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부활절 방학

2018.04.0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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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부활절 방학

 

부활절 방학을 맞아 앞집 캔디네 손주 들이 할머니네를 방문했다. 고만 고만한 푸른 손주들이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캔디의 사위와 아들들은 어제부터 바비큐 그릴 옆에서 맥주를 들고 내내 담소를 하고 있다. 맘씨 좋은 캔디의 딸들은 화분 갈이가 한창인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하늘은 더 없이 푸르다. 이사 와서 앞마당 움푹 파인 곳이 보기 싫어 심은 수양버들나무는, 봄바람에 휘청 휘청 탄츠테아터 공연을 하는 피나 바우쉬 같다. 어쨌든 집 가까이 심은 수많은 나무들은 우리 집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무 욕심이 많은 남편은 스피노자 광팬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세금 리턴 시즌이 되거나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홈디포로 달려가서 나무들을 사온다. 가끔 코리언 소나무가 나오면 어김없이 사오고, 캐나다 여행 가서 감탄을 한 울창한 캐너디언 소나무는 와이프가 좋아하는 줄 알고 심었다. 그러나 잣이라도 나온다면 모를까, 거친 텍사스 들바람에 소나무들은 잘 자라지 않고, 자라도 홍역을 앓은 아이처럼 제 색깔을 못 내거나 누렇다. 시내 같으면 벌써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을 과실나무들 역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처럼 왜소하다.

그럼에도 몇몇 나무들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꽃을 피웠다. 초등학교때 아이들이 자주 노래 부르던 ‘레드버드’라는 나무는 퍼플옷을 입었고, 스터디 룸 앞 작은 관상수도 올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우편 주문으로 산 나무인데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당히 자란 그 나무는 터에 알맞은 자태를 지니고 있다. 누워서 세상 걱정 없는 개구리 조각을 몇 년 전부터 그곳에 놔두었다. 이곳은 나의 비밀 정원이다. 주변엔 그늘에서만 잘 자라는 칸나와 릴리 종류를 많이 심어 놓았다. 올해는 커다란 화분에 알라스카 야생화 씨를 뿌려 놓았더니 벌써 싹이 돋아 바람에 흔들거린다. 조금 있으면 봉숭아도 싹이 날 것이고, 분꽃도 잎이 나올 것이다. 이웃에서 얻어온 돗 나물은 그라운드 커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돗나물을 주신 분은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해마다 봄이 되면 돗나물은 어김없이 잠을 깨고 나오는데, 사람은 늙고 병든다.

예전엔 부활절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장을 가거나 여행을 갔었다. 사슴을 볼수 있었던 콜로라도 숲이나 연어 낚시를 할 수 있었던 어느 계곡, 문 닫기 전의 스키장이 그립다. 부활절 방학은 돌아온 세금으로 그동안 쌓인 겨울의 묵은 공기를 툭툭 털어내는 시기였다. 묵은 빨래를 하듯, 겨울이 남긴 찌거기들을 훌훌 털어내고 새봄의 기운을 실컷 만끽하는 때였다. 사춘기 때 읽은 많은 외국 소설엔 부활절 방학이 꼭 등장했다. 헷세나 토마스 만의 소설에선 부활절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하는 학생이나,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어쨌든 우리나라와는 달리 모든 절기가 교회전례력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서양에서 부활절이 갖는 의미는 여러모로 중요하고 뜻깊은 것 같다. 

이렇게 노오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것 같은 봄날, 모처럼 국악공연을 보고 왔다. 두 번째 달라스 국악 대축제였는데, 많은 국악인들이 한국에서 왔다. 경기,남도민요와 판소리 등 전통 국악부터 우리에겐 다소 낯선 신민요와 국악가요란 것도 들었다. 마치 한 마리 학이 움직이는 듯한 학춤도 인상적이었고, 고고하고 단아한 가야금 산조와 소고춤, 대금산조인 허튼가락 소리도 온 달라스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번 우리 국악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느낄수 있는 무대였다. 새해 들어 션윈(SHEN YUN) 이란 중국 예술 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었다. 입장권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공연을 보면서 든 생각은 화려한 의상과 무대만 있을뿐 전통적인 중국의 색채는 별로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마치 서커스를 하듯 반복되는 동작과 신파극 같은 뮤지컬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라스베가스 쇼처럼 미국사람들 입맛에 맞게 맞추어진 무대라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출연진은 중국에서 왔지만 제작은 뉴욕에서 한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 국악 공연은 소박하지만 우리만의 멋과 흥취가 살아있는 무대였다. 소리꾼이라기보다 사회자로 온 듯한 박애리는 관객들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려 출연진이 나올때마다’얼씨구’를 반복했고 관객들은 ‘좋다’로 화답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흥겨운 가락이 울려 퍼질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관객을 무대로 부른 사물놀이 공연은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게 만들었다. 즉흥성과 현장성이라는 민족음악의 본질적 속성이 무대를 통하여 그대로 드러났다.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부활절 방학> 같은 무대였다. 요즘 나는 국악에 빠져 명창 김소희님의 ‘운담풍경’ 이나 ‘구음’을 하루종일 듣고 있다. 언젠가 전통적인 판소리 다섯마당을 이곳 달라스에서 모두 듣게 될 날을 고대해 본다.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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