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룩킹 굿맨”

2018.08.17 09:13

ohmily 조회 수: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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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룩킹 굿맨”
 

입추가 지나고 몰려다니는 두터운 구름 따라 한 줄금씩의 비가 며칠 동안 내리더니 해가 빨리 지는 것 같다. 뒷마당 오층 높이의 우람한  피칸나무가 검은 잠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면 자동차들의 밝은 전조등과 테일 램프의 붉은 불빛이 무성한 잎 사이로 짐승 같은 눈빛으로 지나간다. 이제 곧 푹 쉴 수 쉬도록 배려하신 하나님 사랑의 설계도 따라 밤이 오고, 하루의 마무리와 내일을 계획하며 안식하게 된다. 
방학 없이 했던 커피브레이크성경공부도 잠시 쉬기로 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마치면서 안타까웠던 부분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바리세인들, 종교지도자들의 고정관념에 따른 편견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편견이 안타까워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자신이라는 것을 성경으로 가르치시며 친히 본을 보이시고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 세리와 창기와 소외계층 뿐만 아니라 부자와 고위층과도 함께 하셨던 예수님. 피부색, 특히 의복이나 겉모습을 보고 고정관념에 의한 판단으로 실수했던 이민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먼저 살았던 집의 이웃들은 피부색이 달라도 가까이 지냈기에 파머스 브렌치로 이사 와서도 이웃과 잘 지내보겠다고 꽃 화분을 사들고 먼저 찾아갔다. 벨을 누른 한참 후에 나온 아줌씨. 뜨악한 얼굴로 할 수 없이 받아준다는 느낌에 공연한 짓을 먼저 했구나. 후회를 했다. 역시나 못 말리는 그 집 남자. 사사건건 소소한 것들로 시비를 걸더니 해프에이커나 떨어져 있는데도 초저녁에 짖은 화랑이 핑계로 경찰을 불렀다. 급기야 담장나무 여러 그루의 가지를 보기 싫게 멋대로 잘라서 도로가의 우리잔디밭 앞에 밀림처럼 쌓아놓았다. 분통터지는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먼저 사진을 자세하게 여러 장 찍어 미국손님들과 변호사에게 보여주며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시의 카운실로 문의하러 갔는데 마침 시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사진을 본 시장님은 지적도에서 우리 땅을 확인 후 트레스패스(불법침입) 형사건 인데 누가 그랬느냐? 신고하겠느냐고 묻는다. 바로 옆집 남자인데 ‘룩킹 굿 맨’ 이라고 했더니 연세 많으신 시장님 답이 명언이다. “보기 괜찮은 사람이 항상 좋은 사람은 아니지요. 정말 나쁜 사람도 많아요.” 이웃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 파머스 브렌치 시의 법을 알려고 온 건데 유예기간이 일년이라니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노라했더니 다음날 시에서 사람이 와서 보고 갔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고 하신 성경말씀이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 WHO, 세계보건 기구의 의료인들과 선교사님들과 일하면서 백인들은 모두 선교사님들처럼 나이스하고 배려와 사랑이 많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나보다. 미국 첫 일터인 네일 살롱에서 근 20여명의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 일하게 되었다. 냉장고안의 남의 점심을 먹어버리고 화장지나 페퍼타월을 가져가다 들킨 도둑, 콧대가 돛대 같은 참견쟁이, 창고로 가지러가는 대신 다른 이의 재료를 슬쩍 쓰는 얌채족. 손님을 가로채려고 남이 해 놓은 손톱을 억지로 뜯어서 ‘리두’시키는 양심불량족. 손님들 또한 유럽, 중동, 러시아 등 성장배경에 따라 외할머니 말씀대로 “천층만층 구만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컬쳐쇽크를 겪으며 백인들에 대한 선입견이 부서지고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늦게 철이든 거다.

네일 손님들 중 술집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어 공부하는 어린 여대생이 있었다. 하필 술집에서 일하느냐고 했더니 아픈 엄마를 도우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할 시간을 만들려면 수입이 훨씬 낫다고 하는데 가슴이 아팠다. 롱드레스에 잘 어울리는 하이힐과 블론드헤어가 아름다운 여장남자 목의 ‘아담스 애플’을 보면서 인생 스토리를 듣자니 비난 대신에 기도하게 되었다. 선입견과 편견이 부끄러웠다. 손님의 어린 딸이 할머니 집에서 메이드를 보고 “그녀는 달라요.” 할 때 인종차별적인 말을 할까봐 잔뜩 긴장했단다. “미시즈 죤스는 딸기 에이프런을 입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시잖아요.” 아이에게 다른 것은 피부색이 아니라 에이프런과 맛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제 세월이 가니 옆집 남자도 이해가 간다. 원에이커 넘는 땅에 백만 불 짜리 멋진 집을 지었다면 그도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자기 집 쪽의 우리 땅 해프에이커를 사고 싶다고 시의 직원에게 말했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집까지 싸게 팔고 떠났다. 고정관념에 의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경험과 체험 중심으로만 생각하다보니 자만이나 오만으로 오해되기 쉽고 결국은 분쟁으로 서로에게 해가된다.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는 카톡을 지인에게 받았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말은 남편이 늘 쓰는 말이다. 내일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접는다. *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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