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폭염

2018.08.10 09:15

ohmily 조회 수: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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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폭염

 

전 세계가 유례없는 폭염으로 난리다. 우리가 사는 텍사스야 원래 더위로 맹위를 떨친 주 이지만 그래도 올해 더위는 유난하다. 100도가 넘는 날씨가 3주 이상 계속 되다보니, 씨애틀이나 알라스카처럼 시원한 곳이 절로 생각난다. 여름에도 한 낮에 공원에서 조깅을 할 수 있는 곳, 일 이십분이면 바다에 가 닿을 수 있고, 시원한 계곡 가까운 곳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심각하다. 주로 아파트 생활을 하는지라 전기 과다 사용으로 아파트 온 동이 정전이 되기도 하고, 열대야를 피할 길 없는 시민들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올 여름 폭염은 정말 재난 수준이라는 것이 실감이 간다. 그래도 미국은 집집마다 에어컨 시설이라도  되어 있지만,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버티어야하는 한국의 수 많은 저소득층들에겐, 더위는 이제 질병처럼 무서운 존재 일 것만 같다.

 

이럴 때 이민온 지 오래된 분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들이 우리가 한국 살 때는 여름이 그렇게 안 더웠다고 하신다. 날씨도 사람의 감정이 이입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다. 나 역시 에어컨 아니 선풍기, 냉장고도 변변히 없던 어린시절엔 엄마가 수돗가에서 바가지 물로 등목욕 한 번 시켜주고, 수박 한 조각이나 시원한 샘물에 탄 미숫가루 한 그릇이면 더위가 가셨다. 여치와 매미소리 들으며 여름 한 낮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면서 지나갔고, 평상에 설치된 모기장안에서 동생과 장난치다보면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서 열대야니 폭염이니 하는 걸 느낄 사이가 없었다.

 

그런데 피서 용품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더위에 더 예민해지는 모양이다. 더 시원한 것 더 쿨한 것을 계속 찾다보니, 이제는 냉동고 안에 정도 갇혀야 시원해진다고 여기는 것 같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일정한 온도에 자신을 내 맡기고, 계절이 주는 열기나 찬바람을 맡지 않으려 하다 보니 조금만 적정온도에서 벗어나면 적응을 하지 못한다. 시원한 실내에 있으니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수박을 먹어도, 냉면이나 빙수를 맛 봐도 예전처럼 그렇게 탄성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 이런 것들은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딱히 시원하지도, 피서에 도움이 된다고도 여기지 않는 것이다.

 

더위도 상대적인지, 긴치마를 입어야 했던 시절엔 치마 길이만 짧아져도 좀 더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예전 같으면 속옷 수준의 여름의상을 입으면서도 덥다고 난리이다. 결국은 작은 불편함도 즉석에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초고속 시대가 우리를 점점 변덕스러워지고, 인내심 없는 인류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래야 어찌되었던 현재만 편하면 되는 집단 이기주의가 온통 지구 온난화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얼마 전 <플라스틱 차이나> 라는 독립영화를 본 적이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플라스틱 수입국이다. 이 영화는 중국 플라스틱 재활용공장에서 지내는 두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농촌에서 올라와  도시빈민이 된 ‘이제’의 가족은 쓰레기를 씻고 소각하고 재활용하면서 살아간다. 학교에 갈 형편이 안되는 이제는 쓰레기를 통하여 영어를 배우고 서구문명의 소비문화를 바라본다. 그러나 쓰레기 더미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많은 위해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어른들은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질환에 시달린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이미 물든 이들은 이 악취 나는 쓰레기 더미를 이용한 신분상승을 끝없이 꿈꿀 뿐 탈로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오늘날의 거대한 환경위기는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거대한 플라스틱 더미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국에서 버린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돌고 돌아 언젠가는 지구의 재앙이 될 것 이다. 벌써 바다 위까지 쓰레기더미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 생각 없이 내 뱉는 말들이 폭염이 되기도 한다. 날씨가 가져오는 폭염은 때가 되면 멈추겠지만, 남의 마음에 그늘을 만드는 잘못된 말이나 행동의 폭염은 언제 식혀 질지 알 수가 없다. 물을 안개처럼 뿌리는 쿨링 포그가 더 많은 곳에, 더 많은 사람사이에 뿌려지면 좋겠다. 아, 오늘도 더울 모양이다.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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