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봄꽃.jpg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꽃 천지, 눈부신 사월에

꽃잎이 채 열리기 전의 붉은 장미 꽃봉오리! 바쁜 아침시간에 발목을 잡는다. 아침의 5분이 하루 중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한동안 시선을 뺏은 그 신비한 아름다움! 깨닫지 못했던 숨겨진 장미의 매력이 바로 이것인가보다. 초록 받침에 빨간 주둥이의 어린 봉오리는 꼬마전구처럼 귀엽다. 그 바로 옆 붉은 봉오리 위에 한마디 길이의 길고 노리끼리한 것이 붙어있었다. 벌레인가? 순간 멈칫했다가 보니 레드옥트리에서 떨어진 꽃이었다. 겨우내 알몸으로 지낸 가지가 싹을 내서 키운 꽃이 열매없이 지는 것도 애처러운데, 벌레로 착각하다니 미안했다. .
난디나의 꽃대는 포도꽃가지 같은 여린 줄기 끝에 성냥보다 작은 꽃망울들이 달렸다. 그 작은 꽃이 피고지면 초록열매가 계절 따라 자라고 태양처럼 익는다. 철새들이 남겨둔 지난해의 붉은 열매. 맑고 싱싱함은 없지만 고고한 자태가 여린 순에게 어른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을에 씩씩하게 올라와 추운 겨울을 보낸 길고 좁은 잎의 석산(꽃무릇)이 누울 준비하는걸 보니 올 추석 전후해서는 제대로 꽃을 피울 모양이다. 
삭막한 겨울을 지나느라 쓸쓸했을 태양에게 여기저기서 깍꿍! 깍꿍! 하며 두터운 껍질들을 제치고 나오는 푸른 생명들. 대지가 준비해둔 수천의 빛 고운 물을 먹고 각각의 꽃들이 뽐내는 예쁜 색에 박하 향을 맡듯 마음이 환해진다. 
이슬을 머금었다가 아침마다 향기를 건네주던 히아신스는 꽃을 보낸 잎들이 튼실하게 내년을 예비하고 있다. 해마다 심어도 한해 넘기면 흔적도 없는 튤립 알뿌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라고 밀어내지도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지도 않으며 자연에 따라서 계절대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정하다. 떠나야할 때 떠나지 못한 칙칙한 묵은 잎들이 안타깝지만 그들이 있기에 더욱 눈부신 봄이다. 

 

포트워스에 있는 교회로 예배를 다녀오던 주일. 길 좌우에 들꽃들이 서로를 재촉하며 봄길 단장을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보아도 무더기로 피기 시작하는 블루보넷과 섞여서 살짝살짝 고개를 드는 핑크 이브닝 프림로즈(pink evening primrose)가 반갑다. 자주색의 와인 컵(Wine Cup)과 노란 잎에 꽃술부분이 붉은 자주색인 인디안 담요(indianblanket, firewheel)와 인디안 페인트브러시(Indian Paintbrush)가 함께 피면 야생들꽃이 만든 천연 꽃 카펫이 끝없이 펼쳐져 꽃 천지가 된다. 식스플랙 근처, 시다힐 주립공원, 알링턴 지역의 30번, 360번 고속도로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텍사스의 ‘공식 블루보넷 도시(Official Bluebonnet City)’를 자청하는 에니스(Ennis)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블루보넷의 축제(Ennis Bluebonnet Trails Festival)가 열린다. 손님이 45번 고속도로로 45분운전해 그곳에서 하루를 잘 즐기고 왔노라고 사진을 보내주었다. 

 

자매들 톡방에 올렸더니 “온 세상이 예쁜 꽃으로 뒤덮였네요. 텍사스도, 서울도, 부천도”하면서 동생이 “진달래 바다”사진을 보내왔다. 키를 넘는 진달래와 구름을 가지에 건 듯 한 벚꽃 사진들도 함께. 부천 살면서도 10년 만에 다녀왔다는 막내의 사진엔 부천의 도당산 벚꽃 축제와 원미산 진달래 축제, 그리고 봄꽃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서오릉에 진달래 개나리가 있나 해서 갔다가 꽃들이 시원치가 않았는데 할미꽃을 만나서 반가워 한 컷 찰칵! 솜씨 좋은 큰언니. 그런데 힘겹게 몸살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단다. 
이도 저도 못한 다른 동생은 샌프란시스코의 손자가 분홍 꽃나무 앞에서 꽃보다 환하고 예쁘게 웃는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는 “나한테는 인(人)꽃 밖에 없어요. 외할머니가 아무리 예뻐도 인(人)꽃 만큼 예쁜 게 없다고 하셨지요.” 우리 자매들에게 외할머니는 늘 따듯한 등불로 계신다. 태평양 건넌 고국의 봄을 코앞에서 만끽했다. 참 좋은 세상에 산다 싶어 가슴이 뭉클하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지만 그 모든 것 위에 사람을 만드신 후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좋았더라(창 1:31)”고 하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얼마나 큰 복인지! *

 

‘4월의 시’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이해인님의 ‘4월의 시’ 일부)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