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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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50)

 

“두 언니와 울릉도를 가다 -1”(독도 전망대)

 

 

오늘은 울릉도 마지막 날. 도동항에서 “바로 조오기 있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를 보러 가자고 ‘칠십이 훨씬 넘은, 자칭 칠학년’ 왕언니와 큰언니를 살살 꼬드겼다. 나는 사실 그 옆의 독도박물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작년에 DFW 한국학교협의회가 “2016 독도 미술대회 및 백일장”을 개최했고 그 백일장에서 심사를 했기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이삼십 분 거리밖에 안 된다는 콘크리트길은 신의 앞부리에 하이힐을 붙인 듯 가파르다. 쉬엄쉬엄 올라가도 허위허위 따르던 큰언니가 향나무선물가게 평상에 앉더니 손사래를 치며 포기하겠단다. 허리수술 두 번과 무릎 다친 큰언니에게 왕언니가 “조오기라고 했으니 거의 다 왔을 거야.”라고 하자 이를 앙다물고 다시 지팡이 짚은 손에 힘을 모은다. 
겨우 도착하니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내려서도 이어지는 나무계단. 잘 짜놓은 계단의 손잡이를 잡으며 도를 닦듯 오른다. 하나, 둘, 열, 스물, 백 개쯤 오르니 연분홍 산벛꽃과 가지마다 다소곳한 동백꽃들. 가지사이로 푸른 섬을 보듬으며 자기들을 보라한다. 걸음을 멈추고 숨 고르며 “예쁘네, 곱구나, 반가워!”하며 둘러보니 찬송이 절로 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드디어 망향봉의 정상. 독도 전망대! 하늘이 바다를 불러 올린건지 바다가 하늘을 비춘건지. 옅게 깔린 해무가 아물거려 독도를 볼 수가 없다. <독도방향- 독도까지 거리 87.4Km>  날씨가 맑아 기대했는데 아쉽고 큰언니께 미안했다. 그래도 샛노란 표지판 앞에서 찰칵, 인증 샷 ! 

독도는 내일 간다했으니 직접 가서 보리라고 마음달래며 내려오는 길에 독도박물관에 들러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관리인에게 박물관을 이리 높은 곳에 지어놓으면 연세든 분들은 어떻게 올 수 있느냐고 했더니 섬이라서 박물관부지선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이제 하산길이다. 토끼를 산 아래로 몰면 쉽게 잡는다고 했던가. 오르던 길보다 더 힘들어 하는 큰언니. 쌕쌕이처럼 앞서가는 왕언니를 불러 세우는데 박물관 주차장에 군인이 보였다.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다가 그들의 하얀 봉고차(군인차?)를 얻어 타게 됐다. 고마운 마음에 서울서 가져갔던 먹음직한 사과 두 개를 주었는데 안 받겠다는 그들에게 억지로 안겼더니 사과향처럼 달콤하고 환하게 웃는 젊은 얼굴에서 모국의 미래가 보였다. 
 
 키미테를 붙이고도 강릉서 울릉도까지 세 시간 넘는 뱃길에 “검은 마스크(뱃멀미를 담던 검은 지퍼백)”를 몇 개씩 갈아 쓰며 고생했던 속을 달래느라 먹은 홍합죽. 생고구마 먹듯 아삭아삭한 식감의 울릉도산 더덕전과 시원한 호박식혜. 숙취제거 해장국인 오징어 내장탕, 고소한 전복죽과 한정식의 전호, 부지깽이, 방풍, 명이등의 나물도 먹어 보았으니 이번에는 따개비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주인이 보여주는 삿갓조개 껍질은 모시조개만큼 컸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폰을 찾다가 앗불싸! 전화기가 없다. 사과주다가 군인들 차에 빠진 게 분명했다. 큰언니 핸폰으로 내 폰에 전화를 하려는데 번호를 모르겠다. 숫자 기억에는 꽝이라 한국서 쓰는 임시전화번호를 적고는 그 메모지를 폰케이스에 꽂은 실수를 한 거였다. 큰언니한테 폰에서 통화기록을 찾아보라한 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파출소로 뛰었다.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소장님께 그들의 귀대 전에 찾아야 한다며 여차저차 설명하니 나리분지의 공군부대로, 여기저기로 전화 하신다. 숫자에는 짱인 큰언니도 당황하다보니 번호를 못 찾아 진땀을 빼다가 겨우 찾아 전화했더니 마침 받더라고 했다. 차는 이미 저동까지 갔는데 다시 돌아오는 중이고 곧 도착한다니 더 고마웠다. 나중에 감사카드라도 보내려고 이름과 주소를 받아보니 공군부대 소속이었다. 섬이라서 해군이나 해병인줄만 알던 무식쟁이가 공군부대로 전화한 소장님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찾은 전화기로 제일 먼저 찍은 것이 오토바이 두 대가 든든하게 서있는 해양경찰서 도동출장소 건물이었다.

 임시 폰이라지만 번호도 못 외우고 차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해서 도와주느라고 수고한 군인들을 애꿎게 고생시키고 해양경찰서에까지 뛰어 든 멍청한 행동이 부끄러워 가족에게도 말을 못했다. 혹시나 그 젊은이들이 “복무 이탈 죄나 뭐 그런거로” 벌 받았을까봐 걱정스런 마음이었는데 달라스지역 신문에서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 4월 24일 울릉군과 그랜프레리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울릉군 최수일군수와 정성환의장에게 감사패를 전한 달라스한인회장, 또 달라스시장의 명예 달라스 시민증 수여 등이 친족의 일처럼 가깝게 느낀 이유가 뭘까? 돕는라고 애썼던 군인들의 해맑은 얼굴과 믿음직하고 편하던 소장님 때문이리라. 이제 빨리 감사카드를 쓰고 지역신문 기사와 함께 울릉도로 보내야겠다. 행복함으로 마음이 바빠진다.

 

김정숙 사모<시인, 달라스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