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서핑

2018.06.15 08:11

ohmily 조회 수: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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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18

 

하와이에서 생긴 일 (5)

 

레이가 커다란 유리그릇에 씨리얼을 담고 팩 우유를 부었다. 이걸 다 먹나 했는데 스푼으로 떠 먹다가 나도 모르게 그릇을 들고 마셨다. 목이 말랐었나보다. 레이가 킥킥거리며 스푼을 놓고 나를 따라 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엄마는 아침에 레이 배달 건으로, 아빠는 연구소로 각각 나가셨지요.” / “내가 어제 많이 취했나요?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 “정말 생각 안나요? 아버지를 마우이라고 부르며 막 기어오르고 팔씨름하자고 덤비고 타투에 대해 설명하라고 다그치고, 정말 엉망이었지요.” / “에구, 아버지께서 화를 내지 않으셨나요?” / “화커녕 재미있어 하시더라구요.”
아까부터 이 집의 누런 개 레버라도 리트리바가 레이를 맴돌고 있었다. 짜식은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나를 잔뜩 경계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개는 내 눈초리가 어디로 가는지 탐색하는 게 분명했다. 전혀 속옷을 안 입은듯 가운만 걸친 레이를 훔쳐보는 나를 의식하고 있는듯 했다.
“아버지가 상필씨에게 주라고 책을 놓고 가셨어요.”
레이 아버지 로버트 카메하메하씨는 하와이 농대 교수이며 폴리네시안 문화 보전위원이며 저술가이시다. 여러 책을 저술했다는데 그 중 책 <하와이의 나무들Tropical Tree of Hawaii>과 <하와이의 꽃 Tropical Blossoms of Hawaii > 2권을 내게 주며 싸인까지 해 놓았다. 어제 레이 어머니의 레이 가게에서 펼쳐 본 그 책이었다. 로버트 카메하메하씨는 토요일에는 자신의 타로 농장에 가서 농부처럼 일하고 실험실에서는 하와이 토박이 식물들을 특수재배하고 보호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집의 내부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큰 강당만한 거실 가운데로 흰 대리석의 완만한 층계가 나 있었고, 역시 흰 층계가 끝나는 흰 대리석 벽에는 유화로 된 대형 초상화 다섯 점이 걸려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나의 그랜드들입니다. 맨 위 혼자 있는 분이 그레이트 그레이트 고참 카메하메하 할아버지, 그 다음 두 분은 그레이트 그랜드 할머니 할아버지, 그 다음이 우리 부모님.”
초상화의 어른들은 하와이 전통 의상과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할머니들은 머리에 화관을 두루고 있었다. 온화하고 든든한 얼굴의 레이네 조상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레이는 어느 틈에 외출준비를 끝냈다.
 “레이, 내가 알기에 카메하메하라는 이름은 최초 하와이 통일왕국의 왕 이름이잖아요...” / “맞아요. “ / “그렇다면 레이 집은 왕족? 로열 패밀리?” /  “에이, 그런게 어딧어요? 이름이 그렇다 이거죠.” / “그래도 왠지 사진의 어르신들을 보니 레이네 가계가 카메하메하 왕과 관련이 있는것 같은데요.” / “관계가 있긴 있어요. 나중 기회가 있으면 말 해 줄게요.” / “궁금해지네요.”/  “상필씨는 꼰대다. 꼰대들이 그런데 관심이 많더라구요. “ / “뭐, 꼰대? 꼰대라니요. ” / “나는 오늘 커뮤니티 서비스하는 날 입니다.” / “무슨 서비스?”
레이는 서핑(Surfing 파도타기) 선수이며 비치 라이프 가드이다. 매 주 툐요일은 동네 비치에 가서 해변을 지키고 물에서 사고가 나면 즉시 달려가 생명을 구하고 인공호흡을 시키고 구급차를 부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온, 수질, 파고, 부표 등의 상태를 관계 기관에 보고를 하는 카할라 비치 지킴이다. 레이는 부엌으로 난 문을 나와 차고를 열고, 차고와 나란히 있는 또하나의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 벽에는 서핑 보드가 줄줄이 서있었다. 보트, 노, 잠수복, 물안경 등 바다 위에서 또 바닷속에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별의별 기구들이 키 순서대로 선반 벽에 걸려있었다. 그 창고는 바다의 비밀을 캐는 도구를 모아놓은 소 박물관 같았다. 레이가 자기 키 만한 하얀 보드를 가볍게 꺼내어 픽업에 실었다. 왠만한 기구들은 늘 픽업트럭에 있는듯했다. 레이가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서핑 할래요?”
나는 수영에는 자신 있었다. 서울 우리 동네 체육관의 수영장은 내 전용같이 사용했었다. 그런데 서핑은 말로만 듣고 스크린에서만 보았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서핑은 해보지 않아서..’ / “그럼 오늘 해보세요. 잘할거예요. 몇번만 물에 빠지면 될걸요.”
 레이가 픽업에 시동을 걸자 누런 개가 껑충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레이가 몸을 비켜 개의 탐승을 허락했다. 나는? 하는 표정으로 서 있으니 빨리 타라는듯 엄지손가락으로 앞좌석을 가르켰다. 어젠 몰랐는데 이 집은 꽤 높은 산중턱에 있었다. 이 동네 이름은 카할라라했다. 집들이 크고 정원 손질이 잘돼있었다. 나는 내 아이폰으로 Kahala in Honolulu를 눌러보았다. 와이키키에서 20마일정도 떨어져 있는 이 지역은 하와이의 비버리힐즈라고 나왔다. 허리웃의 비버리힐즈는 지금 LA 주변 지역의 고급화로 더 이상 매력있는 도시가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최고급 주택지역이라고 완고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여기가 호놀루루 최고급 주택가라네. 맞아요?” / “난 모르겠어요. 난 여기서 나서 여기서 자랐고 중고등학교를 여기서 다녔어요. 대학도 여기서 가까워요. 그냥 사람 사는 동네지 뭐. 고급주택가라는 게 무슨 뜻인지 뭔지 모르겠어. 가끔 관광단 버스가 이곳을 지나며 동네 구경을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와요. 하와이에 구경할 게 얼마나 많은데 하필 동네 집 구경을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구요.” / “어? 여기가 허니문 장소로 유명하네. 흠, 카할라 호텔 & 리조트가 있군. 배우 이영애씨도 신혼여행을 여기로 왔었네 “
레이가 커뮤니티 서비스를 한다는 카할라 비치는 북적대는 와이키키에서 약 20 분 거리에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의 전용 비치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하는 곳이란다. 파킹을 하면 바로 모래사장이다. 다이아몬드 헤드를 배경으로 푸르른 와이키키가 끝없이 펼쳐보이는 카할라 비치는 차분하고 평화로웠다. 등나무 그늘 벤취에 앉아 바다에 취하고 있을 때 레이가 서핑 보드를 옆에 끼고 모래를 걷어차며 바다로 나갔다. 비키니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레이는 정말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졌다. 태양은 강열하였고 바다와 교감하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와 맞닿은 곳에 레이만 존재했다. 끝없이 넓은 바다와 끝없이 넓은 하늘이 합쳐진 곳엔 가로로 하나의 선만 있었다. 바다와 하늘만 존재하는 풍경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였다. 아 그리고 바람이 있었다. 바다와 하늘과 바람 속에 레이와 내가 있다는 생각에 벅차올랐다. 
레이가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며 파도타기를 즐기고있었다. 그러다가 몇개의 파도를 헤치고 큰 파도가 몰려오는듯 했는데 그 파도의 날 위에 레이가 우뚝 섰다. 바다와 하늘이 만든 직선위에 레이가 수직으로 서있었다. 비현실의 광경이었다. 자연의 순간 연출이었다. 레이는 단연 파도를 제압하는 여신이었다. 바다에 여신이 있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러다가 솟아오른 파도가 부서지듯 거품과 함께 쏟아져내려왔다. 파도가 성낸 듯 마구 구비 치는데 레이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레이를 놓쳤다. 앗 레이가 안 보인다. 레이가 파도속에 묻혔나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첨벙첨벙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레이가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레이를 구해야한다. 나는 레이를 잃을 것 같은 초조함으로 파도를 헤치고 갔다. 수영을 잘한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여기 하와이 파도 속에서는 몸이 둥둥 떠밀릴 뿐 헤쳐 나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나보다. 그때 어디선가 레이가 물속에서 솟아나오며 나를 잡았다. 나는 죽었던 레이가 살아온 것처럼 반가움에 떨며 레이를 안았다. 그리고는 키스를 퍼부었다. 레이가 내게 안기며 Are you OK?를 연발하고 있었다. 나?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힘이 빠지고 있었다. 레이에게 몸을 맡기니 조금 편안해졌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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