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사랑의 묘약

2018.03.23 12:25

KTN_WEB 조회 수:116

사랑의 묘약

 

소나기가 한바탕 휘모리장단으로 퍼붓고 지나 간 어느 주일 예배 후 친교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오집사 부부가 만면에 함박 웃음꽃을 피며 우리 쪽 테이블로 다가 왔다.
“김집사님, 잘 지냈어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내 앞 자리에 앉은 오집사 얼굴 표정에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주에는 안보이데요” 마치 나를 찾았다는 뉘앙스였다. “아,네. 달라스에 좀 다녀 왔어요.” 내가 답하자, 오집사는 “문학회 모임에 참석했나요?”라고 물었다. 오집사는 그 날 이후 내가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주일에는 문학회 일로 달라스에 내려갔을 것이라고 으레 짐작하는 모양이다.
지난 해 봄 구역 모임 때였다. 성경공부 시작 전, 서로의 안부를 묻던 중에 오집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 아니, 김집사님은 달라스에서 유명한 사람이데요.” 밑도 끝도 없는 오집사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의아해 하며 오집사를 주목했다.”글쎄, 제가 집사람하고 딸 결혼 문제로 달라스에 주중에 내려갔었어요. 일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H마트 옆에 있는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다 ‘달라스문학’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책장을 넘겨 보다 김집사 사진과 함께 수필이 실린 걸 보게 되었어요. 얼마나 놀랬던지 지금도 흥분이 되네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글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에 정말 놀랬어요”라며 오집사가 새삼 감격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자신 생각에도 전혀 인지도가 없는 무명인데다 그럴만큼 유명한 작가라면 벌써 오클라호마에 소문이 쫘악 퍼졌을 것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로 나도 오집사를 달리 보게 되었다. 평소에 사람 좋아 보이는 오집사가 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급 호감이 생겼다.

“오집사님,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입이 귀에 걸렸네요.” 그렇게 말하는 나의 시선은 오집사 부인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도 역시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품은 채였고 양 볼이 불그레했다. 분명 엔돌핀이 뿜뿜 쏟아진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흐흐흐, 있었죠” 오집사는 말하기도 전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풀에 웃음부터 흘렸다.
오클라호마 주정부가 공인하는 딸 바보 오집사는 직장관계로 달라스에 혼자 떨어져 사는 딸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결혼 준비까지 겹쳐서 별 일 없으면 자주 달라스를 방문하는 형편이었다.
그 날도 달라스에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클라호마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사이를 흐르는 레드 리버(red river)를 건너 북쪽으로 사십분 쯤 달리다 보면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동서로 가로 누운 산악지대가 나온다.
터너 폴(turner falls)이라고 하는데 고국의 흔한 고갯길 보다야 못하지만, 그런대로 달리는 맛이 괜찮은 고갯길이다. 오집사 부부는 신선한 바람도 쐬고 뻐근한 몸도 풀 겸 전망대로 들어 가는 출구로 빠져 언덕배기에 차를 세워 놓고 밖으로 나왔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얼굴이 후끈거렸으나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견딜만 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오집사 시야에 조금 떨어져 있는 돌무더기 사이에 자생하는 선인장 한 무더기에 빨갛게 익은 열매가 눈에 띄었다.
“야,여보 저기 봐. 선인장 열매가 있네.” 오집사 부부는 산삼이라도 발견한 반가운 마음으로 잘 익은 열매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따서 입에 넣어 씹어 보았다. 약간 떱떠름하면서 달작 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선인장 열매가 몸에 좋다는 말도 얼핏 떠올라 내친 김에 대여섯 개를 더 따서 나눠 먹었다. 몸도 풀고 뜻하지 않게 선인장 열매도 따먹은 오집사 부부는 기분 좋게 오클라호마시티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던 오집사 옆에서 별안간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어멋, 여보 이게 웬일이얏. 입안에 불난 것 같아 미치겠어!” 오집사 부인이 입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불안감에 휩싸여 오집사를 쳐다보았다. “어, 왜 그래?” 덩달아 놀랜 오집사도 갑작스러운 일에 까닭모를 불안감이 몰려 왔다.”몰라, 몰라. 갑자기 입안이며 입술 주변이 화끈거리고 애려서 미칠 지경이얏. 어떻게 해?”
이거 분명 큰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오집사는 급한 마음에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차를 댔다.
“어디 봐” 아내의 얼굴을 본 오집사는 아내의 입주변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필시 뭔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한 오집사가 손바닥으로 아내의 입 주변을 쓸어 보자, 아내가 “앗 따거’하며 정색을 했다. 동시에 오집사의 손바닥 감촉에도 솜털같이 잔가시들이 느껴졌다.아마 터너 폴 고개에서 따 먹었던 선인장 열매에 박혀 있던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잔가시들이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아내는 입안에도 통증을 호소했다. 그 때 아내가 재차 소리쳤다.”어머, 당신 입 좀 봐. 당신 입도 뻘게” 이제서야 오집사도 입 주변에서 반갑지 않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내를 신경 쓰느라 정작 본인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봤지만 난감했다. 더욱이 고속도로 갓길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궁리 끝에 일단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병원비 폭탄이 두려워 포기했다. 평소에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이 왜 이리 느리게 가는지 하룻길처럼 길게 느껴졌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그 정신에도 생각해 낸 비책이 있었으니 월마트에 들러 고성능 돋보기와 핀셋을 사고 집으로 돌아 왔다. 차를 주차하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어온 오집사 부부는 소파 위에 자석처럼 찰삭 달라붙어 앉아 서로의 얼굴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샅샅이 살펴보았다. 이렇게 사람의 얼굴과 입안까지 훑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단검을 들고 지뢰밭을 탐색하는 병사가 되어 돋보기에 포착된 가시들을 핀셋으로 여지없이 퇴치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가시들이 뽑혀지자 오집사 부부를 괴롭히던 통증들도 사라져 가고 마침내 한시간에 걸친 수색작업이 끝났다. 긴 고통에서 해방되는 순간 오집사 부부는 개선장군들이 되어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승리 아닌 승리를 자축했다. 
돌이켜 보면 이 얼마만의 뜨거운 포옹이었던가?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로 때로는 갱년기 증상을 들먹이며 한사코 외면해 오던 애정표현이 아니였던가?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힘차게 솟구쳐 올라 왔다. 고맙다. 백년초야! 오집사 부부는 장거리 운전의 피곤함과 가시밭 고통도 잊었다. 두 연인은 오랜만에 꿈길을 자박자박 걸었다.

나는 터너 폴(turner falls) 고갯길을 넘나 들 때 마다 오집사 부부가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앞으로도 내가 이 고갯길을 지나가는 한 그럴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한번 출구로 빠져 나가 선인장 열매 한번 따 먹어 봐야겠다고 말이다. *

 

김   희   중
오클라호마 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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