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엄마의 ‘마지막’ 장아찌

 

남편이 들고 온 조그만 병에는 깻잎 장아찌가 들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담그신 거네. 어디서 났어?” 작년 이른 봄 파종을 하기 위해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시다 쓰러지셨으니 재작년에 담가주신 장아찌가 분명합니다. 차고에 있는 냉장고 맨 뒤쪽에 있었으니 살림에 젬병인 내 눈에 띌 일은 없었지요. 뚜껑을 열어보니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찾아 갈 때마다 “왔어?”하며 맞아주던 엄마의 하얀 미소, 미안함인지 쓸쓸함인지가 섞여 있던 그 미소가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재작년 가을 우리 집에 마지막으로 다녀가시면서 담가놓으신 건가 봅니다.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엄마의 정성이 쌓여 있었습니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엄마의 맛. 아까워 먹을 수가 없어 윗부분을 걷어내고 잘 다독여 다시 넣어두었습니다.

 고추장은 작년 가을부터 마트에서 사다 먹고 있으니 남은 거라고는 깻잎 장아찌와 바닥이 다 보이는 된장 조금뿐입니다. 매년 가을이면 고추장 담글 걸이를 사 들고 오셔서 일 년 내내 먹을 것을 담가 주시곤 했습니다. 엄마 보내드리고 얼마 후, 엄마가 쑤어 놓은 메주를 큰 오빠가 마무리해서 들고 와 “이게 마지막 엄마 된장이다.”했지요. 그때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이 아팠던지 오빠 보내고 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아, 이제 정말 안 오시는구나!” “다시는 볼 수 없구나!” 엄마 돌아가신 그날보다 더 섧게 울었습니다. 종일 일 하면서 쏟아지는 눈물 땜에 여러 손님도 눈물 쏟게 했지요. 이날까지 엄마가 담가주신 고추장 된장을 먹고 살았는데, 하나 둘 마지막이 되어갑니다. 평생 내 옆에서 된장 고추장 담가 주실 줄 알았습니다. 속상한 얘기 다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비 오는 오후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아직도 가슴이 뜁니다. “밥 먹었어?” 하실 것만 같아서지요. 낡은 우산 펴서 받쳐주시던 그 말이 생각나서지요. 싸주신 도시락도 못 먹고 그냥 들고 들어서면 “너는 먹는 것에 신경 좀 써라.” 벌컥 화내시던 모습이 대충 넘기려던 때를 찾아 먹게 합니다. 

 엄마의 마지막 말은 “내가 왜 이런다니? 내가 무슨 죄를 져서 이런다니?”였지요. 쓰러지셨다는 큰 오빠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내게 물은 말씀입니다. 엄마 잘못도 죄도 아니고 그냥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금방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안심시킬 수 있는 말들을 나는 주절거렸지요. 그 뒤 간단한 질문에 답을 했을 뿐, 엄마에게서는 아무 말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잘 있으라는 마지막 인사도. 자식들의 심복처럼 살다간 엄마는 내 마지막 인사를 들었을까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다고. 예쁘게 낳아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좋은데 계신 아버지 만나 못다 한 사랑 나누라고.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잘 살겠노라고. 이제 걱정은 놓으시라고.

 ‘마지막’이라는 말보다 슬픈 말은 없습니다. 아픈 말이 없습니다. 가슴 무너지는 말이 없습니다. 손길과 발길이 끊어져 길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별이란 별이 다 사라진 캄캄한 밤이지요. 부재 있던 것을 없는 것으로 해야 하는 것. 있는 것인데 없다고 억지로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다시는’이라는 말처럼 무섭게 마음의 철문을 닫아거는 단도리도 있지요. 연기 한 번 들지 않은 구들장 같은 내침도 있지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하고 반성과 참회로 벌거벗게 하지요. 뒤늦은 자책으로 외롭고 적막하게 하지요. 가슴에 피웠던 꽃이 일시에 지는 것이지요. 떨어진 꽃잎 같은 부질없음만 남지요. 순간순간 다가와 가슴을 도려가지요. 밤하늘 올려다볼 때가 많아지지요. 

 

어머니 가시고
백목련에 기대 울다 잠이 들었네
 
그날처럼
봄볕 기울던 텃밭에 앉아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이
호미질만 하시더니
꽁꽁 언 내 가슴팍 어루만지듯
여기저기 펜촉 세워 빼꼼히
적어 놓고 가신 편지 한 장
 
삐뚤빼뚤 글자마다
받침은 죄다 눈물에 녹아버렸고

어머니가 다 쓰지 못한 말들이
저리 환한 것을

 

-졸시,봄 소묘素描2-

 

잠을 설쳤습니다. 이것저것 꿈도 여럿 꾸었나 봅니다. 엄마도 만난 거 같고. 어머니 날이, 내 생일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봅니다. 밤새 모래밭을 헤맨 모양입니다. 눈이 서걱거립니다. 파꽃 달래꽃이 피었습니다. 못 본 사이에 상추며 들깨가 텃밭을 꽉 채웠습니다. 엄마 가시고 작년부터는 씨앗은커녕 거름도 안 했는데 올해도 거르지 않고 계절처럼 찾아왔습니다. 아마 십 오 년은 되었을 겁니다. 엄마와 함께 범준이네 놀러 갔을 때 그 집 텃밭에서 얻어다 심은 것이지요. 그걸 얻어다 심어 놓고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낮이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텃밭은 엄마의 유일한 친구였지요. 눈만 뜨면 음식 찌꺼기 들고 나가 옆에 묻어 주며 보살피고 도란도란 얘기하고. 놀이터였으니 요즘도 가끔 들러 놀다 가시는 모양입니다. 빼꼼하게 바닥을 채운 것들이 윤기 흐르는 걸 보면 쇠비름 같은 핏줄 따뜻한 손길이 닿았던 것이지요. 상추는 너무 연해서 좀 더 두었다가 모종을 해야겠습니다. 깨는 듬성듬성 몇 가닥씩만 남기고 뽑아냅니다. 뽑아낸 것은 순을 잘라 깻잎 김치를 담가야겠습니다. 엄마의 맛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지 한 번 해보렵니다. 제대로 맛이 나면 어머니 날에 술안주로 들고 엄마한테 찾아가야겠습니다.  *

 

장아찌.jpg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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