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궁디’박사

2018.08.10 08:12

ohmily 조회 수: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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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21

 

‘궁디’박사

 

“하이고, 그긋도 모르니껴? 여자들 마흔 넘어스먼 궁디가 딱 들러붙심더. 종 치고 막 내린다 아임니껴.” 
막 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궁디? 귀에 익은 소리다. 돌아보니 오십 중반의 사내 둘이 소주잔을 들어 올리며 어깨가 들썩이도록 쿨렁쿨렁 웃고 있었다.
“오호, 엉덩이가 들러붙는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거 같네요.”
“그런 거 같은 기 아이라 백 프로 그렇심더. 젊은 처녀아들은 궁디가 위로 올라붙으믄서 짝 바라지고 아짐씨들은 아래로 처지믄서 바짝 오므라붙는다 말입니더.수원이 말랐다 이 말임더. 허허허.” 
경상도사투리는 등짝을 보이고 앉은 사내의 목소리이고 대단한 깨우침을 얻은 듯 감탄하는 이는 곱상하게 생긴 앞자리 남자였다. 소주병이 세 개나 늘어선 것으로 보아 사내들이 제법  취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우리 저쪽으로 자리 옮겨요.”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타박을 했다. 나는 얼른 그들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아내를 좇았다. 방금 사내가 한 말이 머리에 뱅뱅 돌아서 새삼스레 바라보니 아내의 엉덩이 역시 아래로 처지고 붙어있었다.
 “징그러워, 사내들 관심은 그것밖에 없나, 동물이야, 동물!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한껏 구석자리를 찾아 앉은 아내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분노를 보였다. 남자들의 거친 입초사에 여성들이 성적 희롱대상이 되었다는 공분에서라기보다 마른 수원으로 편입된 자신의 입지에 더 화가 났음이 분명했다.
“여보, 그만 신경 끄고 즐겁게 한 잔 합시다, 당신 좋아하는 족발이랑 통닭 맛있게 먹고 우버 타고 산타모니카로 이차 갑시다. 자~아 잔을 높이 들고, 해피버스데이 투 유!”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우정 너스레를 떨었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들뜬 기분으로 외출을 했다. 출근길에 똥 밟는다고 괜한 남자들의 객쩍은 농담에 초저녁부터 김빠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내의 쉰다섯 살 생일파티를 망쳐서야 되겠는가. 아내도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선뜻 표정을 바꾸고 땡큐, 하며 잔을 부딪쳤다.
그러나 나는 일신한 기분으로 아내와 음식을 나누면서도 사내들 쪽에 신경이 쓰였다. 사내들과 가장 먼 자리를 택했다지만 손바닥만 한 식당 어디에서도 조금만 귀를 기우리면 술 취한 사내들의 조심성 없는 음성은 쉽게 들려 왔다. 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듣기보다 그 특이한 경상도사투리로 인해 낚여 올라온 학창시절의 생생한 기억을 더듬느라 사내들 쪽에 뻗친 안테나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경북 안동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 특이한 사투리 억양 때문에 단박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변동구라는 이름의 그 학생은 선생님과 말할 때면 ‘그랬니껴, 저랬니껴’하는 낯선 사투리를 썼는데, 성까지 특이해서 단박에 두 가지 별명이 붙었다. ‘안동 끙깽이’와 ‘변똥꼬’였다. 어떤 애들은 두 가지를 합쳐 ‘변깽이’ 또는 ‘안동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변동구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이렇게 외적인 별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숨겨진 끼에 더 연유했다.
한창 피가 끓고 에너지가 넘치는 ‘고2 청춘’이라 누구랄 것 없이 여자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게 마련이지만 변동구의 그것은 아주 특이하고 유별났다. 중.고교 통 틀어 5명인 처녀 여선생님들의 하숙집을 모조리 알고 있는 것은 물론, 그녀들의 애인 유무까지 꿰고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여선생님들의 신체구조를 분석한 자료를 통해 K선생은 3~4명의 자녀를 둘 수 있고 B선생은 아이 낳기 힘든 체형이라는 둥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시간에 교정을 나서고 있는데 옆에서 걷고 있던 변동구가 책가방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좀 츤츠이 걸어라, 뒤에 홍숙희선생 오는데 우리 앞에 가게 두고 궁디 함 자세 보자” 
변 동구의 은밀한 제안에 가슴이 떨렸지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가을햇살을 즐기는 것처럼 천천히 걸으며 여선생의 엉덩이를 살폈다.
 “봐라, 홍숙희선생 궁디가 뾰족이 티나왔잖나, 저 궁디는 잘해야 아 하나다.”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산부인과 의사야?”
나는 들은 소리도 있고 해서 대뜸 반박을 했다. 그런 나의 반발에 변동구는 어른처럼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자슥아, 거는 산부인과으사도 모린다, 궁디박사만 아는기라. 흐흐흐.”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음흉하게 웃던 변동구의 얼굴은 그러나 다음 순간 사색이 되고 말았다.
 “야, 변동구!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앞으로 걸어가는 줄만 알았던 홍숙희선생이 어느새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려 뱁새눈을 치뜨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변동구와 나는 일주일 정학처분을 받았고 여선생들 사이에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버렸다.

안동사람들이 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고교시절의 학우 변동구와 오늘 식당에서 만난 중년사내 모두가 한 결 같이 여자들의 엉덩이에 일가견을 가진 고수들이다. 나는 혹시 저 사내가 변 동구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빼고 슬며시 건네 보았다. 언제 왔는지 일행이 세 사람으로 늘어 있었다. 귀를 세워 들으니 새로 합류한 사람을 위해 사투리 사내가 아까 했던 말을 재방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변 동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안동사투리가 같을 뿐 사람이 같지는 않다는 깨우침에 머리를 흔들었다.
“여보, 뭘 보고 있어? 안 되겠네, 갑시다, 일어나요.” 
나는 아차, 싶었다.
“그래, 갑시다, 산타모니카로!” 
서너 잔 마신 소주기운으로 벌떡 일어선 내가 호기롭게 외쳤더니 아내가 노! 하며 약지를 세웠다.
“됐요, 산타모니카는 무슨... 집으로 가요.” 
아내가 차갑게 말했다. 틀려버렸다. 매사 의욕이 없는 아내의 기분을 일으켜 꺼진 불을 점화시켜보려던 계획이 생각지 못한 외부상황에 의해 가차 없이 사그라져버렸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아내의 뒤를 따라 어정어정 식당을 걸어 나오는데 사투리 사내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그러나 신이 나서 외치고 있었다.
“아짐씨 궁디는 바짝 오므라붙는다 말입니더. 종 치고 막 내렸다 아임니껴!”
‘궁디’박사들을 만나는 일이 인생에 별로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쓴 웃음을 깨물며 얼른 식당 문을 나섰다. *

 

이용우
소설가. LA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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