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가짜 뉴스

2018.09.07 09:01

ohmily 조회 수: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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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23

 

가짜 뉴스

 

백제의 왕자 서동은 신라 진평왕 셋째 딸인 선화공주의 미모를 듣고 흠모하여 장안으로 몰래 잠입하였다. 며칠을 궁리한 끝에 노래를 지어 어린 아이들을 꼬드겨 퍼뜨리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서동을 사랑하여 밤마다 서동을 남물래 불러 들여 연애를 한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핫한 관심꺼리에 목말라 있던 경주 시민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급기야는 진평왕의 귀에 까지 들리게 되었다. 여느 자식보다도 애정을 쏟았던 셋째 딸에 대한 해괴망칙한 소문에 배신감을 느낀 진평왕은 대노하였다.그 진위를 가릴 여유도 없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화공주를 궁궐 밖으로 쫓아내고야 말았다. 

 이 모든 사태의 주모자인 서동은 동네 어귀에서 쫓겨난 선화공주를 기다렸다가 마치 운명처럼 나타나서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된 선화공주의 구원자가 되어 백제로 넘어가 부부가 되었다. 내용으로만 보면 고대 한민족의 ‘남여상열지사’이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서동의 죽음을 무릅 쓴 모험담과 그의 뛰어난 계략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역시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허투로 나온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다 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흔히 결과만을 주목하여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사고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과정의 중요성보다는 결과의 산물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자주 보게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서동이 지어낸 이야기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위험했다. 근본적으로는 사실이 아닌 허구였으며 가짜 뉴스였다. 선화공주와는 전혀 일면식도 없었으며, 사전에 상대방과 어떠한 의사의 교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서동 혼자서 자행한 무모한 행동이었다. 자칫 잘못되었으면 이유도 모르고 선화공주는 아까운 목숨을 잃을 뻔 했을 수도 있었다. 위험천만한 서동의 행동이었다.
 하마터면 가짜 뉴스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선화공주는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부지하여 스토커와 다름없는 서동의 위장된 선행으로 구원받아 해피엔딩의 주인공으로 역사속에 남을 수 있었다.그렇다면 가짜 뉴스의 결과는 항상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온 것일까? 성경의 창세기편을 보면 사탄은 최초 인류인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기 위할 목적으로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가짜 뉴스로 꾀어내어 타락의 길을 걷게 했다.

 인류가 직립보행이 가능한 이후 인지력이 생기고 혹독한 자연 속에서 치열한 생존의 싸움을 벌일 때 본능적인 보호본능으로 익힌 기술이 ‘위장술’이었다.  이러한 위장술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적과 맹수로 부터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은폐와 엄폐술,종족보존을 위한 연애술,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술 등은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를 위한 다양한 도구 가운데 가짜 뉴스를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 이솝은 우화를 통하여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 ‘양치기 소년과 늑대’라는 이야기가 있다. 홀로 양을 치던 어린 목동이 무료함을 달랠 목적으로 심심풀이로 생각해 낸 것이, 거짓으로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몇 번 속은 주민들은 진짜 늑대가 나타났으나 소년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아 결국 키우던 많은 양들을 늑대에게 잡혀먹었다는, 거짓말의 참담한 결과를 말해주는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거짓말과 가짜 뉴스는 같은 듯 하나 다르다. 이 둘은 사촌지간이라 하겠다. 둘의 뿌리는 인간의 악성에 있으나 가지의 굵기가 다르다. 거짓말은 개인적이며 그 파급력이 소규모이나 가짜 뉴스는 집단적이며 파급력이 광범위하다. 어찌 보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되는 격’이다. 인류 역사는 ‘거짓말과 가짜 뉴스와의 투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것이 역사이다.

 역사의 많은 전환점에 가짜 뉴스는 싫던, 좋던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아니, 사람들은 오히려 다양한 목적을 위하여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이용했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처럼 헤아릴수 없는 가짜 뉴스 중에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철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고대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를 명백한 가짜 뉴스로 본다.
 아마도 틀림없이 소크라테스 사후 그의 드라마틱한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그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지어낸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사실은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악선도 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도단이다.악한 것은 악한 것이지 선한 악은 없는 것이다. 궤변은 인간의 언어가 태생적으로 내포한 한계이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악법도 법이지’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직감한 노 철학자가 생을 체념하면서 내뱉은 한탄의 소리였을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위정자들이 이 가짜 뉴스를 근거로 삼아 이루 말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 왔다. 법이라는 미명아래 당연히 건전한 인간사회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한 가짜 뉴스들이 완장을 두르고 세상의 판관 노릇을 해왔다. 

 가짜 뉴스는 컴퓨터를 이용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가 활발한 21세기 들어와 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전 세대에는 그 누군도 상상치 못한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무차별적으로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틈에 많은 분량의 가짜 뉴스들이 숨어 들어와 암약하고 있다.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이런 뉴스들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뉴스 분별력은 현실성을 잃은지 오래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뉴스의 쓰나미에 휩쓸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긴장에 탄력을 상실한 스프링처럼 넋이 빠진 인류는 모든 것을 인공지능(AI)에 맡긴 21세기형 괴물이 생산해 내는 가짜 뉴스에 일희일비하는 존재로 전락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짜 뉴스는 세 치의 혀로써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 

 “누가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김희중
오클라호마 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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