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유 투?

2018.04.0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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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12 

유 투? 

 

김 원장은 웃기지만 심각하기도 하다는 두 표정을 함께 지으며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마치 누나의 연애편지를 훔쳐 읽은 아이 같았다. 고백은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뭔데 그래?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그렇게 물었다. 아버지에 관한 일이 아니고서야 김 원장이 나를 보자고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그제야 김 원장은 시선을 고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예, 그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교장선생님이 미투에 걸렸어요.” 김 원장은 그렇게 말해놓고 헛헛헛, 웃었다. 격에 맞지 않지만 그 말이 작금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미투에 걸려? 미투라니, 그게 뭐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지만 아버지와 연관 짖기에는 턱없이 먼 외래어여서 나는 새삼스레 되물었다.
“아이, 선배님도 참, 거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성추행 고발운동 있잖아요, 신문이랑 방송매체를 요란하게 장식하잖아요. 미투!” 
“미투? 그럼 우리 아버지가 누굴 성추행이라도 했다는 말이야?” 나는 내입으로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김 원장처럼 헛헛헛, 웃었다. 그러자 김 원장도 따라 허허 웃더니 큰 눈알을 바짝 당겨오며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성추행이면 가볍지요,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성폭행에 가깝다고요, 성폭행.”
“성폭행? 우리 아버지가? 나는 기가 막혀서 그렇게 되물으며 김 원장의 큰 눈을 노려보았다.” 자기가 무슨 재판관이라도 된 듯, 목격자니 증언이니 하는 수사학적 용어를 남발하며 아버지를 성폭행범으로 몰아가는 태도가 밉살스러웠다. 동창모임에서는 형님, 선배님하며 굽실거리더니 지금은 재판관처럼 목에 힘을 주고 있다.
그때 70 중반의 할머니가 원장실로 들어왔는데, 김 원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 옆의 빈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시라고 했다. 늙어서도 시기와 교활함을 버리지 못한 매끄럽고 갸름한 얼굴이었다. 늙은 여자는 곱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일별하더니 끙, 하며 자리에 앉았다. 재판관 앞에 피고인과 증인이 나란히 앉은 꼴이었다. 
“최 여사님, 이 쪽은 구십 이 호실 박 교장님의 보호자이신 큰 아드님이십니다. 여사님께서 목격하신 장면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말씀해보시지요.” 
김 원장의 권유를 받은 최 여사라는 중늙은이는 밤새 연습한 웅변을 복기하는 초등학생처럼 따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정말 제가 본 대로 사실에 입각해서 절대 거짓 없이 증언하겠어요. 박 교장이 오십 일호 유인자의 어깨나 등을 슬쩍슬쩍 만지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어요. 그런데 지난 토요일 밤에는 글쎄 가슴과 엉덩이를 더듬는 것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니까요, 그 여자가 싫다고 몸을 빼는데도 집요하게 달려들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살이 떨려. 어쩌면 고매한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연약한 여성을 강압적으로 추행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아요. 아유, 더러워. 너나 할 것 없이 사내들의 음욕은 하나 같이 똑같다니까. 아유 더러워!”
최 여사는 어깨를 들어 올려 자라처럼 목을 파묻고는 마치 자기가 추행을 당하고 있기라도 한 듯 몸을 떨며 피하는 동작을 취했다. 그런데 단순한 목격자로 보기에는 지나치리만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다. 몇 차례나 거듭 더럽다고 했다. 왜 무섭다거나 징그럽다고 하지 않고 더럽다고 할까. 그러자 문득, 더럽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징그러워, 아버님 징그러워 하며 목을 움츠리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저녁, 아버지가 컴퓨터를 켜놓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과일접시를 들고 아버지 방에 들어갔던 아내가 얼굴이 빨개져서 뛰어나오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낮게 속삭였다.
“아유, 징그러워, 아버님 징그러워!”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급히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아버지가 켜놓은 데스크탑 화면에 섹스동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 역시 아내처럼 얼른 아버지의 방을 뛰쳐나왔는데, 하마터면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아버지와 민망한 장면을 맞닥뜨릴 뻔 했다. 그 일 이후로 아내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자리를 은근히 피했다. 나는 아내에게 색욕은 식욕, 수면욕과 함께 인간의 3가지 절대본능라고,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야동을 시청하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다. 허지만 아내는 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알아, 나도 알아. 하지만 아버님 볼 때마다 징그러운 걸 어떻게 해.’ 하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결국 아버지는 이른 나이에 고등학교 후배가 운영하는 천사양로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최 여사의 과장된 증언에 거부감이 들며 아버지의 말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두 사람에게 약속한 나는 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나의 완곡한 추궁에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하고 귀를 모아 듣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난 또 무슨 말이라고, 하는 얼굴로 허리를 세웠다.
“그거 최 여사라는 할망구가 하는 말이지? 여우같은 늙은이라고.... 그거 죄다 그 할망구가 질투심에서 그러는 거야. 난 싫다는데 저 혼자 자꾸 쫓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히다가 안 되니까 그런 소릴 하고 다니는 거라고, 못된 할망구 같으니라고.” 
“그럼 최 여사의 말이 모두 사실이 아니란 말이에요? 유인자 라나 하는 여성분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자기가 직접 목격했다고 말하던데요?” 내가 문제되고 있는 여성의 이름까지 말하자 잠시 기세등등하던 아버지의 눈이 급격히 풀어지며 어, 뭐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고....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버지의 변화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앞으로 바투 다가앉으며 전에 아내에게 하듯 아버지의 손을 따듯하게 감싸 쥐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요즈음 미투 운동여파로 사회 분위기가 몹시 냉랭해져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형사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 동의없는 신체접촉은 명백한 범법행위입니다. 어느 선까지 갔는지, 이제라도 유인자라는 분과 양로원측에 사과하고 문제를 덮어야합니다.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에요.” 나는 아들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심정으로 간곡하게 말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버지가 무슨 소릴 하느냐는 얼굴로 나에게 잡힌 손을 거칠게 뽑아냈다. 나는 깜짝 놀라 상체를 뒤로 젖혔다.
“너 지금 아버지를 성추행범으로 보는 거냐? 이 애비가 그런 사람으로밖에 안 보여? 아들아, 유 여사와의 모든 일은 백 프로 합의하에 이루어졌어. 전혀 걱정하지 마. 이 양로원 벗어나 아파트 얻어 살자는 것도 유여사가 먼저 말했다면 믿겠니?” 그 말을 해놓고 아버지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지만 그 말로 인해 나는 정말 아버지의 말을 백 프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좀 전의 아버지처럼 아차, 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버지,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오해를 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제가 좀 더 아버지를 자주 찾아왔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두 분을 위해 속히 아파트를 얻어드려야겠다,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는 게 아니니까 아내의 반대도 없을 거야, 나는 그런 속궁리를 재빨리 하며 아버지의 손을 다시 감싸 쥐었다. 아버지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손을 마주잡았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버지는 멋쩍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 

 

이용우
소설가. LA거주 작가

 

1951년 충북 제천 출생. 
미주 한국일보 소설 입상
미주 한국문인협회 이사
미주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자영업 / L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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