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한인작가 꽁트 릴레이 7]

2018.01.12 10:12

KTN_WEB 조회 수:141

  [한인작가 꽁트 릴레이 7]  

 

타로-하와이 토란

 

지난 연말, 나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자다가 보따리를 털렸다고 집에 전화를 했다. “이눔의 자슥, 달라스에서 직행 타고 오랬더니 와 하와이 시골 놈들한테 당하노?” 못 말리는 우리 아버지. 하와이 시골 놈들이라니. / “전화 이리줘요. 야,야, 필아, 느그 아부지 너 보고 싶어서 하는 소리다. 필아,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하와이에서 한 열흘 쉬었다 와라. 작년에 가 보이 멋지드라” 우리 어머니의 등장이다. 울 엄니는 ‘우리된장’의 핵심이다. 특히 된장 맛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분이다. 한국영사관을 찾아가 여권분실신고를 하고 항공권, 크레딧 카드 분실신고를 마쳤다. 다행인 것은 온갖 정보가 다 들어있는 스마트폰이 내 손에 있었다.

 

참, 우리 어머니가 말씀을 잘 하셨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나는 호텔 카운터를 통해 렌트카를 해서 해변을 따라 달리다가 알라모아나 샤핑센타까지 왔다. 세계 제일의 오픈 샤핑센터라더니 그 규모가 대륙에 있는 그 어느 샤핑 센터보다 크고 화려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지하 주차장, 1,2층의 즐비한 명품가게들, 3층에는 메이시, 니만 마커스, 노스트럼 등 백화점이 있었다. 한 바퀴 돌고 지하 식당가로 와서 일본식당가로 들어갔다. 스시, 뎀부라,라면,오뎅 등 어림잡아 일백여 일본 식당이 모여 있었다. 천정에는 핑크 사쿠라를 잔뜩 발라 놓았고, 군데군데 일본 글씨로 디자인 된 등을 걸어 일본의 영역표시를 단단히 해 놓았다. 일본이 언제 하와이를 접수한거야? 하와이는 일본인들에게 먹혔구나하는 직감이 왔다. 우동이 먹고 싶었으나 슬며시 일본식당가를 빠져나와 다른 후드 코트로 옮겼다. 그곳에는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타코, 판다 중국 뷔페 등 미국에 있는 몰의 식당가에서 흔히 보는 음식들이었는데, 이왕이면 하와이 토속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Poi’라고 쓴 가게로 갔다.

 

“What’s Poi?” 프라스틱 그릇에 담겨있는 포이는 푸르스름한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묵 같기도, 찹쌀 죽 같기도 했다. 포이를 어찌 먹어야 될지 몰라 포크로 이곳저곳을 찔러보았다.

“What are you doing?” 카운터 아가씨가 물었다. 그리고 일러주었다.

“Use your hand like this.” 그녀가 손가락으로 포이를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모양이 마치 된장을 찍어 맛을 보는 우리 어머니 모습이었다. 내가 익숙한 솜씨로 그대로 해 봤다. 아가씨가 웃었다.

포이야말로 하와이인들의 토속 음식이었다. 포이는 타로(Taro 토란)를 짓이겨 만든 것이다. 타로는 한국의 토란이다. 포이는 무미, 아무 맛이 없고 닝닝하고 그러면서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고돌았다. 밥 같았다. 아무 맛없는 밥. 밥은 맛이 없기 때문에 아무 반찬과 만나서 잘 어울리지 않는가. 그렇다. 타로는 여기 폴로네시안 하와이 원주민들의 쌀이고 밥이다. 컴퓨터 써치를 해보니 전분이 많지만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었다.

“Can I see taro? How it looks like?” / “Sure, you can visit taro farm.” /“Taro farm?” / “This is highway one. Go straight and than you will be meeting it.

 

아가씨가 식탁 깔개에 볼펜으로 직선을 쓱 긋고는 그 위에 화살표를 하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바로 여기가 타로 농장”이란다. 하이웨이 원은 호놀루루 시의 남북을 잇는 동맥선이다. 질주하는 차들이 많았으나 대륙의 타 도시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보니 어느새 고속도로가 없어지고 좁은 길로 들어섰다. 열대의 나무와 덩굴식물들이 무성했다. 식물원에서나 보던 희귀 선인장들이 여기서는 잡초나 잡목이었다. 사방이 초록담으로 둘러쳐져 완전 초록 성에 갖힌듯 했다. 차 엔진을 끄고 차에서 내려 둘러보기로 했다. 이끼가 스폰지를 밟은 듯 푹석거렸다. 오던 길로 도로 가려고 했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작동이 안되고 동서남북의 구별이 안되었다. 자세히 보니 숲 한구석이 훤해보였다. 숲을 헤치고 빛을 따라 갔는데 물 떨어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렸다. 나는 폭포 옆에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폭포 밑으로는 마치 한국의 논처럼 정사각형의 논들이 한가롭게 전개되었다. 하와이에 논이라니, 나는 정신없이 폭포 옆으로 난 골짜기를 타고 내려갔다. 타로 논이었다. 한국의 논처럼 밭에 물이 차있었다. 타로는 연잎같이 우아한 잎 모양을 하고 줄기가 곧게 물속에 잠겨있었다.

 

타로 줄기를 잡고 뽑으려했는데 논바닥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어 잘 뽑히지 않았다. 나는 완전 진흙투성이가 되어 타로를 뽑아 올렸다. 아기 머리만한 타로가 뽑혀 나왔다.

“신성한 물건에 손을 대는 그대는 누구인가 ?”/ “누구신지요?” / “나를 몰라보는 것을 보니 그대는 분명 이방인이렸다.” 앗, 그림에서 보던 하와이의 풍요와 출산의 여신 하우메아(Haumea)였다. 나는 예의를 갖추고 여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렸다. 여신이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켰다.

“여신께서는 여기 사십니까?”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여신은 어디든 살지. 나는 가끔 타로가 먹고 싶을때 이곳으로 오지.” / “여신도 타로를 먹습니까?” / “타로는 원래 신들의 음식이었다.” / “신들도 음식을 먹나요?” / “모든 음식은 신들의 것이었다. 그러다가 인간들이 불쌍해서 신들의 음식을 나누어주기 시작한 것이지. 1천 년 전, 먼 섬에서 이곳 하와이 섬으로 온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지 몰랐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먹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보여서 내가 타로를 양식으로 하라고 준 선물이었지. 나는 그들에게 포이를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타로를 먹기 좋게 갈아 빵도 만들어먹더군. 여기 섬사람들은 대대손손 타로를 주식으로 먹고 살았지. 지금은 햄버거를 더 좋아하지만. 타로는 그러나 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다. 나도 때대로 타로가 먹고 싶을 때 이곳을 찾으니까. “/ “여신께서도 포이를 좋아하십니까?” 나는 바보같은 질문만 해대고 있었다. 여신에게 물어볼 말이 좀 많은가.

 

“자, 나와 함께 포이를 들어볼까.”

여신이 인도하는 곳으로 갔는데 나는 내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여신과 함께 떠서 가고 있었다. 아무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여신과 함께 공중부양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여신이 걸친 옷은 비단 보다 더 얇고 부드럽고 구름 같은 색이었다. 꽃냄새가 났다. 여신을 따라 어느 큰 나무 밑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식탁이 차려져있고 반짝이는 그릇에 포이가 담겨져 있었다. 여신이 웃으며 함께 먹자고 했다. 여신과 포이를 먹다니.. 내가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내 살을 꼬집어보았다. 그 순간, 살이 꼬집히는 그 순간 나는 나로 돌아와 있었다. 타로 논도 없어지고 나를 인도했던 아름다운 여신도 자취를 감추었다. 아쉽고 서운했다. 숲 속에는 아까보다 더 진한 초록의 음영으로 차있었다. 차의 시동을 걸자 올 때와 비슷한 숲속의 굴곡진 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하이웨이 원에 들어섰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그 아가씨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나는 숨차게 알라모아나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 아가씨가 토속음식점 앞의 식탁을 정리하고 있었다.

 

“um um...저기요...I got taro...”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더듬었다. 분명 무슨 딴 세상에 갔다 온 것이다. SF영화 속 같았다. 이 비밀을 이 아가씨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난 분명 내 손으로 타로를 논에서 뽑았는데, 그리고 그걸 가져왔는데, 타로가 내 손에 없었다.

“이거...하와이 판타지? 내가 신년 초부터 헛것을 보았나?” *

 

김수자<하와이 거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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