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파도 닮은 훌라 춤

2018.09.21 10:42

ohmily 조회 수: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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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24

 

하와이에서 생긴 일 (7)

 

파도 닮은 훌라 춤

 

 

“그 옛날 하와이의 첫번째 사람 티키가 목걸이로 변신하여 레이를 지켜주는 부적이되었네요.” / “부적?” / “부적이 뭔데요?” 
티키는 무섭게 부릅뜬 눈이 튀어나올 듯 돌출되어있고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벌어진 큰 입에 긴 이빨이 뻗혀있다. 머리가 네모나고 얼굴이 몸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가분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웬만한 악귀들은 티키의 위세에 눌릴듯했다. 티키는 원시 예술 총체 같은, 그러면서 파격적인 현대 예술의 면모가 보이는 폴리네시안 예술의 산물 같았다.
 “티키가 맨 처음 사람이라고? 아담과 이브가 아닌가?”
 “그건 기독교인들이 믿는 거지요. 하와이 인들, 정확하게 말해서 폴리네시아인들은 티키가 이 세상의 첫 사람이라고 믿어요.” / “레이는 참 유식하네.” / “누구나 자신들 조상 이야기는 알고 있는 거 아녜요? 한국인 최초의 조상은 누구죠?” / “글쎄, 나는 한국 역사에서 맨처음 나라를 세운 사람은 단군이라는 것만 알고 있지. 물론 단군 이전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도 사람들은 한국 땅에 살고 있었지만, 누구였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어요. 근데...중국의 반고 신화 아세요? 하와이 대 Harrison Kim 역사교수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먼 옛날 우주계는 알 속처럼 혼란스러웠는데 그 혼란을 뚫고 사람 신 반고가 나타났대요. 반고가 힘을 쓰자 그 어 둠 속에서 뒤엉켜있던 기운이 한꺼번에 밖으로 빠져나와 순식간에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가벼운 기운은 위로 솟아 올라 하늘이 되었고, 무거운 기운은 땅이 되었답니다. 반고는 하늘과 땅이 다시는 붙지 못하게 기둥처럼 바치고 섰는데, 하늘은 하루에 한길 높아지고, 땅은 하루에 한길 두꺼워지고, 반고의 키는 하루 한길씩 자라났대요. 반고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키는 무려 9 만리나 자라났고 반고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그 자리에 쓰러졌지요. 그러자 반고는 몸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반고의 입에서 나온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고, 반고의 목소리는 천둥소리로 변하고, 왼쪽 눈은 태양이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별이 되고, 손과 발은 동서남북이 되고, 몸통은 높은 산이 되고, 피는 강물이 되고, 핏줄은 길이 되고, 이는 금속이 되고, 뼈는 단단한 돌멩이로 변하고, 골수는 반짝이는 진주와 보석이 되고, 피부와 솜털은 숲과 나무가 되고, 땀은 비와 이슬과 서리가 되었답니다.“
 “와우, 난 첨 듣는 강의네요.” / “재밌잔아요. 중국인 특유의 허풍이 들어나는 신화이지요. 그 역사 교수님은 신화는 신화로서 의미를 살펴야 된다고 했어요. 중국의 반고 신화는 모든 사물이 관련이 있다는 뜻이고 생명은 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만물 동근 사상이라고 했어요. 폴리네시안의 신화도 그와 비슷한거죠.”
 레이의 후임 비치 라이프 가드가 왔다. 아슬아슬하게 끈으로 연결된 수영복을 입은 비키니의 아가씨는 레이만큼 긴 머리칼에 살집이 없는 백인 아가씨였다. 썬 글라스와 책 한권을 들고 있는 그 아가씨의 간결한 모습은 구도자처럼 가난하고 투명해보였다. 둘이는 뭔가 속삭이면서 웃기도 하고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물에 빠진 저 친구를 구했다는 애기를 하는듯했다.
“가요.” / “어디?”  배고프잖아요 하면서 레이가 차를 몰아 산중으로 들어갔다. 여기다. 내가 혼자 왔던 그 타로 농장 가는 길이다. 레이가 내 맘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치와 숲 사이는 차로 15분 정도, 레이가 속도를 늦추며 좁은 길로 계속 운전을 해 나갔다. 길 양 옆으로 조각상이 늘어서 있었다. 티키였다. 이 골짜기에 있는 티키들은 나무로 또는 돌로 조각되어있었는데 전봇대 모양 키가 큰 것, 주저앉아있는 것, 제주도 하루방처럼 생긴 것 등 모양도 가지가지였다. 이곳의 티키는 한국의 시골 동네 어귀에 서 있는 지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같은 장승을 연상시켰다. 레이가 차를 세운 곳은 Hawaii Historic Place라는 팻말이 붙은 곳이었다. “여기는 우리 고모네 집이예요. 우리 아빠의 막내 여동생인데 무당이예요.” / “무당? 하와이 무당?” / “무당이라니까 놀라시네요. 고모는 하와이의 훌라춤 선생님이고 하와이 전통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있어요. 하와이 전통문화가 기독교인들에게 미신행위 같이 보였는지 무당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실은 한동안 훌라 춤이며 풀 옷 등이 금지됐던 적도 있어요.” / “전통문화와 미신은 다르지요.” / “그렇죠?  넓은 사각의 잔디밭 입구 정면에는 흰 석조건물이 있고 그 건물의 좌우로 통나무로 지은듯 사방이 뚫린 하와이식 건물이 보였다. 레이가 그 건물로 들어가며 따라 들어오라는듯 손짓을 했다. 집 내부가 레이네 집 구조와 비슷했다. 홀을 중심으로 가운데 층계가 있고 좌우로 복도로 연결되어있었다.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쪽은 식당이었다. 하얀 너울 옷을 입은 분이 팔을 벌려 레이와 포옹을 했다.
 “Hi, guys, you look hungry. Come on in. Sangpil too.”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식당에는 십여 명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식판에 담고 있었다.
 “하와이 식인데 좋아하실 거예요. 알라모아나 Food Court 하와이 식당을 여기서 운영하고있어요. 여기 있는 분들은 하와이 전통음식을 전수하려는 분들이예요.”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와 생선, 포이, 사라다, 과일, 펀치 들로 풍성했다. 하와이 식음식은 볶거나 튀김 종류가 많은데 마늘, 파, 고추 같은 스파이시한 양념을 많이 써서 한국, 중국, 일본음식을 섞어놓은 듯 했다. 나는 주머니에 간직한 우리된장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장사꾼 티를 낸다고 할까보아 망설였지만, 하와이 음식에 된장국은 정말 잘 어울릴듯했다.
 “Did you enjoy your food, Sanglpil?” / “Yes, Mam... Do you know me?”
 “Sure, we met yesterday at my Taro farm” / “Really?” / ‘Yes, you enjoyed my Taro juice, right? / “Oh my god, aunt Kay, did you give that juice to him?
 레이가 내 귀에 입을 대고 소근소근 사건의 전말을 애기했다. 전화로 레이가 고모에게 나를 소개 했고 고모는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차를 마당 가까이 세우고 잠이 들었다는것, 잠결에 고모를 따라 타로 농장으로 갔고, 거기서 고모가 타로와 타로 쥬스를 대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랬구나. 상필씨가 자꾸 헛소리한다고 생각했는데. ㅎㅎ”
 이게 뭔 소리야. 날 가지고 노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타로로 만든 쥬스는 일종의 피로 회복제인데 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 한잔 주었다는 것이다. 레이는 이 타로 쥬스를 신들의 음료수인 ‘타로 넥타’라며 아주 특별한 손님들에게 대접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타로넥타를 마시고 환각 상태로 들어갔다는 거였다. 이 이야기로 내가 겪었던 타로 농장에서 여신을 만난 신비스런 사건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웬지 서운했다. 
환상은 환상일 뿐 현실이 보다 더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식사 시간이 지났는지 여기저기서 노래 소리 북소리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레이가 내 손을 잡고 클라스를 구경시켜주었다. 훌라춤 클라스에서는 원색의 꽃그림 옷들을 입고 꽃 관을 쓴 무용수들이 열지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훌라는 노래하고 춤춘다는 뜻이예요. 고대 하와이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훌라춤을 추며 몸짓으로 언어를 대신했어요.” / “문자가 없었다고?” ...그렇구나. 문자가 없으니 하와이의 정신을 담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독립왕국이었던 하와이가 단시간에 미국으로 넘어갔구나. 세종대왕 고맙습니다. 나는 공연히 하와이에 연민을 느꼈다. 훌라는 춤 동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보디랭귀지(Body language)로 의사소통과 문화계승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니까 훌라 동작 하나하나는 약속된 몸짓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유연하게 흔드는 몸짓은 또 일렁이는 파도와 닮아있었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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