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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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아련한 그 이름, 아버지

 

아침부터 수선을 떱니다. 몇 해 전부터 Father’s day는 가족사진을 찍는 날로 정했지요. 염색을 안 했다는 핑계를 댑니다. 하얗게 올라온 머리를 디밀고 다음 주말로 미루자고 조릅니다. 쇼핑 얘기만 나와도 도망 다니는 남편을 데리고 쇼핑가기로 애들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점심을 먹고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12시가 조금 지났는데 새로 생긴 식당 안은 가족들로 이미 꽉 찼습니다. 우리처럼 조촐한 가족도 있지만, 삼대 혹은 사대로 보이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살아 계시면 우리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떠나셨으니,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은 상상이 안 됩니다. 돌아가실 무렵에 머리는 이미 반백이셨으니 하얀 머리에 삐쩍 마르셨을까. 눈이 자꾸만 옆 테이블로 갑니다. 엄마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어른들만 보면 한 번 더 돌아보게 됩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외식 한 번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열다섯 살 먹도록 응석이나 부렸지 생일 카드며 편지 한 장 올린 적이 없습니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아버지를 원망만 했을 뿐 무심하고 무정한 막내딸이었습니다. 산소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돌아와 아쉬웠던 지난 여름 일이 생각나 가슴이 아려옵니다.

 “할 수 없다. 포기하고 그냥 이곳에서 절을 올리자.” 나는 조카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가지고 간 명태포며 안줏거리를 내려놓고 잔에 술을 따랐습니다. “아버지 오랜만이죠? 막내딸이 왔는데 기억이나 나시나요? 절 받으셔요.” 둘이서 나란히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아버지, 그리운 내 아버지!” 얼마나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인가. 사라진 시골집 마당을 그려보며 산소로 올라기는 산길을 가늠해보지만, 한여름 우거진 수풀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해가 다 저물 것만 같아 할 수 없이 올라가는 길 앞에서 절을 올렸던 것입니다. 고향 집이 사라지지만 않았더라면, 누구라도 그곳에 살고 있었더라면 고향을 찾아갈 때마다 들러보고 쉬어왔겠지요. 그러면 고향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겠지요. 

 마당에 서서 보면 멀리 앞산 중턱에 아버지 산소가 있었지요. 아버지는 얼마나 많이 목을 빼고 기다리고 계실까요. 집도 식구들도 다 사라진 고향에서 이제나저제나 찾아오려나. 길가에 있던 집은 우리 가족이 이민 길에 오르자마자 사차선 도로로 확장되면서 사라졌지요. 빨간 덩굴장미며 마당 가에 있던 살구나무 실뿌리도 아스팔트 밑에서 말라버린 지 오래지요. 도라지꽃 떨어진 자리며 코스모스 길가도 그 길을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걸어오던 그 아이도 필름 속의 한 장면이 되었지요. 막걸리 한 잔에 발개진 얼굴로 빙그레 웃던 아버지의 얼굴도 이젠 그저 아련한 옛날이야기 같습니다. 몸이 아픈 큰 언니와 뒤란에 앉아 도란도란 마늘을 엮던 모습도 흑백 화면 속의 한 장면 같습니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누구들인가?” 어리바리 서성거리는 낯선 두 여자를 보고 산책 나온 어르신 내외가 묻습니다. “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큰오빠 이름을 말하고 그 집 막내라고 했지요. 반갑게 손을 잡으시는 그분들은 육촌 오빠 내외였습니다. 인사하고 나서 보니 옛날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집 땅을 밟지 않고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큰 당숙네 셋째 오빠. 산소 올라가는 길을 찾을 길이 없어서 그냥 길에서 절을 올렸노라 말씀드렸더니 잘했다고 합니다. 여자들 둘이서 올라가는 건 무리라고 합니다. 집에 들러서 차 한잔하자는 통에 이것저것 고향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그때쯤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라야 하지요. 왁자한 아이들 소리와 집마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들려야 하지요. 둘러보니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아이들 소리는 고사하고 굴뚝 연기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몇몇 집들은 단장을 해서 모습이 변하기는 했지만 사라진 집은 우리 집 뿐이었습니다. 초록색 함석지붕의 작은 당숙네도 마당 가 큰 호두나무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호두나무 그늘 밑에서 나와 함께 소꿉놀이하던 눈이 예뻤던 연숙이는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고 나는 여전히 낯선 곳을 헤매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어느새 반백의 머리에 아버지가 되어버린 남편과 미래의 두 아버지를 위해 오늘은 내가 기꺼이 봉사하리라. 세 남자를 태운 차는 묵직하고 씩씩하고 흥겹게 굴러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세 남자의 걸음걸이는 서로 닮았습니다. 지난번 쇼핑 길에 점 찍어 둔 신발들을 챙겨 신겨보기만 반백의 아버지들은 다 같은 가 봅니다. “나는 이런 거 필요 없어.”하며 사양합니다. 억지로 신겨 놓고는 “와! 잘 어울리네.” 하며 추임새를 넣는 아이들과 나의 반협박에 난감해합니다. 엄마가 새 양말이라도 내놓으면 아버지는 한사코 만류하며 기어이 기운 양말을 신고 “새것은 애들이나 신겨.”라고 하셨지요.

 어쩌면 이 땅의 아버지들은 새 양말도 새 신발도 맛있는 식사도 원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무거운 등지게 내려놓고 그저 푹 쉬는 하루면 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을 샤핑몰까지 끌고 다녔으니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요. 억지 춘향으로 웃고 있는 사람에게 입히고 신기고를 거듭했습니다. 반백의 중년 남자를 데리고 하는 인형 놀이는 미안하고 안쓰러웠습니다. 편편한 일상에서 탈출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 아니 수고한 모든 아버지에게 새 옷 새 신을 신겨드리고 싶었나 봅니다. 
 

아버지 무덤가에
고개 숙인 할미꽃 한 송이
장맛비 내리던 날
무너진 논두렁 삽질에 꺾여진 허리 펴며
막걸리 한 사발로 허기진 배 달래고

 

서산에 해 질 무렵
삽자루 등에 지고
서낭당 고개 넘어 집을 향한 
그 발걸음

 

무엇이 그리 급하여
한마디 말도 없이 
멀고 먼 길 떠났나
꽃상여 타고

 

술 취한 차 바퀴에
한 동이 붉은 아픔만 쏟아놓고
올망졸망 자식 놈들 눈에 서려
어찌 눈 감으셨나

 

앞산 중턱에 자리 잡은
둥근 집 한 채
듬성듬성 흰 머리에
조용히 금이빨 내보이며 웃음 짓고

 

막내 딸년 앉아 놀던 무릎이
허전하여 어찌하나
팔베개 베어주며
들려주던 옛이야기는
허공에만 맴돌고

 

아침이면
통학버스 놓칠세라
어김없이 불러주던
아! 그 목소리 그리워

 

저 멀리 논두렁 밭두렁 지나
둥근 집으로 향하는 
이 마음

 

졸시, (아버지)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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