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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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오늘의 내 사인(死因)은 불면증!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남편을 피해 손님방에 살림을 차린 지 몇 밤째입니다. 침대 위에는 각종 베개가 수북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사용했던 목베개까지 끌고 왔습니다. 이걸 베고 누워도 저걸 베고 누워도 바로 누워도 옆으로 누워도 편치 않은 이놈의 목 때문에 온 침대를 휘적입니다. 이런 나의 잠버릇이 남편 불면증의 도화선이 되었지요. 그의 불면증이 내게 옮겨 온 건지 밤새워 뒤척입니다. 이대로라면 불면증이 나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 같습니다. 고된 일과의 마무리를 장식할 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꿈도 찾아오지 않을 푹신한 휴식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발치에 머리를 두고 누워봅니다. 그렇게 누우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 천장과 벽 모서리에 핀 ‘꽃'이 보입니다. 언제 저렇게 피었을까. 몇 년 전에 고친 자리가 분명한데 지난번 내린 폭우는 아닌 것 같고, 봄에 내렸던 우박 때문인 건가. 고친 자리에 다시 구멍이 났나 봅니다. 누군가의 손도장 같기도 하고 나뭇잎 같기도 한 문양이 꼭 데칼코마니 같습니다. 불을 껐습니다. 베고 있던 베개를 팽개치고 맨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들리는 저 소리는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똑! 똑! 목욕탕 바닥을 치는 물방울 소리가 밤을 울리고 있습니다. 내 성격을 테스트라도 하려는 듯 심술궂게 따라붙습니다. 밝을 때 생각해 보면 하찮은 생각들이 불면증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와 고약을 떠는 게 당연하지만, 오늘 밤은 그것도 벽을 텅텅 울리며 넘어오는 저 소리에 지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불면증의 요인이었던 ‘목 아픔’ 또한 이제 안중에 없습니다.

 

불을 켭니다. 네 시 오분 전, 이대로 누워있는 것은 스스로 고문을 하는 것이니 차라리 책을 보기로 합니다. 팽개쳤던 베개들을 모아 비스듬히 누워봅니다. 아! 이놈의 목. 일어나 걷기로 합니다. 어젯밤도 설친 터라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눈 때문에라도 잠을 자야 합니다.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악몽에 시달려도 좋으니 그래서 곤히 자고 있을 남편을 깨워도 좋으니 자야 합니다. 차라리 위스키를 한 잔 마시기로 합니다. 털어 넣듯 잔을 비웁니다. 조금만 더 걷기로 합니다. 방에서 서재로 서재에서 화장실로 다시 방으로. 이쯤이면 누워도 될 것 같아 누워봅니다. 수면제용이 될만한 생각을 불러 봅니다. “숨어서 피는 검은 꽃은 무섭습니다. 속에서 향기 없이 피는 꽃은 뿌리가 깊습니다.” 난데없이 왜 이런 문장이 떠오를까요. 머리맡에 있는 노트에 적어 놉니다. 적고 보니 한 문장에 는, 은, 는이 여러 번씩 나옵니다. 하지만 그냥 두기로 합니다.

 

내 친구 린다가 찾아온 날은 며칠 전 우울한 오후였습니다. 잠의 쓸모를 깊이 통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의 불면증을 “늙느라고 그래!”로 치부하기엔 도를 넘었단 걸 인정해야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대책이 없어서, 그러기에 더 우울했습니다. 슬쩍슬쩍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하다 보니 애매한 바늘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왜 또 그렇게 실은 빠지는지 은근히 부아가 나서 심통이 나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오는 린다를 보니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나는 전에 안 하던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지요. 당장 의사한테 가보라고 호통치는 모습을 보니 어리광이 먹힌 모양입니다. 하기야 양쪽 손목에도 부족해 이젠 팔꿈치까지 보조 붕대를 감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내 눈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린다의 눈이 젖어 들기 시작했지요. “알았어, 내일 당장 가볼게.” “그래, 꼭 가서 엑스레이도 찍어 봐.” 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릅니다. 내일 입원을 하게 되었답니다. 몸속에 나쁜 검은 꽃이 피기 시작했답니다. 수술하고 키모하고 몸을 추스르려면 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라 입원하기 전에 말해주러 들렀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기도하면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잘 들어주실 거라며 잡은 손에 힘을 줍니다. 늘 씩씩하고 당당하고 거침없고 걱정 같은 건 근처에도 오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지요. 검은 꽃이란 건 말 속에도 피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쯤 린다는 잠을 자고 있겠지요. 좋은 꿈을 꾸며 잘 자고 있어야 합니다.

 

“꿈이야, 나 잔 거 맞지?” 중얼거리며 다시 일어나 침대 끝에 공손히 앉았습니다. 두 손을 모아 봅니다. 벽에 생긴 꽃이야 물이 새는 곳을 찾아 메우고 얼룩진 곳에 페인트칠로 덧 바르면 감쪽같아지겠지요. 그렇듯 몇 시간 마취에서 깨어난 린다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감쪽같이 건강했던 모습,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지요. 오지도 않는 잠을 붙들겠다는 내가 어리석은 걸까요. 오늘 밤은 다른 피난처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고장 난 것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수영장 모터를 바꾸고 나니 이 층 에어컨이 말썽을 부렸습니다. 올봄에 수리한 냉장고가 또 말썽입니다. 20여 년을 썼으니 오래 쓴 걸까요. 이제 새것으로 갈아야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러니 저런 제품들보다 더 오래 사용한 내 몸이 삐걱거리고 새지 않을 수 없지요. 수리해서 쓸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괜찮은 거겠지요. 

 

 누군가의 가슴 속에 향기 없는 검은 꽃으로 피어 얼룩으로 남지 않길 바라며 베개 밑에 양손을 넣고 공손히 엎드려 봅니다.  *

 

꽃은
물 몇 방울로도 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의 두레박질은 밤을 새워
눈물샘 바닥을 내듯 물을 길어도
밑동만 남은 나무는 아직
움을 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바닥이 드러난 속가슴엔
모래 한 줌뿐인데
실뿌리 하나로 어찌 삶의 
무게를 담擔 할 수 있을까

 

참아온 문장들이 넘쳐도
갇혀있던 기척들을 홑청 위에 엎지르고
욕탕 바닥에 드러눕는 나신을 본다
그제서야 돋는 이 눈물 한 방울에
밤이 운다

 

김미희, (누수淚水 )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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