 침통할 정도로 진실성을 띄우자 직원들도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박기사가 밥숟갈을 놓고 물로 입을 헹구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에… 답장을 쓰셔야 합니더”
 “답장을?”
 “예에”
 “어떻게? 뭐라고 쓴다?”
 “그야…”
 박기사를 대신해서 백대리가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