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한 여름 밤의 꿈

2018.07.13 09:21

ohmily 조회 수: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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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20

 

한 여름 밤의 꿈

 

205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식이 열리고 있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콘서트 홀 가족 초대석에 앉아 있는 문재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연신 흐르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가족들은 문재의 건강을 우려하여 장거리 여행을 말렸으나, 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린의 수상식에는 꼭 참석해야겠다는 문재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영광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노벨상위원회에서 엄선하여 초대한 귀빈들과,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 든 취재진들이 내뿜는 열기는 엄숙한 분위기의 행사장을 후끈 달궈 놓기에 충분하였다. 문재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을 잊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았다.
 
문재가 아이린을 본 지도 어느덧 삼십팔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이린은 문재의 큰 손녀로 이 세상에 왔다. 태어 날 때부터 영민해 보였던 아이린은 자랄수록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생후 4개월이 지날 무렵 옹알이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엄마, 아빠를 또렷한 발음으로 불러 깜짝 놀란 경험을 아들부부는 기억하고 있다. 아장아장 걸음마도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시작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성장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유치원에 입학해서는 아이린의 학습재능에 선생님들이 깜놀할 지경이었으며 지능검사는 상위 1%에 속하는 높은 결과가 나왔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특별히 언어분야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문재는 혹시 아이린이 나를 닮지 않았나 싶어 내심 흐뭇하게 생각했다. 가족들은 이런 아이린을 몹시 사랑하였고 장래에 무엇이 될지 그 기대함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아이린이 오늘날 뛰어난 작가로 성장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아이린이 네 살 되던 해 문재는 육십 회 회갑을 맞이하였다. 두 아들부부는 그동안 고생하셨는데, 이참에 두 분이 근사한 크루즈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라고 성화였다. 이에 문재는 백세 시대에 무슨 환갑을 챙겨 먹느냐며 아내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는데, 여기에는 따로 속셈이 있어서였다.
 
문재는 그동안 수필로 문단에 등단한지도 십 수 년이 지나가는데도 여태 이렇다 할 수필집 한권 내지 못하여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이런 이유로 여행경비로 쓸 비용으로 수필집 하나 만들어 환갑기념 겸하여 출판회라도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열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오래 전 부터 문재가 계획해 오던 바램이었다.
 
이리하여 가족들과 문재가 소속된 문학회의 지원으로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었는데, 그 자리에 네 살 배기 아이린이 부모와 함께 참석하였다. 후에 아이린이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을 때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고백하기를 ”어릴 때 할아버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받은 감동이 자신을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고 하였다.이 기사를 읽은 문재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아이린이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쓴 자전적 소설 ’할아버지와 나’는 그 내용의 참신성과 높은 문학성으로 출판 되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단 한권의 책으로 올 해의 작가상은 물론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전무후무한 일이였다. 덩달아 문재의 수필집도 재조명을 받아 뒤늦게 호주머니 사정이 나아져 잘 둔 손녀 하나 열 손자 부럽지 않음을 실감하였다.
 
이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아이린의 창작열은 해마다 한,두권의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으며 단 일 년 만에 대학을 최우등생으로 졸업함과 동시에 명문 스탠포드대학 영문학과의 정교수로 특채되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런 아이린은 이십대 중반에 이르자 세익스피어에 비견되는 작가로 거론되기 시작하였으며 노벨문학상을 당장 받아도 손색이 없는 작가로 평가받았다.
 
아마도 문재가 오랜 지병에도 불구하고 구십이 넘도록 장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이린의 성공을 지켜보겠다는 의지력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린의 성공은 곧 문재의 기쁨이며 살아가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 잠시 주변에서 일었던 웅성거림이 조용해지나 싶더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아이린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문재의 명상을 깨웠다.
 
동시에 저만치 무대 위로 걸어 나가는 아이린이 보이는 싶더니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벼락같은 목소리와 함께 오버랩 되어 다가왔다.
“여봇! 뭐해. 자? 벨소리 못들었어?”
득달하는 마눌님의 목소리에 잠이 화들짝 깬 문재는 아차 싶어 작업대로 잽싸게 움직였다.
작업대 위에는 시간 맞춰 밀려고 덩어리 덩어리 뭉쳐 논 반죽이 잔뜩 오버 프루프되어, 나잇살 들어 아무리 보정 속옷으로 일으켜 보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처져만 가는 마눌님의 앞가슴처럼 축 늘어진 채 문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

 

김희중
오클라호마 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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