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마우이의 나라

2018.04.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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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52.pdf   [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14  

하와이에서 생긴 일 (4)

마우이의 나라

 

 

레이 아버지 로버트 카메하메하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손이 어찌나 큰지 야구 장갑만 했다. 내 손을 잡고 흔드는데 뼈가 부서지는줄 알았다.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 인종을 지켜보았지만, 레이 아버지같은 하와이 토박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우람한 체격이다. 둥그렇고 뭉툭하게생긴 코, 크고 윤곽이 뚜렸한 순진한 눈, 짙은 눈썹, 굽실굽실한 검은 머리칼, 두툼하고 아구가 큰 입, 갈색의 피부, 팔뚝이 내 넓쩍다리만 한 거구다. 
이 분의 모습에서 하와이 신화에 나오는 마우이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마우이 신화는 하와이 안내 책자에도 나오지만 내가 마우이를 만난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에서다. 주인공 모아나가 모험여행을 따나면서 마우이의 활약이 펼쳐지는 흥미 있는 영화다.

마우이는 하와이를 포함하는 폴로네시아 전반에 걸친 신화로, 바다와 땅의 신 탕가로아와 어머니 히나 사이에 태어났다. 마우이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라스처럼 기운이 세고 모험심이 많아 때로 신이고 때로 인간의 입장에 있는 반인반신이다. 신화에 따르면 마우이는 낚시로 지금의  8개의 하와이 섬들을 바다에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마우이는 4형제 중 막내로 형들이 낚시 가는데 어리다고 늘 떼어놓고 가기 일수였는데, 어느날 마우이의 끈질긴 부탁으로 함께 낚시를 가게 되었다. 마우이는 자신이 가진 마법의 낚싯바늘 또는 갈고리 (마나이아칼라니(Manaiakalani )에 마우이의 어머니 히나의 애완 새 알라에(Alae)를 미끼로 써서 깊은 바다에 던졌다. 마우이가 낚싯줄을 바다에 던지자 낚싯줄을 당기는 물고기의 힘이 엄청났다. 이 때 마우이의 낚시에 걸린 것은 거대한 물고기가 아니라 하와이 섬이었다. 낚싯줄을 힘들게 당기고있는데 어떤 여신이 나타나 방해를 하기때문에 마우이가 ‘뒤를 돌아보지말라’고 했으나, 형들이 이를 어기고 뒤를 돌아봐서 하나의 섬으로 끓어 당겨지고있었던 하와이가 8개의 섬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하와이는 니하우, 카우아이, 오하우, 몰로가이, 라나이, 마우이, 카호올라웨, 하와이등 8개의 큰 섬과 100여개 작은 섬으로 되어있다. 마우이가 낚시로 섬을 들어 올릴때 형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하와이는 섬이 아니라 커다란 육지였을텐데...
<모아나>에서 마우이는 뚱뚱하고 온 몸이 문신(타투)투성이의 제멋대로의 캐릭터로 나온다. 마우이 신화에 의하면, 타투는 신들의 업적을 몸에 새기어 과시하는 신성한 행위다. 마우이는 섬을 낚아올린 것 외에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온 것, 하늘을 들어올린 것, 최초의 개를 만든 것, 마우이에서 제일 높은 할레아칼라 산 위에서 올가미 줄로 태양을 붙잡아 망을 씌워 하루가 더 길어지게 만든 점 등등 활약이 많아 그 공을 마우이의 온 몸에 그려넣기에 모자랄 지경이다. 마우이가 몸집이 크고 근육과 살집이 많은 것은 아마도 타투를 하기에 적당한 몸의 소유자이기 때문인 듯하다. 마우이의 영웅적인 활동은 폴로네시안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결국 하와이 제도의 두 번째로 큰 섬 ‘마우이 섬’의 이름이 되었다.

마우이를 닮은 레이 아버지가 전통음식을 맛보게 해 준다며 부엌을 점령했다. 커다란 나무 함박지에 타로를 갈고 짓이겨서 포이를 만들었다. 또 타로를 찜통에 쪄서 깍뚜기처럼 잘라 접시에 담고 포이 소스를 얹었다. 내가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그 집 다이닝 룸은 운동장만한 거실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3개의 냉장고가 있었다. 레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하와이 토속 음식을 담는 냉장고, 레이 어머니를 위한 한국음식을 저장하는 냉장고, 그리고 레이가 좋아하는 아메리카 음식 냉장고였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간직한 된장을 꺼내 된장국을 끓이고 한편 양해를 구하고 레이 어머니의 냉장고를 열어 파, 마늘, 깨, 참기름 등 필요한 것을 꺼내었다. 먼저 간장에 파를 송송, 마늘을 다지고 고추가루와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레이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깍두기 타로를 접시에 담고 양념장을 뿌렸다. 묵에 양념장을 얹은것과 같았다. 레이 아버지가 맛을 보고는 구우우드(Goooood) 하고 환호를 질렀다. 레이 어머니는 양념장 만들 때 알았다며, 왜 닝닝한 토라 음식에 한국 양념장을 얹어먹을 생각을 못했을까하고 감탄을 연발했다. 레이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 아가씬 아직 한국의 양념 맛을 모르는 모양이다. 내가 포크에 양념장을 얹은 타로를 찍어 레이에게 주었다. 레이가 마치 용감한 전사의 표정으로 양념 타로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으음, … 굿’하고 감탄사를 보냈다. 타로에 된장찌게를 곁드렸다. 된장찌게와 밥 같은 타로가 어찌그리 잘 어울리는지... 나는 타로와 된장찌게가 어울리면 좋은 음식이 될 것은 물론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레이 아버지 로버트 카메하메하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술을 내왔다. 타로를 발효시켜 만든 타로 소주였다. 처음 마실 때는 소주에 막걸리를 섞은 듯한 맛이었는데 알콜성분이 20도가 된다고 했다. 난 술을 못마시는 체질인데, 그날 타로주가 어찌나 맛있는지 주는대로 받아 마셨다. 식탁의 반짝이는 은쟁반에 담긴 타로를 맛보는 레이 어머니는 숲속의 그 여신의 얼굴을 하고있었다. 한국 어머니의 고운 자태와 상아 빛 얼굴, 밝은 미소가 분명 여신의 모습이었다.
“여신께서 어떻게 여기에 오셨나요?” / “오늘 이집 초대손님으로 왔지.”
여신이 타로주를 건넸다. 나는 여신이 주는 술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  여신께서 제게 술을 주시다니..... 여신이여, 무한 영광이로소이다. 나는 여신에 이끌려 침실에 들었다. 레이가 거기 있었다. 아 레이, 어여뿐 레이, 레이가 여기 있었구나. 레이. 나는 레이를 안았다. 레이가 그 도톰한 입술을 내밀었다. 아, 레이, 나의 레이. 그렇게 끌어안은 채 밤 새도록 황홀했다. 내가 레이에게 말했다. 내가 하와이 대빵 여신을 만난 것 알아? 낚시로 8개 하와이 섬을 건져 올린 마우이 신도 만났잖아. 로버트 카메하메하씨의 직계 조상이라며? 푸하하.... 와, 난 하와이에서 신들하고만 놀구 있네. 
어머니의 음성도 들렸다. “필아, 동가식서가숙 하더라도 아무데나 씨 뿌리는 짓은 하지 마라. 내가 느그 아부지 술을 고래로 마시고 별 사고 다 쳤지만 씨뿌리는 일은 하지 않아서 내가 점수 준거다. 알것냐?” 오메, 우리 어무니 초치는데 뭐있다. 모르겠다. 나는 그날 나를 탁 놓아버렸다.

환한 햇살에 잠이 깨었다. 하늘거리는 하얀 커튼 사이로 초록빛이 스며들었다. 잠시 내 실존을 의심하였다. 내가 죽어 하늘나라에 온 것인가. 몸이 둥둥 뜨는 듯 가벼운데 새소리와 물소리도 들렸다. 여기가 어디지?
“잘 잤어요?” 레이가 방긋 웃으며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레이의 환한 얼굴을 바로쳐보며 의심스러웠다. 꿈이었을 거야. 
왜 그래요? 잠자리가 불편했나요?” 레이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레이, 지난 밤 레이의 입술은 말랑 말랑한 ‘찹쌀모찌’같이 달콤했었다.
“네, 잘잤어요.” 나는 레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빠가 타로주를 넘 많이 주시더라. 그런데 술에 그렇게 약해요? 금방 녹초가 되어서 아빠가 겨우 상필씨를 침대에 데려다 눞혔어요.”
“저, 저 혼자 잤나요?” / “물론 혼자 잤지요.” / “저, 레이씨는 어디서 잤나요?” 레이가 이상한듯 쳐더보았다. / “물론 내 방에서 잤지요.” / “그렇군요.”
아직도 레이 입술의 촉감이 역력하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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