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연작중편 / 土(원시의 춤)舞  <제39회 마지막 회> 

 제4화 / 밀림 야화(野話) 

 

 

  3

 

 

  그들은 단지 다섯 명쯤 되는 것 같았다. 두 녀석이 광장으로 나타나고 세 녀석이 뒤에 남아 가증스럽게도 인원이 많은 것처럼 인근 수풀을 흔들리게 하는 초자적인 병법을 구사하는 것이 오히려 측은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아마 한 놈은 총이라도 겨누고 있으리라. 철민은 잠깐 동안 상황을 파악하자 오히려 마음이 푸근해지며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게릴라 대장이란 작자는 의외로 마호 병에 홍차까지 담아와 철민에게 권하며 순박하게 웃음을 보였다. 다만 귀걸이와 더불어 식인종처럼 인중에 코걸이까지 한 것이 이채로워 보였다.

"저 넘… 코걸이는 왜 했냐?"
 "무섭게 보이려구요."
 철민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자 백대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기사와 백대리는 기왕에 그를 아는 듯 현지말로 인사를 나눈 후 철민 쪽을 돌아보며 소개를 하는 듯 했다. 대장이 뭐라고 지껄이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래?"
 철민이 박기사를 돌아보았다.
 "환영한대요. 그리고… 도와줘서 고맙대요"
 ㅡ환장하겄네!
 철민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면서도,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잡자 그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며 꽤나 길게도 무언가 일장연설을 해댔다. 백대리의 통역에 의하면 그 내용인즉 이러했다.
 
ㅡ들으니 며칠 전 너희 직원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던데, 조의를 표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리얀자야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너희들처럼 이곳에 와서 일하는 외국 기업들이 조금씩 도와주기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곧 해방의 시기가 다가올 것이며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진 너희들의 신세를 그 배로 갚을 생각이다. 오늘 이렇게 당신이 직접 와서 우리를 격려해주니 참으로 고맙다. 그 보답으로 당신네 회사 사람들이 산에서 일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우리도 최대한 협조를 약속하겠하겠다. 고맙다....등등 
 
 대충 이런 말이라고 했다. 철민은 그의 말하는 태도가 하도 진지해서 속으로는 웃음이 가글거렸지만 차마 표정으로 나타낼 수가 없어 그와 똑같이 심각한 얼굴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솔직히 그는 이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또 알 필요도 없었지만, 상황 돌아가는 것을 보니 이 나라 중앙정부도 골치깨나 아플 것 같았다. 자그마치 영토 중 대.소 섬이 4만여 개나 되는데다 언어가 4백여 종, 인종도 수백 종으로 갈라져있으니 그들을 통솔하자면 여간한 지도력과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었다. 거기다가 조금만 사는 터전이 넓고 머리에 먹물이 좀 들어간 자들이 사는 곳엔 당연히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게릴라 대장이 말하는 꿈이 이루어지려면 시쳇말로 기차바퀴 펑크가 나든, 말대가리에 뿔이나 나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철민은 겉으로라도 너희 생각과 의도는 알만하다는 의사를 표시한 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다짐을 받기 위해 백 대리를 앞세우고 뚜벅 입을 열었다.
 "우리 직원 조문은 고맙다. 그런데...너희는 전쟁을 해봤나?"
 "무슨 소리냐?"
 "다른 뜻이 아니라…우리는 반세기동안에 두 번이나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는 국민들이다. 내가 왜 이런 얘길 하냐면....우리들은 그렇기 때문에 별로 겁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민족인데… 혹시나 너희들… 우리가 너희들에게 겁먹어서 이렇게 왔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
 통역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녀석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알만 디룩디룩 굴리며 철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기사가 끼어들며 다시 거들었다.
 "우리 삐삐난이 너희에게 부탁하는건...아무튼 우리 직원들에게 해코지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만약 안 그러면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너희랑 맞 짱 한번 뜰 것이다"고 말했어요.
 녀석이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박기사의 배에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필수 호신용인 정글용 큰 칼을 들이대고 찌르는 시늉을 했다. 박기사가 그 칼을 손으로 걷어내며 태권도 포옴으로 그의 목을 가격하는 포즈를 취하자, 숲속 광장은 갑자기 무도장이라도 된 듯 서로를 껴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갑작스럽게 누구도 연출하지 않은 원시의 춤판이 벌어졌다. 
 
 ‘이리안 자야’ㅡ 빛나는 승리의 땅이라 한다던가... 하지만 그 곳에도 ’승리의 빛‘은 없었고, 그들은 마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처럼 매일매일 ´고도(godot)’를 기다리며 헛소리로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 철민 일행들 역시 무언가 삶의 지표라도 건질까 이 섬에 찾아들었지만,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다만 거스르지 못하는 자연의 순수(純粹)만이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을 뿐 그들이 찾는 ‘빛’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만세를 불렀고 ‘희망’을 노래했다. 
 
 으이 으헤야... 슬라맛 꼬레안 슬라맛 이리안 
 사마사마 자야 자야 으히헤야~으헤야....
 
 게 다리 춤 같이 몸을 흔들며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던 게릴라 대장이 철민을 손짓해 함께 끌어들였다. 철민은 처음엔 어색하게 마지못해 주춤주춤 끼어들었지만, 그러나 주술 같은 그들의 노래 가락과 춤사위에 이끌려 잠깐 사이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세계에 무당처럼 빨려들고 말았다. 그들은 마치 길들여진 장마당 유랑 극단의 삼류 배우들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종내에는 괴성을 지르며 머릿속에 땀이 나도록 그들과 함께 게 다리춤까지 따라 추었다. 


 흡사 이 날의 춤판은 며칠 전 객사한 현장직원의 원혼을 달래는 듯, 또는 이 ‘빛나는 땅’에서 ‘빛’없이 한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한(限)을 달래  듯 모두가 어우러진 원무(圓舞)로 이어지고 있었다. 철민은 저도 모르게 먼 유배의 땅에서 벌어지는, 한마당 살풀이 같은 ‘원시의 춤’ 속에 젖어들면서 관자놀이에 공연히 저릿하게 소름이 돋았다. 

 

 

연재중편 ‘토(원시의 춤)무’를 끝낸다. 그동안 읽어준 독자들과 깔끔하게 편집을 도와준 KTN 스탭들에게 감사한다.

혹 다음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재미있는 ‘코메리칸’들의 생활 얘기로 독자들과 다시 해후하기를 기대한다.  

-2017년. 6월 필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