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후추소금 단발’로 만난 친구

 

달라스 날씨가 롤러코스트를 타면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계절을 신기하게 알아차리는 나무와 꽃 덕분에 어디를 가든 환하게 함박웃음을 웃고 있는 브레드포드 페어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프라세리 홍가시나무(Photinia x fraseri)의 붉은색 새잎이 꽃처럼 고와서 브레드포드 페어의 흰색 꽃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달라스가 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계절에 주책없이도 섭섭병이 도졌다. 알량한 자존심이 상했다는 생각에 한 번씩 옭아매지는 섭섭증세. 형제들로부터 오면 가족들을, 가족으로부터 받으면 친구들을 찾게 만든다. 혈연관계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친구 맺기의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으니 동서고금에 친구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람숫자만큼이나 많으리라. 

영국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내걸고’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독자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다. 수천 편의 응모엽서 중에서 1등은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고 한 것을 ‘작은 이야기 큰 깨달음’이라는 글에서 본 생각이 난다.
혼자서 속으로만 부끄럽고 슬펐던 여자들의 미투. 그에 연루되어 “후배들에게 사죄하며 교만과 그릇됨을 뉘우친다.”고 조용히? 생을 스스로 포기하고 떠난 교수님의 “쓸쓸했던 장례식” 기사가 눈에 띄었다. “죄는 죄이고 인연은 인연인데... 연예계의 분바른 모습...”이라고 글을 남긴 분의 말대로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 씁쓸하고 마음 아픈 기사였다. 
한편 뇌종양으로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중학생친구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같이 나누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자기의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렸다. 그리고 그 반 학생들도 앞 다투어 머리카락을 깎다보니 모두가 민머리가 되었다. 뇌종양에 걸린 학생은 의사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고 한다. 

커피브레이크 성경공부에서 누군가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도움 받은 적이 있는지, 삶에서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주 투산의 친구를 돕겠다고 갔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돌아온 것을 나눌 수가 있어서 감사했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 첫 소풍가는 날 만나게 된 후로 지금까지 친구다. 오래전 한국서 목회할 때 교회건축하고 사기 당하고, 부채와 이자를 감당하느라고 맘도 몸도 피폐해 있었다. 식물인간처럼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이자에 졸리다 보니 병원비를 내고 진찰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때였다. 친구는 선뜻 병원부터 가라고 했다. 지금 당장 가진 돈은 없지만 빌려서라도 다녀오면 자기가 꼭 갚아주겠다고 하던 친구의 고맙던 말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세월은 우리 가족을 달라스로 그 친구는 애리조나로 데려다 놓았다. 서로의 궁금증과 기도제목을 전화로 풀기도 했지만 나도 그 친구도 혹독한 이민생활을 겪어야 했다. 친구의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도 꽃만 보내고 텍사스를 떠날 수 없었다. 스트록 된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가족생계를 떠맡은 핑계로 못 갔던 나는 늘 빚진 기분이었다. 

남편 사별 후 한국에 갔다가 10여년 만에 돌아온 친구는 이번 봄 방학에 만났으면 했다. 봄 방학이라 잠시 비행기 표 걱정을 하던 나는 ‘그래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나 이번만은 꼭 가리라.’하던 참에 아들이 비행기 표를 사주었다. ‘후추소금 단발’에 워마트표 백팩에 볼켑으로 나타난 친구. 무엇이든 최고급 일류 메이커만을 찾으며 살았는데 신도 워마트에서 20불 주고 샀단다. 그 나이에도 공부에 올인하며 젊은이들에게 엄마와 할머니 마음으로 대하는 너그러워진 모습은 내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친구는 결혼 후 생긴 ‘편집증 성격장애’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호되게 시련을 겪으면서도, 엄마를 지극히 섬기고 조카들을 도우면서 한국에서 음악치료 석사를 마쳤다. 이 번에 논문을 보고 그 친구에 대한 여러 가지 내 편견을 버려야 했다. 아직도 일부 남은 ‘편집증 성격장애’로 애리조나의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서 무척 섭섭했지만 친구가 우선이지 않은가. 주고받은 메시지도 지워야했지만 친구의 마음을 편하게 받아주고 믿어주고 들어주며, 나 자신도 돌아보며 치유를 받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위로와 용기 희망을 주시며 죄인인 우리에게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며 함께 기도하는 친구! 가족도 친척도 없고 아직은 친구도 없으니 손 편지라도 가끔 보내야겠다. *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내 몸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 간 나와 항상 같이하여 주시고...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찬송가 88장에서)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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