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눈에는 눈으로

2018.05.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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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15

눈에는 눈으로  

“차라리 병이나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면 내 말을 안캈시오…”
그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떨린다는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처음 미국에 오자마자 우리들 코메리칸 따라지들처럼 여기저기서 닥치는 대로 ‘데모도’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우리 패거리들과 술좌석에 어울리곤 했었는데, 항상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50살이 가까운 사내였다. 말도 많지 않았고 그저 자기를 박달수라고 이름만 소개한, 이북출신의 사람이었다.
그날도 우연히 우리 팀에 끼어 일을 끝내고 오는 길에 동네 식당에 들러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였는데, 그가 평소와는 달리 술을 다소 과하게 마시자 일행 중 한 명인 공목사가 한마디 거든 게 계기가 되어 그가 당한 일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박씨…그만혀. 뭐 술 마신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감? 우선 아이들 데려올 생각부터 해야잖혀?”
“왜? 뭔일이 있어요?”
내가 의아한 눈치를 보이자 목사가 눈을 꿈쩍하며 조심스럽게 귀띔해 주었다.
“오늘이…박씨 와이프 기일(qhr忌日)이라는구만.”
“아니…그럼 혼자였어요?”
이 바닥의 룰이랄까? 서로의 족보를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나는 그가 혼자 산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되자, 지금까지의 그의 알 듯 모를 듯한 얼굴 뒤에 묻혀 진 그늘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술잔을 건넸다.
“자, 한잔 받으세요 뭔일인지는 모르지만…”
두 손으로 내 술잔을 받아 쥐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눈도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공목사가 거들었다.
“갑갑헌 일 있으믄…그냥 뱉어뿌러. 그러믄 속이 편하당께.”
그가 술잔을 한 번에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담담하지만 격한 어조로 그가 겪었던 일들을 털어 놓았다.
요약을 하면 이러했다.
서울에서의 어느 날, 그의 부인이 갑자기 이틀간이나 사라졌다고 했다. 딸만 둘을 가진 그의 가정은 그런대로 별 애로 없이 살아가는 소위 중산층이었다.
아이들도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다 키워 놓았고 부인은 그래서인지 집에서 전업주부이기 보다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친척회사에 얘기를 해 직장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직장이 다소 멀어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가끔 시간이 늦으면 택시를 합승하여 퇴근하곤 했는데, 어느 날 이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다. 말하자면 집으로 오기 위해 택시 합승을 했다가 납치를 당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경찰요? 말짱 헛것이더라구요. 에미나이가 없어졌다가 이틀만에 돌아왔는데, 온몸이 담배불 자국에 멍투성이고…몸 버린 건 말할 것도 없고… 경찰에 신고했더니 그 가이새끼들은 왔다리 갔다리 흉내만 내며 수사비가 어쩌구 하더라구요. 거기다가 기자란 새끼들은 와 그리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암튼 우리 에미나이는 그 길로 정신이 나가 거의 실성해 있었는데…”

그는 그때 생각만하면 지금도 몸이 떨린다면서 술잔을 끌어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후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의 부인이 자살을 해버린 것이었다. 사고 직후 며칠간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하며 그는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복수를 한답시고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일 년여를 범인을 찾아 헤매며 돈만 까먹고 돌아다니다 결국은 조국을 등지고 말았는데, 미국으로 건너올 때 딸아이 둘을 즈들 고모집에 맡기며 애들에게 해주고 온 말들이 늘 가슴에 맺힌다고 눈시울을 훔쳤다.
“에미나이야 지 팔자가 그래서 몹쓸 일을 당하고 먼저 가버렸습니다만, 내레 아새끼들 앉혀놓고 딴 얘기는 암것도 안하고 딱 두가지만 갈켜주고 왔시오…내레 뭐라 했갔시오?”
“……?”
나와 목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레 갸들한테 이렇게 말했시오. 너들 말이다, 아바이가 데리러 올 때까지 스프레이 한 개씩과 송곳처럼 생긴 볼펜 한 자루씩을 사줄테니 꼭 몸에 지니고 있다가, 혹시 뭔 일 당하믄 절대 엄마처럼 당하지는 말아라…이랬시오. 와 기렌지 알갔시오? 누군가가 납치하려하면 절대 덤비지 말고 가만히 있다가 그 가이새끼가 방심할 때 스프레이로 눈을 쏘아라, 그리고 송곳으로 가차 없이 눈을 찔러라…이런 뜻으로 그걸 사주고 떠나왔시오…애비란게 참 한심하지요?”
기가 막힐 일이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었다. 그가 나의 속을 들여다보듯 불쑥 말을 보탰다.
“한심하지요? 애비란 놈이 딸자식들 앞에 놓고 그딴 걸 일러주다니…아무리 생각해봐도 옳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하지만 우리 딸아이들이 또 그런 일을 당하면…또 목사님이나 형씨가 만약 그런 경우가 된다면 어떡허면 조캈수?”
불쑥 물어온 그의 질문에 목사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주여~!’ 하고 외마디로 중얼거렸지만, 나는 딱 부러지게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가슴만 답답했다. 그러다 잠시 후 더듬더듬 한 나의 대답은 그에게 한 술을 더 떠주었다. 

“박형, 너무 약했시오. 목사님은 주님을 불렀지만 나 같으면... 눈을 확 찌른 다음 그 송곳으로 아예 돌려 후벼 파버리라고 했을겁니다. 눈은 눈으로 갚아야지요. 아주 잘했시요! 아이들이 만약 그런 일 당하면... 아빠 말 잘 듣고 씩씩하게 해낼겁니다.  힘내세요!” 

 

손용상
소설가/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