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오얏나무 아래에서

2018.03.09 12:30

KTN_WEB 조회 수: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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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오얏나무 아래에서

 

뒷마당 채소밭 한 귀퉁이에 하얀 오얏꽃이 활짝 피었다. 오얏나무라고도 하는 이 자두나무는 이년 전에 심은 것이다. 밭 주위로 복숭아나무를 심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 두 해 살다가 한 그루만 남기고 모두 죽어버렸다. 땅이 지나치게 산성인 인데다, 질척한 진흙땅이어서 배수가 잘 안 되어서 그런 모양이다. 자두 꽃은 흔히 복사꽃이라고 일컫는 분홍색 복숭아나무 꽃과 모양이 비슷한데 색깔만 다르다. 한문으로 붉을 자(紫)에 복숭아 도(桃)자를 써서 자도나무 하다가 자두나무가 되었다. 이 자두꽃은 향기가 일품이다. 게다가 꽃잎이 봄의 상징인 매화 와 비슷해서 친근감을 준다. 또한 바다를 건너온 나비 한 마리가 계절의 시작을 알리 듯, 하얀 꽃잎이 마당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 꼭 봄의 전령 같아 반갑다.

 

이 자두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대략 기원전 1-2세기경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에 보면 복숭아, 오얏, 살구, 밤, 대추 다섯가지 과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시경>에서도 “주나라에서는 매화와 오얏을 꽃나무의 으뜸으로 쳤다” 는 기록이 있어, 중국에서도 귀하게 여기던 나무였던 것 같다. 흔히 매화는 엄동설한을 이기며 피어,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여기에 오얏을 견주었으니, 새삼 눈길이 간다. 또한 이씨 조선을 창건한 이(李)씨 가 오얏 이씨여서 조선시대 때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신라 말 도선국사가 <도선비기>에서 5백년 뒤 한양에 오얏, 이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 설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이를 막고자 고려조정은 한양 북한산에 심은 오얏나무를 주기적으로 베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막을 수 없어, 오얏 이씨 ‘조선’은 장장 500년 동안이나 건재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새삼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마라’ 라는 속담이 자주 떠오른다. 어찌 우리나라의 불행한 역사는 퇴임 후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전직 대통령이 아무도 없는지, 개탄스럽고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는 정권이 들어서면 오얏나무 아래에서 남들이야 보던 말 던 갓끈부터 고쳐 매는 자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그 오얏나무가 한 몇 백 년은 갈 줄 알고 그러셨는지,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는 오얏 이씨 성을 가진 전직 대통령과 그의 친 인척들에게 묻고 싶다. 오얏나무도 나무지만 그 아래가 더 문제이다. 충성이란 이름으로 온갖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찌 그리 당당하고 결백한 것처럼 구는지, 대한민국 상위 몇 프로의 민낯을 질리도록 보는 요즘이다. 또한 나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운동을 보면, 그간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의 원시사회였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뒤집어야 한다. 봄철에 새 작물을 심기 위해 밭을 확 갈아엎듯이 뒤집어야 한다. 문우 중에는 평소 좋아하던 시인이나 작가가 가해자인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찬란한 봄에 무척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날은 자두나무 거름이나 주고, 가지치기나 하며, 지낼 일이다. 하얀 꽃들이 지면서 맺어줄 보랏빛 열매들이나 기다릴 일이다. 인간세상 은 뒤숭숭 하고 시끄럽지만 자연은 순리를 거스르는 법 없이 싹을 틔우고 새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 나무마다 봉긋이 솟아 오른 새순들이 봄 햇살에 웃고 있다. 저 먼 들판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노란 민들레 지천으로 피어, 낮게, 더 낮게 엎드려 산다면 근심할 일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해방의 기쁨처럼 모든 것이 진실 안에서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간구해본다.  *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희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 박두진 시 <어서 너는 오너라> 중에서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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