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텃밭 도난(?) 사건

2018.05.25 09:12

ohmily 조회 수: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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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텃밭 도난(?) 사건

 

밀린 커피를 한꺼번에 마셔서 그런지 새벽 4시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비몽사몽 경계만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나 볼까 하고 틀었는데, 초점이 나간 렌즈처럼 희미하게 들어옵니다. 잠깐잠깐 노루잠이라도 자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못합니다. 5시쯤 되니 밖이 스산합니다. 바람 소리에 빗방울 소리까지 들려옵니다. 빗방울 소리에 취해 시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몇 장 넘기면서 읽어보려 애쓰다 그것마저 덮고 말았습니다. 이 시간에 엉뚱한 감상에 젖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어떻게 해서라도 잠을 좀 자야 하는데 외출 나간 잠이란 놈은 아예 외박까지 하려나 봅니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자리에 들었나 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지만 외면하고 잠 속으로 빠져드는데 그만 짜증 섞인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을 세우고 푹 들어와 놀라 깨었습니다. 엎어진 채로 소리의 진원지는 찾으니 방 안이 아니고 밖이었습니다. 오감 중 귀만 열린 상태로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소화하려니 짜증이 올라옵니다. “왜?” “ 무슨 일인데?” 눈도 못 뜨고 더듬더듬 머리맡에 있는 가짜 눈물을 떨구어 넣고 목소리 대신 눈에 힘을 주었습니다. “나와 봐!” 하는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뒷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이게 왜 이래?” “다  어디 간 거야?” 

 지난주 내내 눈 뜨면 나갔다가 눈 감으러나 집에 들어왔으니 알 턱이 없었지요. 정원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이 사람들 이번에는 일을 제대로 했네!” 하며 내심 기분 좋았습니다. 그런데 보기 좋던 텃밭이 도난당하고 말았습니다. 황당한 사건 앞에 남편은 넋이 나갔는지 말도 못 하고 속을 다 드러낸 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원이 있는 집에 살면서 쓸만한 전지가위 하나 없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가장이란 사람은 휴일이면 카메라만 메고 들로 산으로 풀방구리처럼 돌아다니기 바쁘니 정원이 풀밭이 되는 건 당연한 결과지요. 잔소리도 이젠 지쳐 잔디 관리하는 분들께 정원 정리도 부탁했는데, 그만 사고를 쳐도 제대로 치고 말았습니다. 애지중지하던 그 많은 들깨며 상추, 하얗게 꽃을 피워 끄덕이던 파, 달래가 졸지에 잡풀이 되어 송두리째 뽑히고 말았습니다. 얄궂은 사람들 생각이란 것은 국을 끓여 드신 건지 인정머리도 없지, 푸른 눈망울들이 보이지 않더란 말인가. 나무들이나 정리하지 참말로 생전 안하던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파헤쳐진 텃밭을 보니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뒤뜰에 있는 손바닥만 한 텃밭이지만 보통 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 손금보다 더 친했던 바로 그런 밭이지요. 늘 엄마가 거기 계셨고, 남편의 렌즈가 향했던 보물창고며 식탁을 풍성하게 해줬던 농토였지요. 고추 모종만 마치면 제법 모양새를 갖추는 것인데 이걸 어떡하지요. 깻잎이랑 상추가 자라면 뒤뜰에서 삼겹살 파티라도 하려 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흔적이 뽑혀나간 것 같아 속상합니다. 큰 오빠네로 거처를 옮기시고도 내게 맡겨둘 수가 없어 철마다 들러 종자들 챙기고 보살폈지요. 달래 상추 들깨 시금치 고추, 이것들은 엄마의 흔적입니다. 엄마의 말동무였습니다. 남들 다 다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니 엄마한테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자식들과 손주들 말고는 밥 주고 매일 들여다보고 안부 챙기며 기르는 푸른 것들이 또 다른 식구였지요. 

 처음 이 집으로 이사와 몇 년은 뜰에 야생화가 철마다 올라왔습니다. 가을이면 어릴 적 시골 들녘에서나 보았던 코스모스며 풀꽃들이 피었었지요. 전에 살던 사람의 취향이 철마다 고스란히 올라와 그것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아니 다음에는 뭐가 올라 올지 기다려지기까지 했습니다. 이사 온 이듬해 겨울 초입이었을 겁니다. 좋은 집으로 이사했으니 우아하게 살라는 엄마와 함께 모처럼 시간을 내어 팬지꽃으로 화단을 예쁘게 꾸몄지요. 다음 날 아침 우리 모두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공들여 심어 놓은 꽃을 밤새 몽땅 도난당하고 말았던 거지요. 토끼들의 소행이라 생각하신 엄마는 마음을 바꿔 꽃들을 뽑아내고 밭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라면 꽉 쥐고 계셨으니 실력 발휘를 해야겠다 선언하신 거지요. 화단에 텃밭을 만들고 끼니마다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뜰에 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구어 놓은 텃밭인데 송두리째 도난당하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남겨놓은 종자가 사라진다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타깝고 송구스럽습니다. 텃밭에 앉아 있던 엄마가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하얗게 그리

한참을

고개만 끄덕이게 하던 바람이 가고

 

언제 왔어?

좀 아까요.

왜 암말 않고있었어?

그냥 그렇게

엄마 보는게 좋아서요.

 

-졸시, 파꽃2

 

도난당한 텃밭을 보고 있으려니 파헤쳐져 헤진 내 속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합니다. 졸지에 끌려 나온 지렁이 하나 꾸물꾸물 온몸을 틀어댑니다. 이리 틀어도 저리 틀어도 예전 같지 않은 터전에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들이 떠나간 자리. 붉은 심장이니 믿으라 했던 말들이 파 엎고 간 자리. 올라 오면 잘라 버려야 해서 늘 진물 흐르던 아픈 기억의 자리.

 엄마의 뜻인 것 같습니다. 저 먹는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게 텃밭은 무리였던 거지요. 맡겨둘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할 줄도 모르는데 신경 쓰며 애쓰지 말고 예쁘게 꽃밭이나 만들라는 말씀인가 봅니다. 떠나간 것들에는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며 살라 하시나 봅니다. 채송화 봉숭아 분꽃 해당화를 심고 가을이 오기 전에는 노란 국화를 심어 예쁜 것들과 함께 예쁘게 사는 것도 좋겠습니다.  *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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