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진정한 사도?

2018.06.01 09:37

ohmily 조회 수: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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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12

진정한 사도?

 

-오우, 올드맴버가 다 모인걸 보니 뭔가 큰 일이 생긴 모양이로군, 그래 뭡니까? 잔치요, 초상이요?
부산하게 악수를 나눈 오 장로는 한껏 기대에 찬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재차 물었다. 허지만 모두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는 묘한 표정들을 지었다. 나는 아직도 오 장로에게 잡힌 오른손을 빼내어 탁자위에 놓인 신문을 가리켰다. 
-응? 뭔데.... 하며 신문을 내려다보던 오 장로는 미주 판에 실린 트럼프대통령의 얼굴사진을 보고는 ‘아니, 북미회담을 한다, 안 한다, 변덕부리는 트럼프를 우리가 어쩌라고, 데모라도 하자 이 말이요?’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연락책을 맡았던 김 집사가 신문하단의 삼단광고문을 손가락으로 콕 짚었다.
[광야교회 창립예배]... 굵직한 고딕체 제목 아래로 (참 제자의 도를 사모하는 남가주의 모든 성도님들을 초대합니다 / 이 시대의 진정한 사도 강요한목사) 라는 초청문안 밑으로 모월, 모시, 모처에서 라고 쓰였다. 뚫어져라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던 오 장로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헛, 하고 웃었다.
-강 집사가 결국 일을 냈구먼, 재앙이네, 재앙이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떤 기대감으로 흥왕했던 오 장로의 기분은 삼단광고 하나로 수직하강 했다. 광야교회 창립광고는 강 집사가 신학교를 거쳐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연장자인 오 장로를 필두로 강 집사(목사), 연락책 김 집사, 그리고 장로 둘에 나까지 여섯 남자들은 20여 년 전 LA코리아타운의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옛 교우들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제 집사는 물론 장로와 목사까지 생겨났지만 그때만 해도 이십대 후반, 또는 삼십대 초반의 팔팔한 평신도들이었다. 
어느 주일날이었다. 나를 비롯한 사내 다섯이 연례행사처럼 교회 뒤쪽 팜추리 아래 모여 예배시간동안 참았던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남자 하나가 우리 쪽을 향해 바삐 걸어오는 것이었다. 낯선 사람이었다. 우리는 피우던 담배를 등 뒤로 감추며 긴장했다. 다가오던 사내도 그런 낌새를 느꼈던지 주머니에서 하얀 담배 갑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나도 동종이오, 그런 신호였다. 그가 강요한 이었다. 그로부터 강요한은 우리와 한 패가 되었다. 
그런데 강요한은 흡연 외에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특별히 교회활동에 관해서 그랬다. 그를 제외한 우리 다섯은 예배가 끝나면 공짜점심이나 먹고 담배연기처럼 슬그머니 사라지는 타입이었는데 반해 강요한은 별도 집회나 세미나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사역팀에 들어가 각종 봉사에도 열심이었다. 강요한은 예배가 끝나면 팜츄리 아래로 뛰어와 급히 한 대 태우고  재빨리 돌아가 열심히 봉사했다. 강요한은 출석교인 칠백 여명의 중형교회에서 이내 유명인사가 되었다.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인들 사이에 강요한에 대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열심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봉사를 한단다. 더하여 외골수에 율법주의자라고 했다. 루머는 강요한이 교회 리더십을 공격하고 담임목사까지 비난한다는 소문으로까지 발전했다. 구체적인 증언도 들려왔다. 강요한이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맨손으로 막힌 하수도를 뚫었다느니, 주차봉사를 하다가 자기 지시에 따르지 않는 교인과 싸웠다느니 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어떤 시무장로가 바람을 피워서 가정이 시끄러운데 치리권을 가진 담임목사가 입 다물고 있는 사실에 분개한 강요한이 그 장로를 직접 만나 외도를 끊던지 출교를 하던지 양자택일하라고 해서 당사자가 뒤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강요한의 만행(?)을 나를 비롯한 담배친구 다섯 사람이 백일하에 목격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친교실에는 족히 이 백 여명 넘는 교인들이 식사를 하느라 시끌벅적 부산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뭔가 뜯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성난 고함소리가 천둥치듯 들려왔다. 우리 다섯 사람은 물론 식사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쏠렸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탁자를 밟고 올라선 강요한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방금 벽에서 뜯어낸 현수막을 흔들어대며 만장한 교인들을 향해 질타하고 있었다.
-여러분, 거룩한 성전을 골프대회 광고로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천국이 가깝습니다!- 
강요한은 회개, 천국을 두어 번 더 거푸 외쳤다. 광야가 친교실로 변한 것만 다를 뿐, 회개를 외치는 강요한의 모습은 정말 사도처럼 보였다. 식당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기가 차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도 강요한은 여전히 팜츄리 밑으로 찾아와 우리와 함께 담배를 피웠지만 어색해진 관계가 쉽게 복원되지는 않았다. 우리 올드맴버 중 광야교회창립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나와 연락병 김 집사 달랑 둘 뿐이었다. 교회 위치와 건물의 모습까지 광야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량하고 쓸쓸했다. 멕시칸의 명동이라는 알바라도 길 북쪽, 글렌데일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의 허름한 이층 건물이었다. 건물 뒤편의 작은 주차장도 이미 만원이어서 뱅뱅 돌다가 두어 블록 떨어진 갓길에 어렵사리 주차했다.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을 숨차게 올라선 나는 거기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 강요한 목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뚱맞게도 그는 누런 벽돌색의 계량한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은 모두 말쑥한 정장차림인데 정작 담임목사라는 사람이 창립예배에 중처럼 한복을 입고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이했다. 허지만 나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그의 손을 맞잡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 집사님의 성원이 헛되지 않도록 낙타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사도가 되겠습니다!
강요한 목사는 자신의 누런 계량한복이 마치 낙타털옷이라도 되는 양 가슴을 쑥 내밀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웃기만 했다. * 

 

이용우
소설가. LA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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