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달라스의 토종한국인

2018.05.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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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달라스의 토종한국인달라스의 토종한국인

 

오랜만에 나온 뒷마당은 계절의 축복으로 가득 차 있다. 꽃 진 자리에 고추가 자라고 자두와 복숭아, 감도 제법 풍성하게 달렸다. 석류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떨어진 빨간 꽃 위에 앉은 하얀 진돗개 진순과 포도나무 밑에 턱 고이고 있는 백구 진돌. 모종화분에 심은 고추씨까지 제법 자라서 살랑 바람에 으스대며 밭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씨앗인 호박, 오이, 노란 참외도 진초록 잎으로 튼실하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달라스카운티 이곳저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사시는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모종을 얻어다 심기도 했다. 선배 이민자들, 토종한국인에게 배운 지혜와 달라스 농사 경력10년의 노하우도 있겠지만 서늘해진 봄 날씨와 여러 번의 비도 한몫을 했다. 복숭아나무에 두 가정의 새들이 각각 작은 둥지를 틀었다. 왠지 올해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뒷마당에 갔던 남편이 부추, 여린 파, 깻잎을 뜯어 왔다. 작년에 냉동실에 두었던 매운 고추를 섞어서 전을 부쳤다. 아침부터 웬 고소한 냄새냐며 출장에서 온 아들이 부엌에 오더니 부추 부침은 싫다며 먹다 남은 김치찌개를 렌지에 데우는데 아버지가 거든다.
-겨울 지난 부추니까 몸에 좋지, 보약이야. 좀 먹어봐 
-몸에 좋은 거 아버지나 많이 드세요 
“100세의 법칙”이 카톡방을 휩쓸던 때가 있었다. “9988234는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너무 지나치다 싶지만 몇 번이나 건강의 바닥을 친 남편은 몸에 좋다면 무엇이나 잘 먹는다. 언제 갈지 모르지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다가 친정 할머니처럼 자다가 주님께 가자는 게 우리 부부의 기도다.  
   
 아침부터 부침을 먹더니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남편. 믹스커피 사다 논 것도 원두를 갈아 논 것도 떨어졌다. 도미니카산 커피 빈에 카페베네에서 사 두었던 훌레이버를 조금 넣고 갈았다. ‘타다다 다다닥’ 경쾌한 소리도 잠시 이내 보드랍게 갈아지며 퍼지는 커피 향!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한국서 천막으로 개척할 때는 부엉이 골 같은 오지였는데 대학이 들어오고 전철이 개통되니 건물도 세워졌다. 건물에 세를 얻어 한쪽은 예배당으로, 뒤편은 부엌과 방을 옷장으로 막아놓고 살던 때니 동생들의 삶과는 딴 세상이었다. 교인들 생활에 비해 중하로 살겠다고 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그런데 여동생 집에 가니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머신에 내려 후레시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주었다. WHO가 스폰서여서 외국도 다녀온 멋쟁이? 언닌데 교회하느라고 고생한다며 당시에는 귀했던 커피 빈으로 특별 대접을 한 거였다. 이미 다방커피(프림과 설탕을 넉넉히 넣은)에 익숙해진 입맛인데 이게 무슨 맛인지? 원두? 커피콩을 가는 기계? 모두 낯설었다. 당시에는 슬며시 주눅이 들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미국에 살다보니 빈부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데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원두커피 분쇄기와 커피머신을 월마트에서 40불쯤 주고 사서 몇 년째 ‘커피귀족’이 된 기분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믹스커피를 일하는 살롱에서 마시기도 한다. 당당하게? 가루를 타서 마시다보면 “우웩~ 어떻게 인스탄트커피를 마셔! 노! 노!” 하는 이가 있는 반면, 아주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베일러에서 강의하시는 의사가 궁금해 하시기에 몇 봉 드렸고 또 변호사인 남편이 김치를 좋아한다고 해서 갖다드렸다. “김치를 햄버거나 쎄무치(샌드위치)에 넣어 먹으며 맵고 맛있데요. 내가 배워서 담글까봐요. 커피도 부드럽고 맛있어요, 무슨 커피죠?” 
백인도 여러 종류다. 아시안이라고 기죽을 것 없다. 이십여 년 전 어느 집에 갔더니 딸들 때문에 김치는 차고 냉장고에 따로 둔다고 했다. 또 아침엔 부모들도 절대로 한식을 못 먹는단다. 방문까지 꼭꼭 닫아도 냄새난다고 불평하던 애들이 생각났다.

2017년은 달라스 이민역사 50년이었다. 우리 음식과 문화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식과 이웃들의 눈치보며 사셨을 분들. 잔디밭 한 귀퉁이에 들깻잎, 고추, 부추 미나리 등의 야채를 키우면서 한국인으로 사신 분들. 5월 가정의 달에 고마움을 전한다. 한국가정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달라스의 큰 뿌리가 되신 이민 선배들! 달라스의 토종한국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9-12절)(시 90:3, 4)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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