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파리(Paris)의 화장실

2018.05.18 08:38

yeon 조회 수: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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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파리(Paris)의 
화장실

 

여행 세째 날, 파리의 개선문 앞에도 수많은 인파가 여전히 북적거렸다. 어제 본 프랑스의 자랑,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 다녔다. 어딜 가나 찬란했던 서구 문명의 흔적들을 보기위해 몰려든 동양 사람들로 넘쳐났다. 계 탄 것처럼 잔뜩 멋을 부렸지만 촌스럽기 그지없는 중국 관광객들이나, 여행 중에도 치렁치렁한 사리를 입고 다니며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주변사람들을 얼마나 짜증나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인도 아줌마 들이나, 그들 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서구열병에서 못 벗어난 한국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도대체 거만하기 이를데 없는 태도로 관광객들에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유럽을 동양인들은 왜 이렇게 열광하면서 돈을 뿌리고 다니는지, 나 자신에게 조차 슬그머니 화가 나려했다.
특히 파리시내의 화장실 시설은 파리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동시에, 여행의 질을 낮추었으며 사람이 살기에 아주 불편한 도시라는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에펠탑 주변이나 샹송이 절로 흘러나올 것 같은 세느강 주변이나 하루에도 수 만의 관광 인파가 몰려다니는 곳, 어딜 가나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해보였다. 국보급 명화나 보물을 보존 한답시고 에어컨도 없는 루브르박물관이나 루이 14세의 빛나는 업적이 돋보이는 베르사이유궁전을 돌아다니다보면 여지없이 목이 마르고 화장실을 찾게 되는데, 겨우 찾아간 화장실은 줄이 언제나 몇 미터는 넘게 서 있었다. 그 와중에 인도 아줌마들은 새치기를 하고 가이드는 빨리 모이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렸다. 서유럽여행을 미리 다녀온 선배들은 근사한 유럽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늘어놓았지 유럽의 화장실 시설이 얼마나 전 근대적인지, 유럽사람들이 얼마나 불친절한지에 대해선 별로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실망도 더 컸다. 아무리 근사한 볼거리가 넘쳐흘러도 금강산도 식후경인 것처럼 기본적인 것이 쉽게 해결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날 가이드는 개선문 앞에서 30분의 여유시간을 주었다. 공화정시대와 나폴레옹이 전쟁에 참가한 128건의 전투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는 개선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샤핑도 하라고 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난 노틀담 성당에서부터 뇨의를 참았던 지라 화장실이 있을만한 카페부터 찾았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노천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웨이터는 주문부터 하라고 재촉을 했다. 우리처럼 화장실을 찾는 동양인 관광객들을 많이 접한 탓인지 공짜로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줄 마음은 애초부터 없어 보였다. 할 수없이 한 잔에 9유로나 하는 에스프레소 두 잔을 시키고 났는데, 우리 버스 일행 중 연로하신 네 분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웨이터는 처음엔 화장실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나중엔 커피를 사람 수대로 주문하라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 두 분만 오더를 하고 할아버지 두 분은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야박한 화장실 인심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버스를 타신 분들은 거의가 다 미국에서 온 교포 관광객들이었는데, 모두들 좁고 냄새나는, 게다가 돈까지 지불해야 하는 유럽의 유료화장실 문화에 대하여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해 안절부절 했다.
17세기에 완공한 베르사이유 궁전도 애초에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물을 베란다에서 밖으로 버리거나,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이 볼일을 밖에서 해결했기에 향수와 하이힐이 발달 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 사치와 향락의 결정체, 궁전 내부를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유럽사람들은 미국을 미개한 나라라고 여겼지만, 우리 동네 공원에서 보존하고 있는 서부시대 통나무집을 보면 그 시절에도 화장실은 이미 수세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파리는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좀 더 제공하고, 집시나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덜 부린다면 한 번쯤은 더 가보고 싶은 도시이다. 왜냐면 몇 백만불짜리 모나리자의 미소나 비너스, 니케의 조각상,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 등은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바스티유 광장을 가면 마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나 코제트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만 같고, 주교좌 성당을 뜻하는 노틀담, 파리에는 곱추 콰지모도와 집시 여인 에스메랄드가 성당 맨 꼭대기 종탑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파리의 노트르담>과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역시 노트르담 성당 부근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작품을 구상했다. 누가 뭐래도 파리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영감과 열정을 불어 넣어주는 예술의 수도인 것이다.
또한 주일날 저녁 세느 강변에 삼삼오오 모여 포도주 한 잔을 놓고 담소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니 아직도 파리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변을 따라 몇 마일은 되어 보이는 강변 주변엔 마네나 모네, 르노와르 그림에나 나올 법한 풍경들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었다. 이 모습들을 보며,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매표소 직원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형태로 지켜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텍사스에서 왔다고 하면 와일드 웨스트를 연상하듯, 유럽이라면 뭐든지 문명화되어있고 선진적일 것이란 상상은 과감하게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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