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센서가 달린 휴지통

2018.06.29 08:10

ohmily 조회 수:92

tid003t003343_l.jpg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센서가 달린 휴지통
 

 

난 물건을 살 때 계획을 세워 사전조사나 검증을 철저하게 하거나, 확실한 용도를 생각하며 사는 편이 아니다. 지인 중에는 얼굴에 바르는 크림 하나를 사더라도, 마치 국회의원을 뽑는 것처럼 후보군을 고르고 골라 그 제품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나 가격을 인터넷에서 철저하게 비교를 해보고 사는 과가 더러 있기는 한데, 암튼 나는 그런 과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집에서 요리를 할 때 사용하는 포도오일이 떨어져서 코스코엘 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물론 달랑 오일 하나만 집어오는 법은 결코 없다. 대형매장에 알맞게 제작된 코스코 카트를 밀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신상품도 너무 자주 눈에 뜨이고, 사고 싶은 것이 점점 많아져 매번 즉흥 쇼핑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흔한 예로 친절한 시식코너 할머니가 연어스테이크에 어울리는 소스나 건강에 좋은 비타민 쥬스 같은 것을 권하면, 단박에 사야만 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문제는 구입을 해놓고선 제대로 사용을 하지 않고 냉장고 안에서 한 없이 잠을 재우는 것이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두 가지 오일(포도오일이 없었다), 발화점이 제일 높다는 아보카도 오일과 납작하고 통통한 용기가 인상적인 카놀라 오일을 카트에 담고 매장을 한 바퀴 돌게 되었다. 각종 과일과 마늘도 한 봉지 집고 저녁으로 먹을 오븐구이 닭도 한 마리 넣었다. 그러곤 계산대를 향하여 가는데, 어떤 백인 여자가 스텐레스 휴지통 앞에서 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눈에 띄였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그 휴지통은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 손만 살짝 갖다 대면 저절로 뚜껑이 열리고 닫히는 요술램프 같은 휴지통이었다. 휴지통을 열 때마다 일일이 발판을 발로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제거된 그야말로 인공지능이 살짝 가미된 신상품 인 것이다. 게다가 디자인도 세련되어 보이고 가격도 괜찮아 보였다. 난 손가락만 갖다 대면 뚜껑이 열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애들처럼 수없이 테스트를 해보다 마침내 그 휴지통을 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13갤론짜리이니 부피가 제법 컷다. 그리곤 이사 와서 구입한 오래된 부엌 휴지통을 과감하게 버리려고 밖에 내다 놓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설명서대로 배터리를 6개나 장착했는데도 센서가 작동 하지않았다. 기계치인데다, 온 오프 스위치를 혼돈했나 싶어 스위치를 바꿔가며 여러 번 눌러 보았는데도 센서의 빨간 불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맥서방 남편이 배터리를 새로 넣어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세상에, 손가락 하나로 내말을 들어줄 물건을 모처럼 하나 샀는데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나는 ‘휴지통의 신세계’를 포기하고 재포장을 해서 리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버리려고 내놓은 옛 스텐레스 휴지통을 박박 문질러 닦아 다시 부엌에 들여놓았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그간 쌓인 얼룩을 꼼꼼하게 닦으니 제법 새것처럼 봐줄만 했다. 그러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혼자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센서들 속에서 살고 있다. 화재를 대비한 유독성 가스 센서부터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온도나 습도 센서, 카메라 가 인식하는 이미지 센서나 적외선 센서,음향센서 등등 끝도 없는 센서들이 우리의 오감을 대신해서 위험을 감지해주고 알아서 온도조절을 해주는 등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편리함을 선사해주고 있다. 요즘은 공항에서도 홍채나 지문센서 만으로 입국심사가 가능하고, 현관문에 들어있는 모션센서는 주인의 얼굴만 비쳐도 알아서 문을 열어준다. 구글에서 개발한 솔리(soli) 역시 머지않은 날,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모든 디지털사물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사이의 일은 아직도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어야 상대방의 느낌이나 의중을 파악 할 수 있다. 아무리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그 무궁무진한 생각이나 상상력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으로는 헤어스타일리스트나 아티스트처럼 인간의 감성이 많이 요구되는 직종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요즘처럼 너무 무더워 짜증스러운 날, 가끔 난 사람들 사이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해줄 수 있는 소셜(social) 센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해 곡해를 하거나 잘못 전달되었을 때 빨간 불이 들어오는 센서, 그럴 땐 시원한 수박 한 덩이 사서 서로 나누어 먹으며 손가락 하나로 서로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센서 말이다. 에어컨 온도 센서는 날마다 점검하면서 서로의 마음 센서는 소홀해 지는 여름날, “실험실의 코끼리”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B06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