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닫히지 않는 하루

2018.06.08 09:30

ohmily 조회 수: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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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닫히지 않는 하루

 

처음에는 손이 아팠습니다. 다음에는 손목이 저렸습니다. 그리고는 팔꿈치, 어깨, 얼굴이 달아오르고 급기야는 머리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고 있었습니다. 왼쪽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과 컴퓨터 가방을 어깨에 들쳐멨습니다. 메고 있던 가방들을 땅바닥에 팽개치듯 내려놓았습니다. 새끼손가락만 한 쇠꼬챙이에 열을 받아 족히 십 분을 문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쩌자는 거야!” “왜 움직이질 않는 거야!” 늦게 일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는 중이었습니다. 25년 동안 쓰던 열쇠가 문을 잠그려는 순간 자물통 속에서 부러져 기겁한 적이 몇 달 전의 일이고 보니 또 그런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지라 억지를 부릴 수도 없습니다. 가끔 열쇠가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이토록 옴짝달싹도 안 해 사람을 질리게 하진 않았지요. 이쪽으로 저쪽으로 달래듯 수도 없이 돌려 보아도 닫힐 기미는 없습니다. 사람들한테 이런 노력과 공을 들였다면 닫힌 뒤에도 녹물이 줄줄 새지는 않았겠지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널브러져 식식거립니다. 

 언젠가부터 이 문이 열리고 이 문이 닫혀야 비로소 내 하루가 열렸고 닫혔습니다. 열리지 않아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닫히지 않아서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닫히지 않아서 갇혀있습니다. 열려 있는데 오히려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열려 있어서 갈 수가 없고 열려 있어서 더 못 떠나는 신세입니다. 누가 나를 가두어 놓은 걸까요. 스스로 갇힌 것이지요. 신세 한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굴레에 갇혀, 사랑이라는 어설픈 감정에 속아, 엄마라는 아내라는 가족이라는 친구라는 말에 다리가 뚝 부러져 광대처럼 사는 건 아닐까. 내가 뱉어놓은 말에 약속에 묶여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남이 그어놓은 선에 잣대에 걸려 넘어져 무방비 상태로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모든 관계 속에 빠져 내가 될 수 없는 허울뿐인 내가 아닌지. 잘한다는, 좋다는, 어쩜 말뿐인 말에 애견처럼 꼬랑지 흔들어 대느라 뛰어다니는 걸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시킨 것도 강요당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는 활짝 열린 세상에서 어딘가에 누군가에 갇히기 위해 순간순간 열심을 다합니다. 

 스스로 던져 놓은 올가미에 씐 채 무기력하게 앉아 마음을 추스르며 해결책을 찾지만, 남편을 부르는 일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습니다. 오늘의 마무리는 저 작은 열쇠 구멍에 답이 있을 뿐입니다. 저 시커먼 구멍과 열쇠가 맞아야 집으로 가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구멍 안의 뭔가가 잡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무엇에 심사가 꼬였길래 뭘 하라는 건지 야속합니다. 마음을 수련하라는 것인지 수선하라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구멍 하나, 그걸 해결 못 하고 쩔쩔매는 꼬락서니가 우스워 화가 납니다. 열어줄 때는 멀쩡하던 것이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괘씸합니다. 저 작은 구멍에도 사람처럼 속이라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심사 틀려 꽉 막힌 소갈머리 때문에 숨통이 막힙니다. 

 꽉 막힌 소갈머리야 나의 특허지요. 별거 아닌 일에 고집부리고 떼쓰고 닫아버리고. 나는 얼마큼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사는지 생각해 봅니다.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안전한지 점검을 해야겠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이 전부인가 봅니다. 생각에 따라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사람들. 그들과의 왕래를 위한 열쇠 구멍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겠지요. 열고 닫는 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요. 만남이 중요한 만큼 이별은 더 중요하지요. 어떤 이별을 하느냐에 따라서 추억이 되기도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듯 열렸던 마음을 닫을 때는 줄줄 새어 녹이 슬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강철이라도 녹이 슬면 부식되니까요. 
 
 온갖 잡동사니 생각에 빠져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왜, 박범신의 소설 ‘소금’이 생각날까요. 닫히지 않는 문처럼 활짝 열어젖히고 나 몰라라 훌쩍 떠나고 싶은가 봅니다. 부러진 열쇠라도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어느 날 시우의 아버지는 홀연히 집을 떠납니다. 흔적도 없이 그가 이룩한 그의 세상과 관계에서 사라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 기계처럼 살던 한 집안의 가장 선명우가 선명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명함으로 살아갑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가족을 이루며 새로운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아버지의 가출을 그린 소설이지요. 

 그러나 나는 갑니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갑니다. 나이니까 나라서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안부가 궁금하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그 관계 속으로. 내 심장을 멈출 수도 뛰게도 할 수 있는 이들이 기다리는 곳, 그곳으로요. *
 

자물통 안에서
열쇠가 부러졌네

 

어둠이 우러나는
감고 푸는 시간

 

닫히지 않아서 갇혀 있는
열려서 닫혀 있는
네 안에서 뚝 부러진 나
떨림뿐이네

 

과거쪽으로만 길이 나 있네

 

- 졸시, (갇히다) 전문 -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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