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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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10도 경사에서 멈췄던 이민자의 꿈

 

 

 

 ‘따닥, 따다닥~’ 난리 났습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를 공사가 보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아니고 옆집 소음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긴 처음입니다. 일요일 마저 쉬지 않고 따발총처럼 못을 박아대니 시끄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옆집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 새로 집을 사서 들어오는 사람이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하나 봅니다. 아침에 출근하려면 공사 차량 대여섯대가 우리 앞마당을 막고 정차되어 있어 돌아 나와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은 너무 조용해서 누가 이사 오고 나가는지 통 모르고 살았는데 갑자기 전에 없던 상황이 되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저 빨리 공사가 끝나길 바랄 뿐이지요. 옆집 때문에 얼굴이 시뻘겋게 열이 올라 식식거리고 있으니 남편이 생일 선물을 사러 가자고 조릅니다. 집에 있어 봐야 저 소리에 성질만 나빠질 거 같아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공부하느라 지친 큰애도 동행했습니다. 큰애도 옆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얼굴에 뭐가 자꾸 난다며 잔소리가 늘어가던 참이었지요.

 생일 선물을 사주겠다는 남편이 던져 놓은 미끼를 물고 큰아이와 함께 낚싯줄에 낚인 채 짐짝처럼 실려 가는 중이었습니다. 주일날 아침, 그것도 꼭두새벽부터 못질이라니 차라리 남편이 던져 놓은 미끼를 무는 것이 낫지 싶었습니다. 브런치에 선물까지 준다니 무슨 계획이냐 어디 가느냐 묻지도 않고 따라나섰습니다. 달리는 차 창으로 보니 낯익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곳입니다. 한때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지만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 반대편에 삶의 잡동사니를 풀고 산 지도 어느덧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곳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곳이지요.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얼빙에서 리처드슨으로 이사를 하고 있었지요. 그때는 이것저것 재며 오래 생각할 만큼 여유가 없었습니다. 세탁일을 해보기는커녕 일하는 것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덜커덩 픽업 스테이션을 하기로 정하고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큰 짐은 깡통 밴에 실려 보내고 남은 식탁 의자 몇 개를 뒷좌석에 싣고 남편은 앞서고 나는 두 살배기 큰아이를 태우고 뒤를 따르고 있었지요. I-635를 타고 동쪽으로 올라가다가 COIT길에서 내리더니 그만 앞서가던 남편의 차가 길 위에서 퍼지고 말았습니다. 17년을 쉬지 않고 달리느라 가끔 헐떡거리기는 했어도 달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필 그날, 그것도 언덕이라고 겨우 10도 경사에 의리 없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주유소가 바로 앞에 있었으니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주유소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는 그쪽으로 밀어 놓고 이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으니 오죽했겠습니까. 10도 경사는 그날 밤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요. 자다가 물 먹으러 부엌의 불을 켜는 순간 나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지요. 깨알만 한 바퀴벌레 점령군이 부엌에 진을 치고 있어 물러설 수 없는 결투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싸늘해집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25년 전 10도의 경사에 무릎을 꿇었던 한 많은 지점이 보이는 인 엔드 아웃(IN N OUT)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그때를 회상하였지요. 그때보다는 모든 것이 넘치고 넘치는데 마음 한쪽은 늘 비어있는 듯합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겨우 10도 경사에도 쩔쩔매고 있습니다. 옆집의 못질 소리도 며칠이 지나면 해결될 일인데, 그까짓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이 픽업스테이션이었지 생활을 해결해 줄 수 없었던 터라 샘플을 받아다 밤낮없이 일해 생계를 꾸려야 했지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전쟁이었지요. ‘희망’도 ‘아메리칸 드림’도 사치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만 있고 내일은 보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오늘뿐이었던 그 시간을 꺼내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요. 요즘 늦공부를 하느라 지친 큰애를 위한 남편의 배려이었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 그 시절보다는 낫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행적을 돌아보기로 하였지요. 처음 시작했던 가게 자리에는 네일샾이 들어와 성업 중이고 옆에 도넛 가게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게 뒷문 앞에 세워놨다 잃어버린 세발자전거는 큰아이의 기억을 오늘도 더듬거리게 합니다. 바퀴벌레 점령군에게 기절 당했던 아파트는 몇 가정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을까요. 문 옆에 예쁜 화분이 놓여 있는 걸 보니 낯익은 느낌입니다. 옆집에 살다 한국으로 돌아간 영섭이네는 잘 지내고 있겠지요. 추억의 장소에는 잊고 있었던 사람들이 다가와 툭툭 어깨를 치며 인사를 합니다. 스친 자리마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있고 목소리가 맴돕니다.
 오늘의 낚시터인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Cottonwood Art Festival은 매년 봄과 가을에 Cottonwood Park에서 열립니다. 전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아주 유명한 축제이지요. 생일 선물로 판화 한 점과 귀걸이를 사주었던 오래된 기억이 남편을 이곳으로 인도했나 봅니다. 정성 들여 세운 무대 위에서는 컨츄리 가수가 기타를 메고 긴 치마자락을 날리며 노래를 합니다. 흥에 겨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사한 얼굴로 하루를 넘기고 있습니다. 인공호수의 초록 이끼들은 둥둥 떠다니는 구름 화첩을 넘기느라 여념이 없고, 보라색 꽃 속에 묻혀 몇 송이 피워올린 양귀비꽃도 정오의 햇살을 넘기고 있습니다. 수없이 셔터를 눌러 버리고 버리면서 건져 올린 사진 작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사진 속의 꽃들도 열매를 맺기 위해 수많은 오늘의 낱장을 넘겨 이곳까지 왔겠지요. 10도 경사를 잊고 일력日歷을 넘기기에 아주 좋은 날입니다.

 

 

 

뜯기면서 웃는 것이 있다
어둠을 넘기는 순간이어서만 아니다
한 발짝 다가와 기다리는 그 무엇을 위해
비워야 하는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실로 촘촘히 박아두고 싶은 날은 아쉬웠다
서슬 진 면도날이 필요한 날은 안타까웠다
병풍처럼 둘러선 포도밭은
입술을 적시는 붉은 포도주 한 잔을 위해
그 많은 아쉽고 안타까운 가슴들을
그냥 넘기며 예까지 왔다

하루하루 지상을 넘기는 하늘 아래
계절이 스스로 계절을 넘기는 틈에서
다가온 그 무엇을 위해
나를 비운 일이 있었던가 
 
그늘이 부처처럼 웃으며 바람을 넘기듯
꽃은 꽃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몇 장의 햇볕을 차례로 넘기고 있다

 

김미희, (일력日歷)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