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연작중편 / 土(원시의 춤)舞  <제36회> 

 

 제4화 / 밀림 야화(野話) 

 

 

그의 얘기인즉 이러했다. 우선은 그들이 달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음을 납득시켜야 하고 우리들이 너희 인민들을 위해서 이곳에서 길을 닦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켜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그들은 자기들의 요구가 무리 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다만 새로 오신 이곳 두목이 자기들에게 얼마만큼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무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지금까지 매월 건네주고 있는 백만루피아 정도의 지원금을 차질 없이 전해준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줘야 뒤탈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철민은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곳 직원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 사실을 관계 관청에 신고하여 중앙이나 지방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철민이 좌중을 둘러보며 뚜벅 입을 열었다.
 “이런 일… 우리 대사관이나 이곳 관청 또는 군부대에 신고한 적은 없나요?”
 박기사가 킬킬 웃었다.
 “말짱 헛것이라요 처음엔 우리 대사관이랑 공문도 보내고 했는데… 대답은 알아서 하라는 말밖엔 없었걸랑요 아마도 그 공문사본은 본사에도 몇 번이나 갔을거라요. 이사님도… 안보셨습니껴?”
 듣고 보니 그런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틀림없이 픽 코웃음을 날리며 새애끼들 놀고있네… 어쩌구 하며 잡철 파일에 끼워 넣고 말았을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대사관 측에서도 다분히 그런 류의 생각으로 무시하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아니, 설사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했다손 치더라도 비행기를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 가야할 오지 중의 오지에서 그러한 보고서가 올라온들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없었던 걸로, 안들은 걸로 하고 현지 책임자가 알아서 적당히 처리하라고 할 수밖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곳 군부대나 관청에는 안알렸었나?”
 철민이 다시 묻자 백대리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랬다간… 정말 큰일나지요!”
 “왜? ”
 “우리가 그런 낌새를 보이면 여기 첩자들이 대번 즈들 사령부에 꼬나박을 것이고… 그리되면 우린 자칫 독화살 맞고 떼죽음 당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다가… 얘네들 군부대에 일러바쳐 토벌이라도 한답시고 군인들 투입하게 되면 오히려 그거 지원할 돈이 걔들 주는 것보다 곱빼기로 들거덩요”
 
 결론은 거두절미하고 갸네들 잘 달래서 우리 일이나 잘 하는 것이 장땡이라는 논리였다. 철민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이런 걸 두고 진퇴양난이라 할 것인가. 그는 속에서 이거 씨팔, 꼭 뭣 같은데 왔구나 하는 후회 섞인 욕지기가 저절로 올라왔다.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며 곧바로 모든 현실을 인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박기사를 눈으로 불렀다.
 “저으기… 당신 현지어 읽고 쓰고… 하지?”
 “아니, 저보다 백대리가 담당 아입니껴”
 “그럼… 백대리?”
 “네에”
 “답장… 만들어봐”
 “예에… 뭐라고 쓸까요?”
 그가 메모 노트를 펼치며 물었다.
 “당신 이때까지 얘기한 것… 알아서 짓고… 그쪽 대통령인지 지랄인지… 한번 만나자고 해요 젠장, 죽기 아니면 까무러친다구… 한번 부딪쳐보는거지 뭐”
 철민은 염병할,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함부로 말을 뱉어내며 담배에 후르르 불을 붙였다.

 그날 저녁, 철민은 하루 종일 현장을 돌아다니면서도 곧 어디선가 게릴라라도 나타날 것 같은 착각에 마음이 잡히질 않았다. 혹 누구라도 볼세라 혼자서 어금니를 주근주근 씹으며 속으로 오한께나 느꼈었다. 바깥은 섭씨 35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도무지 땀 같은 땀도 나지 않는 것이 희한할 정도였다. 그러다 가였다. 저만치 앞쪽에서 현장을 정리하던 현지인 노무자 몇 사람이 갑자기 쉬이-하는 포즈로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불안이 극도에 달하며 미칠 것만 같았다.
 “왜 그래? 뭐야?”
 철민은 옆에 따라오던 기사 한명을 꽉 잡고는 함께 몸을 수그린 채 물었다.
 “글쎄요…”
 녀석은 별 두려움도 없는 얼굴로 멀뚱하게 그쪽을 쳐다보다간 갑자기 픽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그래?”
 “뱀인가 봐요… 구렁이 같은건데… 되게 큰건가 보네요. 저거 잡으면 며칠은 몸보신 하겠는데요”
 철민은 잠깐 어이없는 심정으로 그쪽을 멀건이 쳐다보았다. 현지인 몇 명이 항상 들고 다니는 환도로 뭔가를 내려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토인들의 춤처럼 비쳐왔다. 그는 영 마음이 언짢았지만 그들을 향해서는 한마디 말도 던지지 못한 채 궁시렁 궁시렁 현장에선 산 짐승 죽이지 말랬는데… 속으로만 되 뇌이며 서둘러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벌렁 침대에 누우며 여기 온지 불과 닷새도 안 되어 지금까지 하늘이라도 찌를 것 같은 그의 오기가 갑자기 왜 이렇게 졸아들고 있는지 도무지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었다. 

 


제5화 / 살풀이

 

 1

 계십니껴? 
 기척에 문을 열자 박기사와 백대리가 플레이트에 냄비 하나와 밥그릇 등을 받쳐 들고 그 앞에서 싱긋 웃으며 서있었다. 냄비에서는 김이 솟고 있었다.
 “뭐요, 그게? 들와요들…”
 철민은 영 마음이 잡히질 않아 식사도 거른 채 저녁나절 내내 숙소에 처박혀 있자 그들이 온 것이었다. 하긴 대장이 심기 불편하여 인상을 쓰고 있으면 그 아래 것들의 마음인들 편할 리가 없을 터였다.
 그게 뭐요? 하는 표정으로 철민은 다시 한 번 냄비를 일별하며 혹 이 친구들이 낮에 잡은 뱀을 삶아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코를 찡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