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스위스에 가면

2018.06.01 09:34

ohmily 조회 수: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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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스위스에 가면

 

난 살면서 스위스를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딱히 열렬하게 가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 왜냐면 어린시절부터 각인된 ‘아름다운 스위스’에 대한 그림이나 영화 등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마치 가보지 않아도 가본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소위 데쟈 뷔 현상이 한번 도 실제로 본적이 없는 스위스란 나라에 생긴 것이다. 
“아름다운 베르네, 맑은 시냇물이 흐르네.” 베르네가 어디에 있는 동네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 노래를 어린시절부터 애국가만큼이나 불렀고, 유럽을 다녀온 많은 지인들에게도 스위스에 대한 찬사를 물릴 정도로 들었다. 맑은 공기와 산위에 있는 그림 같은 집, 노후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 영세 중립국으로 전쟁의 위험이 없는 나라 등등 어쨌든 스위스란 나라를 동경할 이유는 다양하고도 넘쳐보였다. 

정말이지 버스가 프랑스를 넘어 스위스로 오니 풍광부터 달라졌다. 어떻게 산이 그렇게 깔끔할 수가 있는지 놀라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에 해당하는, 평지보다 산지가 더 많은 나라인데, 중간 중간에 낡은 집이나 허물어져 가는 외양간등 좀 사람냄새 나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어딜 보나 말끔한 것이 마치 온 나라가 단체로 이발을 한 것 같았다. 알프스 산이 보이는 숙소 가는 길도 어찌나 깔끔한 지 흡사 3디로 보는 풍경 같았다. 그러던 중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산책을 할 때 가까이서 보니 웬만한 집들은 드넓은 근처 목축지를 론 모어로 모두 깍은 흔적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그림 같은 풍경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국토면적은 남한의 오분의 이 정도인 이 나라는 주가 26개주나 되고 주마다 지방자치제가 무척 잘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를 보면 차량 번호판 앞자리 알파벳이 모두 다르다. 세계 최고로 잘 사는 나라이다 보니, 물가는 당연히 비싸고 사람들은 자부심이 넘치다 못해 이제 제발 관광객들은 그만 와주었으면 한단다. 알프스 꼭대기 융프라우에서 파는 컵 신라면 한 개가 9유로나 되고, 메이드 인 스위스는 그야말로 최상의 브랜드여서 시계는 말 할 것도 없고, 손톱깍기 하나도 몇 십불 씩 한다. 그렇게 비싼 시계를 차고 있으면,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사는지 모르겠지만 R 브랜드 매장 안은 그날도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가이드에 말에 의하면 스위스가 수공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스위스 용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명을 담보로 돈 벌러 전쟁에 나가는 남편이나 아들을 위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물건들을 만들어 주다보니 가내 수공업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머물던 튈르리 궁전을 사수하다 전멸한 스위스 용병을 상징한다. 심장이 찔렸음에도 신의를 지킨 충성심 강하고 용감한 스위스 용병은 부국 스위스를 만든 스위스의 정신이자 국가 브랜드 가치이다. 교황님이 머무는 바티칸을 지키는 군대도 스위스용병들이다.

영화 007 촬영지였던 해발 3000미터에 위치한 쉴트호른 전망대에 가기위해 골든 패스를 타고 인터라겐이라는 도시로 갔다. 가이드는 열차를 타고 가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시라고 했는데, 팩키지 투어에서 처음만난 부부들은 수다 삼매경에 빠져 바깥 풍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사이 열차 매점에서 사온 커피와 뉴욕에서 온 센스 있는 주부가 나누어준 코스코 비프저키는 동이 났고, 각자 사는 곳과 여행, 아이들 이야기로 열차가 기착지에 도착한 줄도 모른다. 아직 방학이 아니어서 그런지 주로 은퇴한 분들이 많고, 간혹 홀로족도 더러 섞여있다. 캐나다에서 온 모녀도 있고, 한국에서 아들 보러 왔다가 함께 온 가족도 있다. 그러나 한국여행사 유럽관광 버스 3대와 코스가 같은 다른 여행사 버스 2대가 거의 비슷한 경로로 움직이다 보니, 알프스 꼭대기로 올라가는 대형 케이블안은 마치 설악산 케이블 카 안처럼 한국말만 들렸다.

알프스, 이제 그곳에 가면 귀여운 알프스 소녀도 없고, 땅에 닿는 긴 호른을 불거나 심심하면 요들송을 부는 양치기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일인당 국민소득 10만 불을 벌기위해, 주야로 일을 하는 근면하고 모범적인 스위스 국민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관광 이라면 모를까 비싼 물가 때문에 잠깐이라도 체류할 엄두는 아예 안 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가끔 록키 마운틴 정상에서 스위스를 맛 볼 일이다. 초록빛 넘실대는 텍사스 여름들판도 보는 각도에 따라선 스위스 같다.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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